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곡들이 더 흥미로운 있지의 새해 첫발 [뉴트랙 쿨리뷰]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2024. 1. 1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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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새해를 맞고 일주일 뒤 선보인 있지(ITZY)의 새 앨범은 검붉고 스산한 커버 사진에서 이미 강렬하다. 자유와 극복의 정서로 "외강내강 여전사"를 내건 갑진년 이들의 당찬 포부는 그러나 첫 곡 'Born to Be'가 안무와 뮤직비디오, 곡 구성, 사운드, 콘셉트 등에서 강해지고 싶거나 강해보이고 싶었던 케이팝 걸그룹들이 '걸 크러시'라는 기치 아래 해온 것들을 망라한 느낌을 주며 그저 '나쁘지 않은' 수준에 머문다. 하지만 기시감을 주는 첫 곡과 달리 하이퍼팝을 표방해 앨범 문을 닫는 'Escalator'의 아방가르드 성향은 나무 한 그루로 숲을 판단하지 말라는 오랜 지혜를 환기시키며 우리에게 앨범 'Born to Be'를 향한 인내를 당부한다.

과연 다음 곡 'Untouchable'은 새해 벽두에 활동을 시작한 있지에게 뭔가 더 있다는 걸 내비치며 듣는 이가 이 앨범 안에 더 머물러야 할 명분으로 기능한다. 타이틀 트랙인 만큼 확실히 귀에 꽂히는 코러스를 장착한 'Untouchable'의 뮤직비디오는 록 밴드 푸 파이터스의 'The Pretender'와 비슷한 전투 경찰을 등장시켜 "세상에 맞서 나아가자"는 곡의 주제를 시각적 은유로 표현하고 있다. 강인함을 강조한 첫 두 곡을 지나 케이팝 작사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지음이 브램 스토커의 19세기 고전을 가져와 21세기 한국형 '썸' 노래에 접목한 'Mr. Vampire'부터 앨범은 좀 더 흥미로워진다. 휘슬과 피아노 루프로 직조한 자유로운 힙합 바이브가 계속 이 작품을 믿어도 좋다며 손짓하는 것이다.

이어 음악으로만 승부하겠다는 듯 뮤직비디오를 생략한 'Dynamite'의 무표정한 마이애미 베이스 그루브까지 체험하고 필자는 문득 한 가지 사실에 주목했다. 그건 그룹 측에서 밝힌 바 'Born to Be'가 미니 앨범이란 것이다. 보통 미니 앨범이란 풀렝스 정규작보다 적은 곡(3~5곡 정도)을 싣기에 붙이는 전제로, 따라서 열 곡을 담은 있지의 신작은 미니 앨범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이유없이 정규 앨범 분량 곡을 담아 미니 앨범으로 발표하진 않았을 것이다. 답은 5번 트랙부터 차례로 나오는 멤버들의 솔로 곡에 있었다. 다섯 명 각자가 작사, 작곡에 참여해 더욱 의미를 띠는 이 깜짝 선물은 예지의 'Crown on My Head'부터 시작한다. 

사진=JYP엔터테인먼트

강력한 하드록 기타 리프로 문을 여는 예지의 곡은 그러나 2분에 이르지 못한다. 나머지 네 명의 곡들도 마찬가지다. 짧은 건 1분 30초, 긴 건 1분 40초 대다. 여기 실린 솔로 곡들은 그래서 완료보단 과정에 있는 스케치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들은 멤버 각자가 관심 둬왔을 음악 스타일, 나아가 향후 솔로 앨범 색깔까지 예고한다. 아마도 예지와 류진은 시원한 록 기타 사운드에, 리아와 유나는 다차원의 신시사이저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아니었던 '미니'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더 재밌는 건 이 솔로 곡들이 앨범의 첫 곡과 타이틀 곡을 모조리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강상 이유로 활동을 쉬고 있는 리아의 'Blossom'과 록 팬이라면 코러스까지 기다려야 곡의 진가를 알 수 있을 류진의 'Run Away'가 뽐내는 매력은 대단하다. JYP 소속 작사/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심은지가 리아 곁에서 함께 한 'Blossom'은 곡 전체를 장악하는 신스 텍스처와 빨려드는 후렴구가 인상적이고, 개인적으로 본편이 가장 기대되는 류진의 경우 뮤직비디오에서 연기가 예사롭지 않아 훗날 배우로서 가능성도 열어둔 듯 보인다. 물론 구불거리는 셔플 그루브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비밀스럽게 꺼내 보인 채령의 'Mine'도, 수록된 열 곡에서 일곱 곡이 보유한 뮤직비디오들 중 가장 긍정적이고 공을 들인 느낌을 준 유나의 'Yet, but'도 양질이긴 매한가지다.

이처럼 그룹 곡들을 빌드업 삼아 중반 반전을 터뜨리는 솔로 곡들이 실은 미니 앨범 'Born to Be'의 핵심이었다. 그 곡들이 전하는 노력과 가능성, 용기와 진심, 희망의 기운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노출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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