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길위에 김대중', 韓 현대사의 변곡점에 그가 있었다

김지혜 2024. 1. 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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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대단히 실패하는 자는 종종 위대한 것을 성취한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위대한 실패로 점철된 삶을 산 사람이 있다. 그는 사형수로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네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세 번의 대선 낙선을 거친 '실패 전문가'였다. "임금이 되고 싶었다"는 섬소년의 막연한 꿈은 75세가 되어서야 이룰 수 있었다. 이 인물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인 김대중이다.

'길위에 김대중'은 청년 사업가 출신의 김대중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1987년 대선 후보로 나서기까지의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3년 김대중추모사업회가 기획한 영화로 '노무현입니다'를 제작한 최낙용 대표가 제작에 참여하고, '노회찬 6411'의 민환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연출적으로는 특별한 개성을 찾기 어렵다. 고인이 세상을 떠났고, 그가 남긴 기록과 지인들의 인터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에 구성과 형식의 차별화보다는 자료를 최대한 활용했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자료과 미공개 영상만으로 영화는 빛을 발한다.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김대중'이라는 인물 그 자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이지만, 이토록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한 인물의 생생한 삶의 기록이 영화에 세세하게 녹아있다.

영화는 김대중이 1924년 일제강점기 전남 신안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의 청년사업가로 성공하기까지의 여정, 6.25 전쟁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치계 입문해 갖은 고초와 우여곡절을 겪은 삶을 조명한다. 특히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을 반대하다 교통사고와 납치 후 구사일생으로 귀국했으며, 신군부 세력에게 5·18 민주화운동 배후 조종의 내란음모로 사형선고를 받는 등 영화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삶을 차분히 따라간다.

특히 인상적인 미공개 영상이 있다. 전두환 정권이 김대중에게 미국 망명을 권유하고, 이 문제를 놓고 교도소에서 김대중과 부인 이희호 여사와 면담하는 영상이다. 당시 CCTV를 통해 찍힌 영상과 함께 두 사람의 육성이 나온다.

김대중으로서는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고, 반대파들에게 '도망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기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짧은 흑백 영상 안에 담긴 두 사람의 갈등과 설득, 고뇌의 순간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후 미국 망명길에 오른 김대중은 '한국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운동가로 변모한다.

전직 대통령의 삶을 다룬 영화는 '길위에 김대중'과 '노무현입니다', '문재인입니다'까지 단 세 편이다. 그중 대통령의 삶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한국 현대사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길위에 김대중'이 유일하다. '택시운전사', '1987',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등 근·현대사 영화의 소재가 된 시대와 사건을 '길위에 김대중'은 모두 관통한다. 이는 픽션이 아닌 실화이며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다.

또한 '서울의 봄'이 12.12 군사반란이라는 사건의 재현에 집중하면서 시민을 부각하지 않은 것과 달리 '길위에 김대중'에는 정치인 김대중의 철학과 비전을 지지했던 민중의 열망까지도 담아냈다.

"왜 지금 김대중 다큐를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길위에 김대중'은 한 정치인의 독재 정권 청산, 지역주의 타파, 대한민국 민주화를 향한 지난한 과정과 눈물의 광주 귀환으로 답한다.

영화의 엔딩은 1998년 '대통령 김대중'의 탄생이 아닌 1989년 약 16년 만에 광주로 돌아간 '대중의 김대중'이다.

여전히 혐오와 분열의 정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40년 전 김대중의 발자취를 훑는 것은 의미가 있다.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말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 개봉을 앞두고 이어진 정치인들의 관람 행렬이 그저 보여주기식 일정이 아니길 바란다.

이 역사의 생생한 기록 앞에서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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