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명, 척박한 모래판에도 꽃을 피운 촉촉함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내가 오두식이면 그짝 대가리를 깨버렸을 거예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씨름 선수를 은퇴한다는 말에 결국 숨겨뒀던 본성이 깨어났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누구보다도 친구를 생각하고 있다. ENA 수목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극본 원유정, 연출 김진우) 속 오유경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는가 하면 어느 순간 날카로운 형사의 촉을 발휘해 모두가 지나쳤던 것들에서 새로운 단서를 찾는다. 성장과 로맨스,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모래에도 꽃이 핀다'가 중구난방 퍼지지 않고 물 흐르듯 진행될 수 있는 건 오유경을 맡은 이주명의 제대로 충심축을 잡아주는 연기가 있기 때문이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20년째 떡잎인 씨름 신동 김백두와 소싯적 골목대장인 그의 첫사랑 오유경이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청춘 성장 로맨스다. 이주명은 거산군청 씨름단 관리팀장으로 위장수사 중인 형사 오유경 역을 맡았다. 수사를 위해 해체 직전의 거산군청 씨름단 관리팀장으로 내려온 오유경은 소꼽친구 김백두와 만나 예상치 못한 인연을 이어간다.
오유경은 본디 거산 출생으로 어린 시절의 이름은 오두식이다. 오두식은 어린시절부터 온 동네 남자아이들을 휘어잡은 골목대장으로 운동부 코치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자신의 롤모델 '미숙이 언니'를 따라 다른 길을 선택한 오두식은 이름을 바꾸고 거산으로 돌아온다.
오유경은 고향에 내려왔지만,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몰라보기를 바란다. 낮에도 양산으로 자신을 감추고 직장 후배 현욱과 부부인 척 위장을 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러나 오직 한 명, 백두는 자신을 알아본다. 계속해서 자신을 두식으로 의심하는 유경은 결국 숨겨놨던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 번 고삐가 풀리니 둘의 케미가 제대로 터진다. 두 사람의 티키타카를 보여주고 있으면 자연스레 웃음을 짓게 된다. 특히 이주명은 허허실실의 백두를 상대로 적당한 완급 조절을 보여주고 있다. 사투리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최근 '무인도의 디바', '소년시대' 등 사투리를 앞세운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운데 '모래꽃' 역시 경남 사투리를 앞세워 티키타카를 극대화하고 있다.
대구 출신 장동윤도 어색함이 없지만, 부산 출신 이주명의 사투리가 단연 발군이다. 주변 배우들의 사투리를 감수하기도 했다는 이주명은 적절한 중심을 잡으며 유쾌하게 극을 이끌어간다. 롤 모델로 짐 캐리를 꼽으며 '한계를 정해놓지 않고 완전히 망가질 수 있는 모습이 존경스럽다'는 이유를 밝힌 이주명은 '모래꽃'을 통해 자신의 롤모델에 한 걸음 다가갔다.
이주명이 뱉는 사투리는 웃음을 안기지만, 그 안에는 백두를 향한 마음이 담겨있다. 거침없지만 진심을 담은 유경의 조언은 '만년 유망주' 꼬리표만 달고 은퇴하려 했던 백두를 다시 모래판으로 부른다. 백두가 무너질 때마다 백두를 일으켜 세우는 유경은 백두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된다. 사투리가 오고가는 둘의 대화가 마냥 웃기게만 흘러가지 않는 것은 유경의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고, 이를 표현하는 이주명의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닿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백두와 유경의 관계 역시 친구 이상의 관계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백두는 모든 사람의 사랑과 걱정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지만, 그중 단연 백두를 신경쓰는 사람은 유경이다. 반대로, 만사가 천하태평한 백두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유경을 향한 마음이 담겨있다.
전작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후 로맨스물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던 이주명은 차기작인 '모래꽃'에서 그 소원을 풀게 됐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술에 취한 백두의 입맞춤으로 진도가 순식간에 나갔다. 드디어 생긴 '로맨스 상대' 장동윤 앞에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이주명의 모습은 앞으로 둘 사이가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기대감을 높여준다
이런 유경이 본업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색다르다. 씨름단 관리팀장으로 내려왔지만, 이는 위장이다. 본디 유경의 직업은 경찰이다. 노래를 부르던 '미숙이 언니'와 함께 일하고 있는 유경은 최칠성 사망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서울에서 거산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이주명은 애제자 동석의 승리에도 불안해보이는 연 코치의 모습을 보고 날카로운 감을 발휘하거나 최칠성의 죽음과 얽힌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은 백두와 보여주는 티키타카와는 다른 모습이다.
2019년 KBS 2TV '국민 여러분!'을 통해 데뷔한 이주명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이십대 중반에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시청자들에게 강한 눈도장을 찍은 건 첫 주연작 2022년 방송됐던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였다. 드라마 종영 이후 '패밀리'에 특별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1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졌다. 그리고 돌아온 작품이 첫 단독 여주인공으로 나서는 '모래꽃'이다. 짧지 않은 공백기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인상적인 활약이 필요했다.
게다가 '모래꽃'은 '만년 유망주' 백두가 마침내 개화하는 스포츠 드라마이자, 20년 전 소꿉친구가 다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는 로맨스 드라마인 동시에 과거와 현재 벌어진 살인 사건의 비밀을 찾아내는 미스터리 드라마다. 그리고 유경은 주인공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조력자, 소꿉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여자 주인공, 살인 사건의 비밀을 풀어내는 형사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이주명은 이를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1년이 넘는 기간은 단순히 공백이 아닌 스스로를 갈고 닦은 시간이 됐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도 증명했다. 척박한 모래를 촉촉하게 적신 이주명의 연기로 인해 비로소 모래에도 꽃이 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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