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에 소환되는 '이사 보수 승인 의결권' 논쟁
작년 남양유업을 시작으로 '남매의 난' 아워홈에서도 소송 제기
"이사 개인 아닌 전체 한도 승인까지 문제삼는 건 무리"란 시각 우세했지만 분위기 바껴
3개월 전 만호제강 분쟁서 "이사인 주주는 보수한도 안에서 특별이해관계인"이란 판결 나와
'이사 보수 승인 의결권'을 둘러싼 논쟁이 잇따라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다. 행동주의펀드의 타깃이 된 남양유업에 이어 '남매의 난'이 발발한 아워홈에서도 이를 분쟁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간 법조계에선 개별 이사의 보수도 아니고 이사 전체 보수한도 안건까지 의결권을 배제시키는 건 무리란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이를 뒤집는 판결이 나오면서 분쟁의 소재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12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아워홈 최대주주인 구본성 명예회장이 이달 초 여동생인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과 구명진 사내이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으로 고소했다. 위법한 절차로 거액의 이사 보수를 수령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게 구 명예회장의 주장이다. "주식회사 이사의 보수를 주주총회 결의에서 정할 때 이사인 주주는 특별 이해관계가 있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데 이사 보수한도를 150억원으로 하는 안건을 가결시켰다"고 지적했다.
고(故) 구자학 창립자의 자녀들 간 싸움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지은 부회장(삼녀)은 2015년 아워홈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지만 이듬해 오빠인 구본성 명예회장(장남)에게 대표직을 내줘야 했다. 구 명예회장이 장자승계 원칙을 내세워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구 부회장은 아워홈 관계사인 캘리스코 대표이사로 밀려났다. 2017년 복귀를 계획했지만 당시 장녀인 구미현 씨가 구 명예회장 손을 들면서 '1차 남매의 난'은 오빠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구 명예회장은 2021년 보복운전과 폭행 혐의로 논란을 빚으면서 이사회에서 해임됐고 구 부회장은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2차 남매의 난'에선 동생이 승리한 것이다. 남매의 난은 막을 내렸지만 이들의 감정싸움은 소송 등으로 재차 드러났다. 구 명예회장이 이번에 벌인 '이사 보수 승인 의결권' 소송 역시 동생의 경영 입지를 흔들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이사 보수 승인 의결권' 소송은 상법상 특별이해관계인의 의결권 배제 조항(제368조 제3항)에 근거한다. 주주총회의 결의에 관해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다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데 주주인 이사의 보수한도 결정 역시 이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아워홈이 소송 첫 사례는 아니다. 지난해 6월 남양유업 사례가 있었다. 행동주의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주주제안으로 선임된 감사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과도한 보수 수령을 막기 위해 꺼낸 카드였다. 작년 3월 정기 주총에서 통과됐던 이사의 보수한도 결의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결의 취소 제기는 상법상 감사에게 보장된 권리 중 하나다.
남양유업 감사는 "회사 이사는 8인이지만 실제 보수를 받아가는 건 사내이사인 홍 회장과 그의 아들 홍진석 상무 둘뿐"이라며 보수한도 승인이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질적으로 오너 일가가 그들만의 보수한도를 정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홍 회장을 특별이해관계인으로 분류하는 게 맞다는 논리를 폈다.
이 특별이해관계인의 범위는 해석의 여지가 있어왔다. 법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도 "이사 본인의 보수를 정하는 안건에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이사들의 전체 보수한도를 정하는 안건까지 의결권을 제한시키는 건 무리가 있다" 보는 시각이 그간 우세했다. 아워홈도 구 명예회장의 논리에 반박해 "아워홈은 그간 이사인 주주는 특별이해관계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결의해왔다"는 입장을 펴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시각을 뒤집는 판례가 3개월 전 나와 법조계에서도 화제가 됐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케이블 제조사 만호제강 건이다. 만호제강은 소액주주가 규합해 최대주주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곳인데, 소액주주들이 이 '이사 보수 승인 의결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8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그해 9월 "이사인 주주는 주총 보수한도를 결정할 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가처분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가 소액주주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상장사의 경우엔 사실상 최초의 판결 사례로 통한다. 가처분이다 보니 본안 소송인 남양유업보다 판결이 빠르게 나왔다. 남양유업 판결은 이르면 내달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행동주의펀드 관계자는 "남양유업과 아워홈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올 경우 '이사 보수 승인 의결권' 소송이 경영권 분쟁에서 자주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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