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리면’ MBC 잘못이라는 법원…‘김정숙 여사 보도’ 땐 달랐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 불거진 ‘비속어 발언 보도’와 관련해 법원이 12일 “허위 보도”라는 판단을 내놨습니다. 이번 판결은 ①정정보도 청구 소송의 당사자능력 인정 범위 ②판결 결과에 이르는 논리 ③결과를 표현하는 방식 등에서 여러 문제를 갖고 있다는 비판이 법조계 내부에서 나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① 외교부가 “대통령 발언 보도 정정하라” 요구할 수 있나
이번 소송에서 청구인(외교부)의 핵심 주장은 ‘윤 대통령이 문화방송 보도대로 말하지 않았다’로 요약됩니다. 이 주장이 맞다면 윤 대통령이 해당 보도의 피해자입니다. 정정보도를 청구하려면 윤 대통령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송은 윤 대통령도, 대통령비서실도 아닌 외교부가 냈습니다.
민사소송법은 기관이나 단체에게 소송을 제기할 자격(당사자능력)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론중재법은 예외적으로 이들에게 당사자능력을 부여합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사실적 주장에 관한 언론보도 등이 진실하지 않아 피해를 입었고, 보도 내용과 개별적인 연관성이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입니다.
이전 판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2011년 대법원 판결입니다. 문화방송 피디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제목으로 한 방송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가 정정보도를 청구한 사건입니다. 대법원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주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조건에 관한 비판의 근거로 삼기 위하여 광우병의 위험성에 관한 사실적 주장을 한 것이 명백하다”며 방송내용과 농식품부의 개별적인 연관성을 인정했습니다.
가장 최근 판결은 2020년 서울중앙지법 판결입니다. 1심이지만 항소심 도중 소가 취하돼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피고는 중앙일보입니다. 그해 6월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칼럼에는 문 대통령 부부가 피오르의 풍광으로 유명한 베르겐을 방문지로 선정했다는 내용과 함께 ‘문 대통령 부부가 유독 관광지를 자주 찾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전임 대통령 부부 중 이번처럼 관광지 방문이 잦은 적은 없었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대통령비서실은 허위라며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결과는 패소였습니다.
법원은 “보도는 문 대통령 부부를 직접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이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행정기관이지만 ‘대통령비서실’이나 ‘비서실 소속 공무원’이 직접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서실은 해당 보도와 개별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법원은 ‘당사자능력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의 위험성’을 명확히 지적합니다. 법원은 “보도와 명백한 개별적인 연관성이 없음에도 보도 대상자들의 업무를 보좌한다는 이유만으로 보도에서 직접 다뤄지지 않고 있는 조직이나 개인까지도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는 자로 넓게 인정한다면, 힘 있고 돈 있는 집단을 이끄는 사람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그들에게 비판적이라고 생각하는 언론인을 상대로 각종 법률적 다툼을 벌임으로써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위축 시킬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고 외교부를 앞세워 ‘대리소송’을 낸 이번 소송을 예견한 듯한 문장입니다.
12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성지호)는 2011년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이번 보도로 인해 외교적 파장이 있으므로 윤 대통령과 별개로 외교부도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 부부 관련 문제조차 대통령비서실의 당사자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지난 2020년 판결과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법조계에서 이번 판결의 당사자능력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언론중재법 전문인 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같은 사건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당사자 범위가 매우 넓게 확대될 수 있어 그 파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② ‘원고가 입증해야 한다’는 대원칙 뒤집어도 되나
민사소송의 대원칙은 원고(소송을 제기한 자)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정보도 청구 소송이라면 청구자(원고)가 ‘보도가 허위’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물증은 녹음 파일입니다. 그런데 이 파일이 ‘감정 불가’ 판단을 받았습니다. 통상 이런 경우 감정을 통해 원고의 주장이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원고의 다른 주장(해당 보도가 진실이 아니라고 볼 기타 정황)을 검토해 재판부가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입증 책임을 피고에게 넘겨버리는 이례적인 선택을 합니다. 판례상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 증명 책임을 피고(언론사)가 나눠지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뿐입니다.
첫째, 언론사가 ‘두루뭉술’하게 보도했을 경우입니다. 이 경우 보도 대상자는 본인이 반박해야 할 대상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반박이 불가능합니다. 부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죠. 따라서 재판부는 피고(언론사)에게 ‘보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관련 근거를 제출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자료가 미덥지 못하면 ‘진실한 보도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피고(언론사)에게 증명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립니다.
두번째가 ‘광우병 판례’입니다. 당시 대법원은 특정 과학적 사실에 대해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는 원고가 ‘진실하지 않다’고 명확히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이 경우, ‘광우병은 위험하지 않다’), ‘진실하다’고 주장하는 피고(이 경우, ‘광우병은 위험하다’)의 논리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입증책임을 나눌 수 있다고 봤습니다.
서울서부지법 재판부는 ‘광우병 판례’를 가져왔습니다. ‘녹음 파일이 판독되지 않는 상황’을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는 반박이 불가능한 경우’로 간주한 겁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한 법조인은 “구조적으로 원고가 입증할 수 없는, 예를 들면 ‘수술실에서 의사 과실’ 같은 경우 의사(피고)에게 무과실을 입증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2011년 광우병 판례도 같은 취지”라며 “‘녹음 파일 판독 불가’는 이번 사건에서만 발생한 특이 케이스다. 판독이 안 되므로 원고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증거로 간주하고 다른 증거를 살피면 된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라고 비판했습니다.
③ ‘판독 불가’를 ‘허위 보도’라 단정해도 되나
재판부 논리대로 ‘정정보도’라는 결과가 맞다 해도,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감정인은 해당 부분에 대해 ‘판독 불가’라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재판부는 어느 한쪽으로 확정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문화방송이 ‘단정적인 보도’를 넘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고, 이 점이 문제라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없음이 밝혀졌다”는 정정보도문을 방송하도록 했습니다. 재판부는 문화방송이 다른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는 단정적인 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는데, 재판부도 똑같은 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김성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은 “사실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정정보도는 기각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판사도 “어떤 논리로든 정정보도 청구를 인용할 순 있다. 다만 ‘바이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확인됐다’라고 정정보도문을 쓰는 건 무리다.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확정적으로 보도했다’ 정도로 정정보도문을 만들었어야 했다”고 지적합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당일 성명을 내고 “진실이 무엇인지도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허위보도로 결정하고 정정보도를 내라는 법원의 판결은 어떤 국민의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한 이유입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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