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대신 ‘호텔밖 풍경’ “기교 뺀 가장 진솔한 작품”

유승목 기자 2024. 1. 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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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작가… 김명중 개인전
매카트니 투어때 들른 호텔서
수십여점 풍경사진 찍어 전시
“호텔방 문 닫는 순간 혼자 돼”
IMF 사태로 학업 중단… 독립
먹고 살려고 닥치는대로 찍어
“철부지의 절박함이 나를 키워”
호텔 유리 테이블에 하늘과 구름의 모습이 비친다. 마치 호텔 방 안으로 하늘이 스며든 듯하다. MJ Kim, Sao Paulo, Brazil #423, 2023. Pigment Print on Glossy RC Paper, Acrylic Facemount, 122×183㎝. 원앤제이갤러리 제공

“30년 전 유학을 간다고 하니, 친구가 ‘어중이 떠중이가 유학 가니 이젠 명중이도 가는구나’라고 말하대요. 그 어중이 떠중이 명중이가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가 믿는 사진작가로 전 세계를 누비며 전시도 열고, 영화감독이 돼 메가폰도 잡게 됐어요. 하하.”

사진작가가 되는 데 거창한 뜻이나 예술론이 있던 건 아니다. 치기 어린 20대,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다짜고짜 유학을 떠난 영국 학교에서 서툰 영어 실력으로 잘릴 위기에 처했을 때,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의사소통 좀 못해도 그저 찍으면 된다는 생각에 궁여지책으로 카메라를 쥐었다.

그렇게 숨통 좀 트이나 싶더니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찾아와 학업을 중단하게 됐다. 어려워진 형편에 부모님이 보내온 전보는 “알아서 살아라”. 생존의 기로에서 이번에도 눈에 카메라가 들어왔다. “좌절하기보단 뭐라도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퍼뜩 들어 작은 신문사에 견습 사진기자로 들어갔어요. 그렇게 시작한 거죠, 뭐.”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콧대 높은 사진기자들이 ‘쇼 비즈니스’라고 꺼리던 연예인 사진도 앞장서 찍으러 다녔다. 그렇게 작은 신문사의 동양인 견습은 프레스어소시에이션(PA) 정직원이 됐고, 어느새 영국 대표 통신사 연예부 핵심 사진기자가 됐다. 사진작가 김명중은 지난 11일 인터뷰에서 철부지의 도전 정신과 생존의 절박함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인정받는 유명 사진작가 ‘MJ KIM’을 만든 자양분으로 꼽았다. 그는 “사진 좀 찍는다고 인정을 받으니 일거리가 생겨서 스파이스걸스를 촬영했는데 ‘MJ란 친구가 찍은 사진에 스파이스걸스가 만족했다더라’고 소문이 났다”며 “그렇게 마이클 잭슨을 찍었고 2008년 폴 매카트니 경을 만나 15년째 함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작가 김명중
MJ Kim, Philadelphia, USA #540, 2016. Pigment Print on Glossy RC Paper, Acrylic Facemount, 76×102㎝. 원앤제이갤러리 제공
2019년 미국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서 공연 중인 폴 매카트니의 모습. 피아노 속에서 김명중이 촬영하는 모습이 보인다. mjkimpictures 제공

작년 한 해 미국과 호주, 브라질 등 폴 매카트니의 투어를 따라 전 세계를 누빈 김명중이 간만에 한국을 찾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Rooms Without A View’에 아끼는 사진들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시엔 유명 사진가의 명성을 안긴 폴 매카트니 사진이 아닌 수십여 점의 풍경 사진들이 걸렸다. 폴 매카트니 투어 때마다 들른 도시의 호텔에서 찍은 사진들로 15년째 모아오면서도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은 작품들이다.

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다 호텔 방에 들어와 문을 닫는 순간 혼자가 되더라”며 “그저 눈앞에 주어진 창문 너머의 광경을 기교나 멋 부림 없이 있는 그대로 담은 진솔한 사진들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폴 매카트니의 전용기를 함께 타고, 5성급 호텔에 묵으면서도 필연적으로 느껴지는 고독과 이방인으로서의 고민에 대한 나름의 해답인 셈이다. 그는 “당시의 감정과 기분을 오롯이 담은 사진을 관람객들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섞어 새롭게 해석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유명인물과의 일대일 소통만 해왔던 그가 작품을 매개로 다수와 대화에 나선 것이다.

사진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건 스토리텔링의 힘을 느끼면서다. 코로나19로 투어가 중단돼 한국에 머물던 중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의 부탁으로 재개발을 앞둔 을지로 일대 공업소 골목을 지켜온 사람들을 찍게 된 게 터닝포인트였다. 그는 “6개월간 을지로에서 숙식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소주를 기울이며 연예인이나 정치인뿐 아니라 보통의 시민들도 각자 빛나는 스토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제가 예술과 문학에 문외한이어도 사진으로 밥벌이를 하고, 가족부양에 걱정하는 중년남자가 되며 묵묵히 살아오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은 것”이라고 했다.

찰나의 순간을 기록해온 김명중은 그 순간을 이어붙이는 영화감독으로도 새로운 소통을 준비 중이다. 우연히 만난 영화 ‘호텔 뭄바이’의 제작자 마크 몽고메리의 제작으로 단편영화 ‘쥬시걸’을 연출한 그는 올해 직접 시나리오 작업 중인 장편영화도 계획 중이다. 그는 “삶이 우연의 연속이다. 개인적인 우연의 종착점이 폴 매카트니라고 생각했는데, 전시부터 영화까지 우연들이 계속 쌓여 나간다”며 “디지털 세상에서 사진이든 영상이든 쓰레기를 만들지는 말자는 게 개인적인 다짐”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가장 중요한 건 폴 매카트니와의 의리”라며 “앞으로도 그의 사진작가로 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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