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지문 다 다르다는 상식 깨질까...AI가 유사성 확인
범죄 현장에서 과학수사를 할 때 서로 다른 2개의 지문이 발견될 경우 2개의 지문이 같은 사람의 지문인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지문인지 알기 어렵다. 휴대전화의 생체 보안 수단으로 오른손 검지의 지문을 등록할 경우 왼손 검지 지문으로 보안이 잘 해제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사람의 지문은 동일인이라고 하더라도 손가락마다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 공대생들이 이같은 손가락 지문에 대한 통념을 바꾼 연구결과를 내놨다. 모든 손가락의 지문이 각기 다른 독특한 문양을 갖는다는 상식을 뒤엎은 것이다.
게이브 궈 미국 컬럼비아대 공학 및 응용과학과 3학년생이 이끄는 연구팀은 인공지능(AI)이 지문을 인식한 결과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1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공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AI는 2개의 지문에 대해 동일한 사람의 손가락 지문인지 여부를 77%의 정확도로 판별했다. 연구팀은 "동일한 사람의 각기 다른 손가락의 지문은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문을 활용한 과학수사 방식을 바꿔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 AI, 동일한 사람 지문 판별 가능...거절 반복 후 승인된 논문
연구팀은 기존 AI 프레임워크에 지문을 식별할 수 있도록 설계한 AI 시스템(Deep Contrastive Network)을 고안했다. 그런 뒤 미국 정부의 공공 데이터베이스에서 수집한 약 6만 개의 지문에서 한 사람의 각기 다른 손가락 2개의 지문 또는 두 사람의 지문 2개를 입력하고 AI 시스템이 각 쌍의 지문이 동일인의 지문인지, 다른 사람의 지문인지 판별하도록 했다.
그 결과 77%의 정확도로 한 쌍의 지문이 동일한 사람의 것인지, 서로 다른 사람의 것인지 판별했다. 한 쌍이 아닌 여러 쌍을 한꺼번에 제시했을 땐 정확도가 더욱 높아졌다.
연구팀은 연구결과를 과학수사 관련 학술지에 제출했지만 몇 달 후 게재 거절 회신을 받았다. 해당 학술지 관계자는 “모든 지문은 고유한 모양을 갖고 있다는 점은 매우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동일한 사람의 손가락일지라도 지문의 유사성을 감지하는 것을 불가능하다”며 거절 이유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연구팀은 포기하지 않고 자체 설계한 AI 시스템에 더 많은 지문 데이터를 입력하고 판별시키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학습시키고 개선했다. 그런 뒤 연구결과를 보완하고 과학수사와 무관한 학술지에 제출했지만 또다시 승인 거부를 받았다.
결국 지도 교수가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호드 립슨 컬럼비아대 공대 교수는 “보통 학술지의 편집 결정에 논쟁을 제기하지 않지만 이번 연구는 중요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며 “지문에 대한 새 정보와 기존 정보가 균형을 이루게 된다면 미해결 사건을 해결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무죄를 확인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후 몇 가지 난관을 거쳐 마침내 학생들의 논문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게재 승인을 받았다.
● 기존과 다른 AI의 지문 식별법..."AI ‘상식 뒤집기’ 예고편"
연구팀이 고안한 AI 시스템이 2개의 지문을 놓고 동일인의 것인지 판별할 수 있는 이유는 기존 시스템과는 다른 표지를 근거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지문을 식별하는 기존 방법은 ‘미뉴셔(minutiae)’라는 특징점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지문 융선의 분기점, 끝점 등을 파악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인식한다. 반면 AI 시스템은 지문 중앙에 있는 소용돌이 모양의 곡률, 각도 등을 살핀다. 연구팀은 AI의 지문 인식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로 앞으로 AI가 훨씬 많은 지문을 학습하면 정확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AI의 지문 인식 기술이 범죄 현장 등에 실제로 사용되려면 더 많은 데이터를 토대로 한 추가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AI가 앞으로 기존 상식을 엎는 놀라운 결과들을 낼 것이라는 주장의 예고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립슨 교수는 “과학수사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학부생들이 AI를 이용해 기존 통념에 도전하고 있다”며 “비전문가에 의한 AI 기반 과학적 발견은 학계를 포함한 전문가 집단이 대비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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