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반도체 선각자' 이병철 회장 언급한 이유는

임동욱 기자 2024. 1. 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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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삼성반도체 생산라인을 찾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 /사진=호암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수원 성균관대 반도체관에서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연 민생토론회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견인한 '선각자'로 소개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사와 삼성전자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을 거론하며 "1970년대 중반부터 선각자들이 있었다"며 "이병철 회장은 여기(반도체산업)에 국운을 걸어 지금 이렇게 성장을 해 우리가 세계 초격차 기술 우위까지 지금 서게 됐다"고 짚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은 그야말로 광범위한 전후방 효과를 통해 우리 민생을 살찌우고 중산층과 서민을 살찌우는 산업일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새로운 기회를 계속 열어주는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단했을 당시, 이 회장은 73세였다. 그는 자서전 '호암자전'에 본인의 각오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비록 인생의 만기(晩基)이지만 이 나라의 백년대계을 위해서 어렵더라도 전력투구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앞서 1982년 21년 만에 미국을 방문한 이 회장은 미국 땅에서 일본 산업의 부상을 목격했다. 조기에 산업 구조조정을 마치고 품질과 효율성을 끌어올린 일본 철강·자동차에 미국산 제품이 경쟁력을 잃고 있었고, 일본 반도체가 미국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던 시기다. 세계 최강 미국이 일본 제품의 공세에 밀려 경영난을 겪는 것을 보며, 한국이 앞으로 살길은 첨단기술 산업 육성 뿐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 회장은 "현 단계의 국가적 과제는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생각하면 할수록 난제는 산적해 있었지만, 누군가가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현실은 험난했다. 과연 한국이 미국, 일본의 기술수준을 추적할 수 있을 지, 막대한 투자재원은 마련할 수 있을 지, 또 혁신의 속도가 워낙 빨라 제품 사이클이 2~3년 밖에 안 되는데 그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 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기술인력의 확보와 훈련, 서울에서 1시간 이내 거리의 공장 부지 확보 등도 문제였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분석을 끝낸 이 회장은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만 있으면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1982년 10월 반도체, 컴퓨터 사업팀을 꾸린 이 회장은 다음해 2월 도쿄에서 드디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기술은 미국 마이크론(64K D램)과 일본 샤프(CMOS공정, 16KS램)에서 도입했다.

64K D램을 양산할 기흥 반도체 1라인은 1983년 9월12일 착공, 6개월18일 만인 1984년 3월 말 공사를 마쳤다. 보통 19개월 이상이 걸리는 공기를 3분의1로 단축했다. 미국, 일본에 이어 3번째 반도체 생산국의 공장이 된 1라인은 완공 4개월 만에 51%의 제품 합격률을 달성했고, 반년 만인 9월에는 수율이 75%를 넘어서며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1984년 10월에는 256KD램 독자개발에 성공했고, 1985년 3월 이를 생산할 기흥 2라인이 완공됐다. 기적의 시작이었다.

1984년 삼성반도체가 양산한 256KD 램 /사진=호암재단


이 회장은 삼성반도체 성공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국가적 견지에서 첨단기술에 도전한 삼성의 확고한 기업정신이 있었고, 과거 10여년 간 바이폴라IC를 생산한 부천 IC공장을 통해 경험과 인력의 축적이 있었다. 또 세계경제가 호황으로 전환해 반도체 산업에 활기가 되살아났고, 최신 최고이면서 가장 저렴한 시설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울러 재미 한국인 박사들의 적극적 참여로 고도의 두뇌집단과 기술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근면한 임직원들을 확보하고 적합한 공장 부지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도 성공 포인트였다. 마지막으로 각 금융기관들의 협조로 자금을 순조롭게 조달할 수 있었다고 이 회장은 덧붙였다.

이 회장은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세계적인 장기불황과 대량수출에 의한 무역도 이젠 한계에 와 있어, 이를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 개발 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반도체 개발 전쟁에 참여해야만 한다"며 "반도체 없는 나라는 고등기술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임동욱 기자 dw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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