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설명부터 경력개발 가이드까지…이주민이 직접 만든다
일 원하는 이주여성 위한 마을기업
“귤껍질이 음식물 쓰레기인 것 아셨어요? 근데 파인애플 껍데기는 일반쓰레기 봉투에 버려야 한대요. 과일 껍질에 따라 쓰레기 버리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도 외국인들은 대부분 모를걸요.”
“보이스피싱 정보도 필요해요. 보이스피싱 종류, 예방법, 그리고 사고 후 대처 방법도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주거, 교통, 금융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내국인들은 생각하지 못한 생활 속 다양한 정보와 한국살이 ‘꿀팁’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라인 집필 회의에 모인 외국 유학생과 결혼이주여성들이다. 태어난 곳은 각양각색이지만, 유창한 한국어로 스스럼없이 소통한다. 홍콩,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들은 다문화 가족을 위한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예비 사회적기업 ‘다다르고’의 강사이자 활동가이기도 하다.
식당, 요양병원, 건설현장 등 이제 우리 삶터 곳곳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피부색도, 쓰는 언어와 문화도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는 게 몇 년 전만 해도 낯설었지만, 점차 익숙한 풍경이 되고 있다. 실제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 수는 2022년 말 기준 약 224만명으로, 팬데믹이 덮쳐 감소세를 보이다 3년 만에 역대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저출생, 고령화로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화하면서 해결책으로 꼽히는 것이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0년 이후 3년간 5~7만명 수준의 외국인 노동자 고용 한도를 지난해 11만명까지 확대했다. 올해는 역대 최대인 16만5천명으로 상향해 외국인 노동자 인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이주민, 외국인을 부족한 일손을 메우는 수단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일례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교육과 상담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의 예산이 올해 전액 삭감됐다. 전국 약 44곳에 이르던 센터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 및 산재 등의 문제를 상담할 곳을 잃게 됐다. 노동력 확대에만 매달려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과 노동권 보장을 외면하게 된다면, 유럽 사회와 같이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큰 사회적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일자리를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주민과 외국인 노동자를 보듬고 긍정적 관계를 맺어가는 사회적경제 기업의 모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0년 설립된 다다르고는 다문화 가족의 정착을 돕기 위해 다양한 교육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성가족부 지정 예비 사회적기업이다. 16년간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던 다다르고 대표 권보근씨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선 한국어뿐 아니라, 개인의 경력개발에 목표를 둔 중장기적 정착 교육이 필요하다고 봤다. 권 대표는 “현재 이민자 교육은 고등교육을 마친 유학생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초기 정착에만 집중하고 있어,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교육이 부재하다”면서 “다다르고는 이들의 취업과 자기 계발 및 경력개발 등 중장기적인 정착 교육을 개발하고 제공하고자 한다”고 설립 목표를 밝혔다.
다다르고의 또 하나 특징은 이주민과 외국인들이 직접 콘텐츠 개발자로, 그리고 직원과 강사로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다르고의 강사 대부분은 결혼 이주여성으로 다다르고 수강생으로 첫발을 들인 뒤, 강사로서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오는 1월 말 배포될 ‘외국인을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라인’ 집필에도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다르고가 한국에서 두 번째 직장이라는 홍콩 출신 카르먼(36)은 “첫 직장에서는 문화적 차이로 업무 외에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하지만 다다르고는 다양한 국가 출신 직원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라서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가 없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언어와 외로움이다.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대학교에 소속해 또래 한국 대학생들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결혼이민자들은 입국 후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한국 사회와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입국 뒤 배정받은 산업 현장 외에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사회 참여 기회가 없는 결혼이민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사회적기업인 ‘마을무지개’가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마을무지개는 지난 2011년 결혼 이주여성들의 마을 독서 자조 모임에서 시작했다. 당시 전명순 대표는 일할 기회를 원하던 이주여성들을 모아 지역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문화 교육을 진행했다. 호응이 이어지자 전 대표는 유료수업으로 전환하고 마을기업 법인을 세웠다. 방학 기간 교육사업 운영이 쉽지 않자 매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주여성들의 재능을 살린 음식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그때 어린 자녀와 시어머니를 위해 저녁 일찍 귀가해야 하는 이주여성들의 사정을 헤아려 저녁 장사는 절대 하지 않는 원칙을 세웠다.
전 대표는 “이주여성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갖는 것은 가정에서 아내와 엄마로서 지위를 인정받는데에도 의미가 있다”면서 “경제적 안정 외에도 일하는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것은 자녀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주여성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을무지개는 은평구 본점 외에 이주여성들이 점장으로 운영하는 지축 2호점 식당과 케이터링, 팬데믹 때 새롭게 시작한 도시락 및 반찬 사업 등 사업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주민, 외국인 노동자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경제 기업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이주민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기업 현장에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는 맞춤형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에서는 초기 정착에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주로 제공하고, 고용노동부 등에서 운영하는 진로 및 경력개발 프로그램도 대부분 내국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주민들이 직접 만든 사회적경제 기업의 경우 법과 제도, 행정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과 행정 업무 처리의 미숙함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이주여성들로만 설립한 ‘톡투미다밥협동조합’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조합은 2021년 조합원 10명으로 시작해 하루 매출 약 600만 원의 성과를 올리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5년 차를 맞은 지금 조합원은 5명으로 줄었다. 월 매출도 절반 이하로 떨어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합의 이레샤 페라라 이사장은 “한국에 거주한 지 10년, 20년 차인 이주여성들의 경우, 언어가 유창하더라도 국내 행정 절차와 행정 업무가 미숙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부 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한국어 수업이나 생활지원서비스에 그쳐, 이러한 역량을 갖출 기회가 적다. 이주여성의 (기업) 경영 지원 및 관리를 위한 일대일 멘토링 혹은 코칭 프로그램을 제공해 장기적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주민들이 정착하는 데 또 하나의 장애물은 편견이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고국을 떠나 한국에 온 이들은 실제로 경제활동에 대한 의욕과 배움에 대한 의지가 높은 편이지만, 그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내국인들보다 낮은 보수와 열악한 처우에 놓일 때가 많다. 권보근 다다르다 대표는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주민을 노동력으로만 볼 게 아니라 인식을 바꿔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봐야 한다. 이들이 각자의 커리어를 가지고 지속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일에 대한 선택권을 주고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이주민 일자리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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