과연 KBS가 또 한 번 큰 사고를 친 것일까?('홍김동전')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결국 약속한 그날이 왔다. 여러 논란과 야속함과 시상식에서의 눈물까지 머금게 한 KBS2의 2년차 예능 <홍김동전>의 마지막 촬영이 있었다. 그리고 작별인사는 웃음을 지상과제로 내세운 리얼 버라이어티답게 나름 쿨하게 폐지를 폐지수집에 빗댄 게임으로 비껴냈다. 2년차 예능인데 청와대에 시청자들의 폐지 반대 청원까지 이어질 정도로 이슈가 되고, 마침 시상식 시즌과 겹치며 논란이 커진 <홍김동전>의 폐지 결정은 아쉬운 일인 동시에 오늘날 예능의 현주소를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홍김동전>은 1% 초반의 저조한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열성적인 피드백과 실제 성적표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 현상은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장르의 방식, 다시 말해 캐릭터쇼와 리얼리티를 무기로 삼는 예능 콘텐츠가 지향해야 할 플랫폼, 형식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보게 한다. '구개념 버라이어티'를 내세운 <홍김동전>은 <1박2일> 시즌3, <언니들의 슬램덩크>의 제작진이 2010년대 중후반의 전형적인 리얼버라이어티식 캐릭터쇼의 문법과 정서를 지향한다. 열성적인 피드백은 캐릭터쇼의 서사에 몰입하고 친밀감을 형성한 시청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리얼버라이어티 시청 방식의 전형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신규 프로그램의 '실링', 즉 성공모델로 비교할 대상이 현재는 연애대상을 받았지만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1박2일>, 웨이브 예능 1위라지만 심각한 에너지레벨 침체를 겪는 <런닝맨>, 늘 쇄신을 다짐하는 <놀면 뭐하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매주 챙겨보면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을 만들 만한 신선한 동인이나 접근의 기획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번 논란은 캐릭터쇼 기반의 기존 리얼버라이어티가 갖는 한계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결과이며, 동시에 소수지만 마니아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경쟁력과 신선함이었던 '리얼'함과 시청자와 프로그램 사이의 거리를 좁힌 '동시대성'이 이제는 더 이상 장점이 아닌 시대다. 최근 웹예능도 시즌제로 짧게 진행되고, 파일럿도 레귤러보다 OTT형 기획이 우선시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관계망 빌드업에만 최소 수 개월, <홍김동전>처럼 1~2년의 숙성기를 가지면서 터닝포인트가 올 때까지 뚝심 있게 기다려야 하는 리얼버라이어티는 요즘 환경에서 꽤나 굳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얼버라이어티는 관찰예능에 비해 훨씬 성근 서사를 기반으로 하기에 시청자들의 적극성이 요구되는 예능이다. 게다가 히스토리를 어느 정도 알아야 재미가 눈덩이 굴리듯 커지는 캐릭터쇼의 특성상 요즘과 같은 숏폼과 모바일 시대에 그리 유리한 코드는 아니다.
<홍김동전>의 딜레마는 오리지널리티에도 있다. 멤버 구성의 신선함은 확실히 있고, 출연진들이 각자 웹예능과 방송 활동 모두 활발히 하는 호감도 충분하지만, 주우재 정도를 제외하곤 <홍김동전>을 본진 삼아 프로그램의 성장 서사와 싱크를 같이한 멤버가 없었다. 이미 캐릭터나 인지도를 갖춘 자리 잡은 인물들의 모임이란 점이 무언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는 캐릭터쇼의 동력을 받쳐주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매회 '무슨무슨 특집', 복불복 게임, 조동아리 등 과거 코너 리바이벌, 장기 음악 프로젝트 등 무정형의 구성인 듯 보이나 너무나 익숙한 볼거리를 반복하니, 때때로 장면이 재밌을 순 있지만 힘 있게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성공하는 캐릭터쇼의 필수 요소인 성장 서사에 있어 멤버와 프로그램의 시간이 맞지 않은 데다, 출연자간의 패밀리십 형성하는 방식은 <뿅뿅 지구오락실> 시리즈 이전 버전의 캐릭터쇼의 방정식이라 특별한 호감이 없다면 유입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홍김동전>만의 도전과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홍김동전>은 김숙, 홍진경 등이 중심축이 된 혼성 구성이란 점에서 기존과 차별화된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냈다. 그간 나온 캐릭터쇼 기반 리얼버라이티의 구성을 완전히 뒤엎었고, 새로운 팀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특정 예능선수나 형님급 출연자가 중심축이 되고, 젊은 배우나 아이돌을 한둘 넣는 조합 방정식을 벗어난 새로운 구도를 만들었다. 또한 출연진 대부분 유튜브에서 자신의 영역을 마련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재성 또한 있는 인물들인데, 이들의 매력을 TV 안으로 일부분은 가져올 수 있었다.
새로운 무대에 기존 TV예능만 있던 시절 방식의 캐릭터쇼를 펼칠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자원들을 활용해 리얼리티를 십분 살릴 수 있는 <공부왕 찐천재>같은 친밀한 접근이나 따로 또 같이 캐릭터쇼로 성공하고 롱런하는 <나 혼자 산다>과 같은 모델은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기성 예능을 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재미의 범주가 웃음을 넘어서 정서, 스토리, 의미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술방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예능인들이 열심히 하겠다는 방향과 오늘날 대중성을 담보하는 재미와 진정성, 화제성이 점점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아쉬우면서도 인정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일례로 국민MC 유재석이 현재 출연하는 콘텐츠 중 가장 힘을 빼고 임하는 <핑계고>가 가장 큰 반향을 만들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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