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를 이루기 힘든 이유
새해를 맞이하며 많은 사람이 한 해의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 새해라는 것이 인간이 정한 기준에 따른 형식상 변화라 할지라도,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기획하는 중요한 계기임은 분명하다. 모두가 건강한 삶과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세운 목표들을 잘 이루어나가길 소망한다. 하지만 2024년도 벌써 보름가량 지났으니, 새해 목표가 버겁게 느껴지거나 이미 포기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결심한 목표와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흔히 좋은 결과는 내가 잘나고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고, 실패하면 내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개인화하지만, 실상은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리고 오로지 나의 나약함만 탓하기에는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과 구조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여러 목표 가운데서도 새해에는 '술을 덜 마시겠다', '담배를 끊겠다', '운동을 하겠다', '야식을 하지 않겠다', '몸무게를 줄이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다' 등 아마 건강과 관련된 실천 목표 하나쯤은 대부분 가지고 있을 듯하다. 하지만 저녁 시간에 TV 프로그램, 유튜브 가릴 것 없이 먹고 마시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굳은 결심이라도 흔들리지 않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먹고 마시는 모습을 그토록 자주 접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서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주류업체들의 숨겨진 노력(?)이 있다. 특히 요즘에는 유튜브에서 연예인들의 '술방'(술 방송)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주류업체들은 편당 몇천만 원씩 광고비를 쓰고 있다니, 술 마시는 문화를 만드는 데 얼마나 진심인가.
운동하기는 또 얼마나 힘든지, 하루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일터에서 보내고 나면 쉴 시간도 부족하고, 기진맥진해서 운동하기까지 매일 큰 결심이 필요하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챙겨 먹기 힘든 일을 한다면,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 역시 더 힘들어진다. 야근하고 돌아오면 '나의 시간'을 포기하든가, 일찍 자는 걸 포기해야 한다. 교대근무를 하는 이에게는 애초에 일찍 자야겠다는 목표를 가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소비를 장려하고, 우리의 노동 환경과 조건을 결정하는 기업들은 이처럼 우리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건강 연구자들은 '건강의 상업적 결정요인'이라 개념화하며 기업들(상업적 주체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 주목한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마케팅과 고용 및 노동 조건을 포함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업들의 핵심적 실천들을 정리했는데. 이를테면, 그들은 규제를 피하고자 로비를 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적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개입을 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과학적 합의를 약화하기 위해 연구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평판을 관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세 회피나 탈세 등 재정적 조치를 하기도 한다(☞: 관련자료 바로가기).
그러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들의 여러 시도가 항상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정부, 전문가, 시민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각축으로 여러 영역에서 정책과 사업, 문화가 형성 및 변화되고, 자원이 배분되거나 이전된다. 하지만 기업의 규제와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고, 민영화와 긴축재정을 밀어붙이는 최근의 정치는 분명 재벌이나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의 새해 결심은 진공 상태에서 그저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달성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개인적인 목표와 계획이라 하더라도 이와 긴밀히 연결된 구조의 측면에서 이를 파악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주로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지만, 건강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 차원인 것처럼만 보이는 대부분의 목표와 계획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이든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되고 마는 분위기에 맞서 환경과 구조를 핑곗거리 혹은 위안으로 삼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조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각자 성찰하며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고, 새롭게 구조를 형성해 나가는 적극적 행위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전략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구조를 염두에 두고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새해 목표는 왜 작심삼일로 끝나고 말까. 다른 조건과 환경에서는 지금과 조금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근본적으로 왜 그것을 목표로 (해야만) 하는 걸까. 그 목표는 어디서 왔을까. 새해 목표는 왜 세우는 걸까 혹은 왜 안 세우는 걸까 등등.
그리고 조금 다른 새해 다짐도 덧붙여보는 것도 좋겠다. 사회적 이슈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진다거나, 관심 있는 분야 시민사회 단체에 후원하거나 그 단체의 활동에 참여해 본다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와 관련한 거리 집회에 나가보는 것 등등의 다짐들 말이다. 대단해 보이지 않더라도 현재의 맥락 안에서 맥락을 변혁하는 실천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녹록지 않은 구조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조건도 아니니까 말이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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