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얼지 않자 ‘북극곰 저출생’이 생겼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기후위기 논란의 현장에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이 출동합니다. 어지러운 숫자들로 뒤덮인 복잡한 자연-사회 현상을 엉망진창 조사반이 주제별로 조사해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조사반의 활동 역사적 사건과 과학적 사실과 의견은 취재와 논문, 보고서 등을 통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1회 ‘북극곰들은 왜 다이어트 중일까?’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23410.html)에서 이어짐
“처칠은 각종 도시 괴담과 소문 그리고 협잡이 넘쳐 돌아다니는 곳이예요. 아무리 다이어트가 유행이라고 해도, 북극곰이 그걸 할 리가요.”
우리는 탐문 중에 처칠 마을의 유일한 피트니스 센터인 ‘북극곰 피트니스 센터’의 사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중국의 돌고래수족관에 간다던 흰고래(벨루가)가 와서 보디프로필 사진을 찍은 거 말고는 동물이 온 적이 없다고 했어요.
“사진 찍기 전에는 다이어트 약인 삭센다도 먹고 그러죠. 저기 약국에서 팔아요. 12월인데도 바다가 얼지 않아 북극곰이 죄다 삐적 말랐는데, 무슨 다이어트? 이미 얼음 타고 사냥 나갔을 때인데, 여기서 토끼나 잡아먹고 있잖아요. 북극곰도 이제 단백질 보충제를 먹어야 해요.”
굶어죽는 영상에 대한 검토
2017년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북극곰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삐쩍 마른 북극곰이 곧 죽을 듯 쓰레기통을 뒤지며 느리게 걷고 있었죠.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기후변화의 증거’라고 했지만, 당시 우리가 조사한 결과는 그보다 좀 복잡했어요. 북극곰이 발견된 캐나다 배핀만 동부는 여름에 바다얼음이 얼지 않는 곳이었거든요. 바다얼음에 나가서 물범을 실컷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배핀만의 북극곰은 육지에서 간헐적으로 먹이를 먹으며 버티곤 하죠.
그래서 우리는 그 북극곰이 체지방이 줄어든 상태에서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어요. 이곳 허드슨만 처칠도 여름에 바다얼음이 아예 얼지 않는다는 점에서 배핀만과 비슷합니다. 북극곰에게 가혹한 환경이죠.
그때, 조사반원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어요.
“그럼, 북극곰이 다이어트를 한 게 아니라 굶주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엉망진창 조사반은 논문과 보고서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칠을 통과하는 북극곰에 관한 자료는 연구가 많이 되어 있더군요. (이 집단을 ‘서부허드슨만 개체군’이라고 합니다) 그 중 이 개체군의 건강이 ‘악화’했다는 논문 몇 개가 눈에 띄었습니다.
초기의 논문은 북극곰의 신체건강지수(BCI·Body Condition Index)를 분석했어요. 우리가 건강검진 때 재는 체질량지수(BMI·Body Mass Index)랑 비슷한 거예요. 왜 인바디 기계에 올라가서 양팔 벌리고 그래프 올라가는 거 보면서 ‘제발, 저 경계선을 넘지 말아다오’하고 기도하잖아요. 결국 경계선 통과해서 비만으로 뜨고 말지만.
북극곰은 반대예요. ‘비만이 정상’입니다. 처칠 마을에서 말썽을 피웠다가 북극곰 감옥에 수용된 북극곰을 장기간 조사해보니, 북극곰이라면 비만이어야 할 체질량 수치가 떨어지고 있는 겁니다.
최근에는 북극곰의 신체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에너지 저장량’과 ‘에너지 밀도’ 값을 내요. 에너지 저장은 에너지 대사에 쓰일 수 있는 신체 조직의 중량 값이예요. 그 중에서도 에너지 밀도는 그 핵심인 단위 지방층당 지질의 양을 말하죠. 신체 상태가 좋다는 것은 나이나 덩치에 비해 많은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다는 거예요.
서부허드슨만 개체군 2533마리를 1985~2018년 조사한 결과, 에너지 저장량은 56% 줄었고, 에너지 밀도도 53% 감소했어요. 쉽게 말해, 북극곰이 허약체질이 되고 있는 거예요.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요?
허드슨만의 북극곰은 여름에 육지로 돌아와 4~5개월 머물다가 바다얼음이 어는 가을이 되면 북극해로 긴 사냥 여행을 떠납니다. 육지에 머물 적에는 작은 동물이나 새알, 해초를 먹고 근근히 버텨요. 겨울에는 바다얼음으로 나가 물범으로 폭식을 하고, 다시 여름에는 육지로 돌아와 단식을 하는 거죠.
그런데 허드슨만의 바다얼음이 봄에는 너무 빨리 녹고, 가을에는 너무 늦게 얼고 있습니다. 보통 6월에 녹던 바다얼음이 5월에 녹고 있고, 11월 초에 얼던 얼음이 11월 말~12월 초에 얼고 있어요. 2016년에는 한겨울인 12월7일에서야 결빙이 될 정도였습니다.
1985년 바다가 얼지 않는 날은 105일이었는데, 2018년에는 145일로 훌쩍 늘었습니다. 평균을 내보면, 대략 일년에 하루꼴로 얼음 없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인즉슨, 북극곰이 사냥할 수 있는 날이 매년 하루씩 줄어든다는 거예요. 에이미 존슨(Amy C. Johnson) 캐나다 앨버타대 생물과학과 교수는 말합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바다얼음의 감소는 암컷과 새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암컷은 임신하기 전부터 시작해서 새끼를 낳고 보살피고 함께 활동하기까지, 약 8개월 동안 ‘단식’을 하면서 지냅니다. 따라서 그 전에 바다얼음에서 얼마나 많은 물범을 잡아 포식했느냐, 다른 말로 얼마나 에너지를 비축했느냐가 번식 성공의 관건이죠. 근데, 얼음이 잘 얼지 않으니, 번식률과 생존율이 떨어질 수밖에요. 물론 189㎏짜리 홀쭉이 북극곰이 새끼를 낳은 사례가 있긴 합니다만…”
상황이 이런지라 허드슨만에서는 세 마리 새끼를 낳는 북극곰은 거의 사라졌고, 두 마리를 낳는 북극곰은 부쩍 줄었고, 한 마리 낳는 북극곰이 대세가 되었죠. 그리고 몇 십 년 뒤면… 0.78마리? 한국의 저출산 사태와 비슷해지겠네요.
약국 앞 잠복 근무
조사반은 약국 주변에서 잠복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북극곰이 삭센다를 사러 왔을 때, 붙잡기로 한 거죠.
그날 밤, 야윈 북극곰 하나가 저벅대며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곧장 달려갔어요. 약국에서 북극곰은 삭센다가 아니라 ‘오쏘몰’을 들고 있었어요. 피로 회복에 최고라는 독일산 명품 비타민!
“당신들이 나를 찾는다던 사람들이군. 우리는 바다얼음 자체야. 얼음이 없으면 살 수 없어. 물범은 얼음에서 살고, 북극곰은 얼음 위를 걷지. 그런데, 우리의 삶터가 사라지고 있어. 이미 12월이 넘었잖나? 근데 아직도 바다가 얼지 않았어. 계속 기다렸다간 굶어죽을지 몰라.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헤엄쳐 가 볼 거야.”
“그래서 비타민을 준비한 거군요?”
“북극곰 역사의 영웅이 있지. ‘20741’이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북극곰이야. 2008년 8월 말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알래스카 배로를 떠났어. 북극해가 아직 얼지 않았을 때였지. 그 분은 헤엄치고 헤엄치고 헤엄쳤지만 얼음을 만날 수 없었어. 687km를 헤엄치고나서야 조그만 얼음 위에 올라갈 수 있었지. 수영을 시작한 지 232시간째였지. 아마 ‘안 되겠다’ 싶었었나 봐. 그 분은 방향을 돌려 다시 육지로 돌아왔어. 새끼는 이미 죽은 뒤였지. 이렇게 헤엄치다 죽은 새끼들이 부지기수라네. 그래도 난 혼자니 괜찮아. 비타민도 챙겼고. 내일 출발이야.”
일반적으로 암컷 북극곰은 한 번에 50km 안팎을 헤엄칩니다.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데, 새끼의 수영 최대 거리가 그 정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라 북극의 바다얼음이 줄어들면서, 북극곰은 더 뛰어난 수영 능력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바다얼음과 바다얼음, 바다얼음과 육지 사이를 오가야 하는데, 이 간격이 점차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하늘에서 눈이 소복소복 내렸습니다. 바다를 향해 북극곰은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죠.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며 나즈막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길을 잃었어. 우리가 사라지는 순간 당신들에게도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몰라.”
멀리서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에 나오는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한 것입니다.
*1월22일에 이어집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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