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악질 연대’ 끊어야 한국이 산다[이미숙의 시론]

2024. 1. 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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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2024년은 근심 많은 끔찍한 해
악질 국가 축 형성 러·북·이란
김·푸틴 연대는 한반도에 불길
베트남 패망 때 같은 위기 우려
푸틴 뒷배 삼아 공격 못 하도록
동맹과 힘 합쳐 단호 대응해야

새해 초부터 ‘최악의 상황이 오고 있다’는 경고음이 넘쳐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자들에게 근심 가득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고, 미국 유라시아그룹은 ‘10대 리스크’ 보고서에서 “끔찍한 해(annus horribilis)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러시아·이란을 ‘악질 국가의 축(Axis of rogue)’으로 규정하면서 “세 나라가 세계를 분쟁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했다. 조지 W 부시의 악의 축(Axis of evil)을 변형한 개념인데, 이라크가 빠지고 러시아가 들어간 게 특징이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정치적으로 볼드모트의 해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볼드모트는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잔혹한 마법사다. 악질 국가의 축을 형성한 세 나라 수장이 악당 볼드모트가 될 것이라는 암시다. 롤링의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모든 것은 볼드모트로부터 시작됐다. 많은 가족을 파괴해 헤어지게 만든 것도, 이 모든 사람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은 것도 모두 볼드모트가 저지른 일이었다.’

여기서 볼드모트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 바꾸면 우크라이나 전쟁 후 국제 정세에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푸틴은 탈냉전 시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하며 탈공산주의 여정에 접어든 러시아를 권위주의 독재국으로 전락시킨 데 이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을 전쟁 위기로 몰아넣은 전범이다. 북한은 그런 푸틴에게 탄약과 미사일, 이란은 드론을 제공했다. 김정은과 알리 하메네이도 푸틴과 같은 볼드모트, 즉 아류 전범이 된 셈이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은 한반도에 불길한 기운을 몰고 온다. 김일성은 1950년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승인과 지원에 힘입어 6·25 남침을 자행했다. 김정은도 푸틴의 뒷배를 믿고 만용을 부릴 수 있다. 더구나, 푸틴은 노회하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김정은을 부추겨 대남 도발을 유도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이슬람 무장 세력 하마스의 이스라엘 잔혹 테러는 중동 분쟁을 유도해 미국의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푸틴의 의도와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연초 김정은은 “대한민국은 주적이며 전쟁을 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남조선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이란 말을 꺼내면서 북방한계선(NLL) 최북단 백령도 인근에서 포격 도발까지 벌이고 있다. 그 배경에도 볼드모트 푸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11·5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겐 우크라이나 지원이 큰 부담인데 전선이 중동에 이어 아시아로 확장되면 대응이 어렵고, 한국도 위기를 피하기 힘들다.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 후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정은·푸틴의 밀착으로 대한민국이 1970년대 같은 안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요즘 김정은의 행태는 그런 우려가 괜한 걱정이 아님을 보여준다. 북한은 단 한순간도 남침 야망을 접지 않았다. 빅터 차 교수와 라몬 파르도 교수가 함께 쓴 ‘코리아-새로운 남북한사’에는 미국의 베트남 철수 후 김일성이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에게 남침 지원 요청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중국 측 비밀해제 자료를 인용한 것으로, 당시 북한이 남침 플랜을 추진했음을 확인해 준다.

핵으로 무장한 김정은은 대러 밀착을 도발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전락할 때 호전적인 푸틴을 등에 업고 ‘영토 완정’ 시도에 나설 경우 한국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엄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러시아를 미·중 수준의 4강으로 받드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미국처럼 북·러 무기 거래에 대한 제재를 해야 한다. 둘째,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우리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무기 지원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이런데도 원전 연료를 30% 넘게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것은 모순이다. 경제안보 관점에서도 원전 연료의 러시아 의존은 위험하다. 미국 하원에선 러시아산 농축우라늄 수입금지법이 통과됐다. 러시아 원유·천연가스에 중독됐던 독일처럼 되기 전에 원전 연료 생산 기반 조성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2024년을 북·러의 안보 위협 무력화(無力化) 원년으로 만들 수 있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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