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맞는 일본 미술거장… ‘빛과 그림자’로 한국 밝힌다

유승목 기자 2024. 1. 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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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한옥마을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계동길 어귀에 대중목욕탕 '중앙탕'이 있었다.

2022년 문을 연 이곳은 일본 카게에(影繪·그림자 회화) 거장인 후지시로 세이지(藤城淸治·100·사진)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장소다.

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패전부터 경제 고도성장 속 가족의 해체 같은 사회적 폐해 등을 모두 겪은 그가 빛과 그림자의 파노라마로 동심 가득한 작품을 선보이는 이유다.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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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오사카 파노라마’ 展
동화적·몽환적 분위기 물씬
사랑·평화·공생 메시지 담아

북촌한옥마을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계동길 어귀에 대중목욕탕 ‘중앙탕’이 있었다. 1960년대 문을 연 이후 많은 사람이 몸을 씻어내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60여 년이 지나 문을 닫았지만, 이곳엔 여전히 남녀노소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달라진 게 있다면 한 거장의 작품이 걸린 작은 미술관이 됐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그의 작품으로 위안받으며 마음의 때를 씻어낸다는 점이다.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얘기다. 2022년 문을 연 이곳은 일본 카게에(影繪·그림자 회화) 거장인 후지시로 세이지(藤城淸治·100·사진)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장소다. ‘고양이 뉴욕을 가다’란 이름의 상설전을 통해 후지시로가 평생을 천착해온 사랑과 평화, 공생의 메시지를 담은 카게에 원화들과 드로잉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앞에 만해 한용운의 옛집(유심사)과도 맞닿아 있어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카게에의 거장 후지시로가 올해 100세를 맞아 자신의 작품들을 대거 들고 한국을 찾아온다. 26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오사카 파노라마’전에는 80년에 걸친 화업을 망라하는 차원에서 카게에 200여 점을 비롯, 특별히 제작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1924년 일본 도쿄서 태어난 그는 일본 전통의 그림자극, 인형극에서 영감을 받아 1940년대 카게에 장르를 창시했다. 밑그림에 빛의 투과율을 조절하는 특수용지를 잘라 붙인 뒤 뒷면에서 조명을 투사해 완성하는 그림이다. 미국 뉴욕 등에서 열린 전시 등을 통해 ‘동양의 디즈니’로 불린 그의 카게에는 일본 에도시대 판화로 서양 인상주의에 영향을 준 ‘우키요에(浮世繪)’처럼 일본 상업예술과 현대미술에 새 지평을 열었단 평가를 받는다.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미야자와 겐지(宮瑞悟)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카게에 기법으로 그리기도 했는데, 일본 내에선 미야자와의 세계관을 가장 제대로 그려냈단 찬사를 받았다.

동화적이고 몽환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의 그림의 가장 큰 주제는 평화다. 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패전부터 경제 고도성장 속 가족의 해체 같은 사회적 폐해 등을 모두 겪은 그가 빛과 그림자의 파노라마로 동심 가득한 작품을 선보이는 이유다.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을 잘 알고 싶고, 한국을 더 가까이하고 싶다”고 밝힌 후지시로는 1950∼1960년대 ‘선녀와 나무꾼’이나 ‘개와 고양이와 구슬’ 같은 한국 전래동화를 카게에로 담아내기도 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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