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한미약품그룹 결합, ‘한국형 LVMH’ 탄생 예고 [시장팀의 마켓워치]

이동훈 기자 2024. 1. 1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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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홀딩스 사옥 전경
한미약품 사옥 전경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이 통합하기로 결정하면서 ‘한국형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지난해 재계 30위권 소재·에너지 회사와 국내 선두권 제약업체 회사 간 결합인데요, 국내에서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이 피를 섞어서 하나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특히 다른 사업을 영위한 이종 기업간 통합 지주사 설립이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종 회사 간 통합은 가끔 있습니다. 1987년 패션 회사 루이뷔통 패션하우스와 주류회사 모엣헤네시가 합병해서 만들어진 LVMH가 대표적입니다. 합병 이후 LVMH는 강력한 브랜드 경쟁력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서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했고, 세계 최대의 명품그룹으로 거듭났습니다.

● OCI-한미약품그룹 통한 지주 설립 합의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간 통합과 관련해서 두 그룹의 지주회사인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가 지난 12일 발표한 공시를 살펴보겠습니다.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065만1295주를 주당 3만7300원, 총 7702억9330만 원에 사기로 했습니다. 거래가 완료될 경우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됩니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장녀인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은 OCI홀딩스의 지분 10.4%를 확보하게 됩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OCI홀딩스는 송 회장과 손주인 김원세, 김지우 씨 등으로부터 한미사이언스 지분 744만674주(2775억 원)를 인수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643만4316주(2400억 원)를 확보합니다. 유상증자 대금은 한미약품그룹의 신약 개발에 쓰일 예정입니다.

송 회장의 남은 지분 114만1495주와 임 사장이 보유한 563만4810주 등 한미사이언스 지분 677만6305주 OCI홀딩스에 넘기는 대신 OCI홀딩스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송 회장 모녀에게 OCI홀딩스 지분 229만1532주를 넘깁니다. 주식 맞교환이 마무리되면 임 사장은 8.6%를 확보해, 단일 주주로는 OCI홀딩스 최대주주가 됩니다.

거래가 완료되면 OCI-한미약품 통합 그룹의 정점에 있는 OCI홀딩스의 단일 최대주주는 임 사장이,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는 OCI홀딩스가 되는 그림입니다. 좋은 말로는 공동 경영, 나쁘게는 서로 멱살을 잡고 있는 형국이죠.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은 회사 경영에 대해 각자 대표로 운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화학 및 태양광 등 기존에 OCI그룹이 해왔던 사업은 이우현 OCI그룹 회장이 담당하고, 제약·바이오 등은 임 사장이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자료 : 한미약품그룹 제공

● 상속 문제 해결…전략적 동반자 관계 형성

양사 간 통합은 상속을 마무리해야 하는 개인적 차원에서 진행돼서, 두 회사의 부족한 부분을 상호보완하는 경영 전략적 차원에서 마무리됐습니다.

한미약품그룹은 창업자인 고(故) 임성기 회장의 2020년 사망하면서 5400억 원 규모의 상속세를 부담하게 됐습니다. 사모펀드(PEF) 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는 방법을 찾았지만, 연평균 10% 넘는 수익률 보장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결국 다른 구원 투수를 찾았고, 그룹 성장을 위해 제약·바이오쪽을 점 찍었던 OCI그룹이 눈이 맞았습니다. 송 회장은 지분 매각 대금을 상속세로 납부하게 됩니다. 현물 교환을 선택한 임 사장은 OCI홀딩스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 상속세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입니다.

두 그룹의 통합지주사 설립 논의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지만 속도가 빨랐습니다. 신약 개발 자금이 부족한 한미약품그룹과 신성장 동력이 부족했던 OCI그룹의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맞아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한미약품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30여 개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지만, 자금력은 부족합니다.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 한미사이언스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281억 원, 한미약품은 1881억 원 정도입니다. 매년 신약 개발에 수 천억 원이 들어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OCI그룹이 보유한 자금이 한미약품 그룹엔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OCI홀딩스의 현금성 자산은 1조705억 원입니다.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만 9000억 원을 넘을 만큼 자금력은 풍부합니다.

OCI그룹 입장에선 한미약품그룹과 손을 잡음으로써 제약·바이오라는 확실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1970년대부터 석탄·화학 한 우물만 파던 OCI그룹은 2011년 태양광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사업 다각화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저가공세로 인해 태양광 사업이 2020년 영업손실을 기록하자, 제약·바이오로 손을 뻗었고 2022년 부광약품 지분 10.9%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습니다. 한미약품그룹과의 통합으로 화학·태양광에 제약·바이오까지 탄탄한 라인업을 꾸릴 수 있게 됐습니다.

한미약품그룹의 송 회장과 이 회장의 모친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의 친분이 양측이 원만하게 협상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힙니다. 앞서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에 이번 거래를 제안한 인물은 삼성그룹 법무실 출신 변호사인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입니다. 김 대표는 과거 삼성그룹에서 삼성전자의 의료기기업체 메디슨 인수 후 통합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등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알려졌습니다.

● 대규모 이종사업 간 결합 최초…경영 난항 예고도

국내에서 처음 벌어지는 이종 사업간 결합인 만큼 걱정은 있습니다. 각자 대표가 선임되기로 했지만, 통합그룹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양측의 의견이 대립할 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관건입니다. 대표 간 의견 차이도 문제지만 각 그룹의 실무자 간 갈등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LVMH도 통합 후 양사 간 대립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향후 통합그룹의 이사회 구성에서 방향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동훈 경제부 기자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과 남매지간인 임종윤·임종훈 한미약품 사장과의 원만한 합의도 주목됩니다. 임종윤 사장은 이미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OCI홀딩스와의 통합과 관련돼 반대 뜻을 나타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 가능성도 내비쳤습니다.

임종윤·임종훈 형제들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이 지난해 3분기 기준 19.32%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공개매수 등을 통한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 점쳐집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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