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中, 치명적 대만 경제제재 어려울 것… 韓-대만 협력 기회 충분”

타이베이=이윤정 특파원 2024. 1. 15. 10: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추쥔룽 대만 국립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인터뷰

지난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반중 성향의 라이칭더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가 당선되자 전 세계 경제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라이칭더가 차이잉원 현 총통보다 더한 대만 독립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중국이 대만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 경우 전 세계 공급망이 타격을 받아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긴장 고조 등에 더해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이같은 우려와 달리 대만경제연구소 고문, 대만경제학회 상무이사 등을 지낸 추쥔룽 대만 국립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지금까지 대만에 가했던 수출 제재 등의 수준을 넘어 전면적인 경제 봉쇄 등 치명적 제재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다만 미래 위험에 대비해 대중국 의존도를 최대한 낮춰야 하고, 이를 위해 수출·투자 지역 분산과 반도체 외 신산업 육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추 교수의 주장이다.

대만 내에서는 한국과의 협력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추 교수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국과 대만이 경쟁 관계이지만, 이를 응용한 신산업 등 분야에서는 협력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같은 민주주의 진영인 만큼 안보 측면에서도 한국과 대만은 ‘운명 공동체’라고 추 교수는 주장했다. 아래는 지난 14일 대만 신베이시에서 만난 추 교수와의 일문일답.

지난 13일 대만 신베이시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추쥔룽 대만 국립중앙대 경제학과 교수./이윤정 기자

―대만 국민들이 중국이 아닌 미국을 택했다.

“미국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진 건 수년 전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10여 년 전 수출과 투자 등을 합한 대중국 의존도가 80%에 달하면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2016년 차이잉원 총통 당선과 함께 위험 분산 정책이 추진됐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까지 중국에 고율 관세를 물리면서 민간 투자가 미국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 부진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으로 인한 무역 불공평, 민주주의 억압 등까지 합쳐져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세가 됐다. 안정적 투자처는 중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거다.”

―미·중 갈등 한가운데 놓이는 것은 부담일 것 같다.

“당연히 부담스럽고, 대만에도 좋지 않다. 굉장히 불안정한 입지에 있지만, 그렇다고 성장을 위한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2020년 TSMC가 미국 제재 때문에 화웨이로부터 신규 수주를 받지 않기로 했다. 당시 화웨이는 TSMC의 전체 매출 15%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고객사였지만, 영업 실적엔 큰 영향이 없었고 오히려 더욱 잘 나갔다. 대만 몫을 확실히 챙길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하에 위험을 감수하고 미국을 선택하는 거다.”

―라이칭더의 총통 당선으로 중국이 군사·경제 보복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만 국민 중에 실제로 전쟁이 날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미국 등 우방국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전쟁이 발발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게다가 대만 정부는 중국이 전쟁을 일으킬 만한 동기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주권 국가라는 주장은 하되, 실제로 독립을 추진하는 등 중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하는 식이다. ‘밖으로 드러나는 총은 피하기 쉽다(鳴槍易躲)’는 말이 있다. 중국은 보이는 총이다. 행동이 뻔히 예견되는 만큼 쉽게 막을 수 있다.

경제 부문의 경우 사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제재를 멈춘 적이 없다. 2021년 유해 생물 검출을 이유로 대만산 파인애플 석가의 수입을 중단했고, 최근엔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관세 우대를 중단했다. 중국발 리스크는 항상 있다. 다만 당장 치명적인 경제 제재가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는 중국에도 부담이다. 차이잉원 총통이 처음 당선됐을 때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실제로 뚜렷한 조치는 없었다.”

지난 13일 총통 선거에서 당선된 집권 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왼쪽) 총통 후보, 샤오메이친(오른쪽) 부총통 후보./ UPI 연합뉴스

―'반중’ 민진당이 8년을 집권했지만, 여전히 수출 부문 등에서 대중국 의존도가 높다. 이는 차기 정부의 리스크 요인이다.

“중국의 보복 실행 여부와 관계없이 대만이 중국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기본적으로 투자·무역 분산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하고, 새로운 산업도 개발해야 한다. 전통 산업들은 중국 견제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차이잉원 정부가 ‘6대 핵심전략산업(▲정보·디지털(AIoT·5G) ▲정보 보안 ▲정밀 헬스케어 ▲방위·항공우주 ▲재생에너지 ▲민생·전략비축 물자)’을 지정했는데, 차기 정부 역시 이 분야 육성에 힘써야 한다. 지금은 반도체만 성장하고 나머지 산업은 정체돼 있는 ‘K형’ 산업 구조다. 이를 개선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민생 경제’가 화두로 등장했다. 산업 구조의 불균형도 민생 경제 부진의 원인인가.

“사실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가 보유 비율이 70~80% 수준으로 높아 집값을 대폭 내리긴 어렵다. 대신 저임금 현상은 해결해야 한다. TSMC와 같은 반도체 대기업은 월급이 대폭 오르는데, 다른 산업군의 월급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니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한 업종에 투자와 인재가 과도하게 몰리니 청년층의 불만도 쌓이는 거다. 라이칭더 정부의 최대 과제는 취업 기회와 고임금을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신산업을 육성하는 거다. 전통 산업에서 어떻게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을지도 고안해야 한다. 그래야 청년층의 불만을 해결할 수 있다.”

―라이칭더는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산업 육성’을 강조했다. 반도체 위주 경제 구조를 계속 가져가려는 것 아닌가.

“대만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다. TSMC는 대만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 국방 등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TSMC를 통해 대만을 알릴 수 있었고, 대만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TSMC는 대만을 보호해 주는 존재다. 단 반도체 외 다른 산업에 대해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중점을 둬야 하고, 라이칭더 당선인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외 인공지능(AI), 군수, 보안, 통신 등을 ‘5대 신뢰 산업’으로 지정하고 육성하기로 했다. 반도체를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 한국과 대만의 협력이 강화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협력이 없었다. 디스플레이 패널, 부품 등 일부 분야에서는 오히려 경쟁 관계다. 그러나 협력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예를 들어 반도체 제품 자체는 한국과 대만이 경쟁 관계이지만, 반도체를 적용한 신산업 부문에서는 서로 보완 관계로 거듭날 수 있다. 수출도 협력할 수 있다. 대만은 기계 산업, 방직업 등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고, 한국은 다양한 영역에서 뛰어난 브랜드를 갖고 있다. 대만 공급, 한국 포장을 씌워 함께 물건을 파는 거다. 안보 분야에서도 중국을 상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운명 공동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