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에서 본 K버블 [뉴노멀-실리콘밸리]

한겨레 2024. 1. 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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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CES 2024’ 행사장 모습. 연합뉴스

손재권|더밀크 대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9~12일 펼쳐진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시이에스(CES) 2024’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개인적으로는 12번째 시이에스 현장 취재였는데, 그 어느 해보다 큰 혁명적인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전시회 시작 전 많은 전문가와 현지 언론들은 인공지능(AI)이 쇼를 지배할 것으로 예상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 인공지능이 2024년 이후 비즈니스의 모든 것이며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것이 기술의 목적임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인공지능 외에 모빌리티, 디지털 헬스, 스마트 홈, 메타버스, 로봇 등 카테고리도 중요한 기술 흐름이었지만, 인공지능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메가트렌드’였다.

실제 삼성전자, 엘지전자, 현대기아차, 소니, 벤츠, 지멘스, 보슈(보쉬), 에이치디(HD)현대, 에스케이(SK), 두산, 롯데, 존 디어 등 글로벌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인공지능을 탑재한 제품과 서비스들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사내 업무 과정에도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해, 비즈니스 중심에 놓겠다고 선언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 정기선 에이치디현대 부회장 등은 기자들 취재 때 웃는 표정이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시이에스 2024의 또 다른 특징은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국 기업과 기업인들이 나름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잠정 집계에 따르면, 시이에스 2024에는 한국에서 850개가 넘는 기업(스타트업 포함)이 참가했다. 전체 전시기업은 4300개 이상, 참관객도 13만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현장에서 ‘프리뷰쇼’ ‘서울이노베이션포럼’ 등과 같은 브이아이피(VIP) 네트워크 이벤트도 활발히 진행됐다. 위기 속에서 새 비즈니스 기회를 찾고자 하는 노력들이다.

하지만 전시장 곳곳에서 한국인을 볼 수 있다 보니 “마치 코엑스 같았다”는 말도 나왔다. 실제 각국 스타트업이 전시하는 유레카 파크는 전체 면적의 25% 이상을 한국 관련 기관, 기업, 대학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전시인지, ‘기관 홍보’를 위한 전시인지 판단하기 힘든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시이에스 케이(K)-버블’이다. 버블은 실체 없는 ‘거품’을 뜻하기도 하지만 ‘필터 버블’, 즉 필터링된 정보가 특정 이용자에게만 도달하는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한국 기업, 기관들이 준비한 메시지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전달되지 않고 시이에스를 찾아온 한국인들에게만 노출된다는 것이다.

실제 시이에스를 찾은 글로벌 미디어나 비즈니스 리더들이 전시된 양만큼 한국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주목했는지 보면 회의적이다. 한국 기업들과 스타트업의 글로벌화, 미국 진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지만, 미국에서 한국을 보면 일부 대기업 외에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시이에스에서 글로벌 미디어들의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 보도 비중이 낮은 이유를 물어보면 “잘 몰라서. 정보가 없어서”란 답이 많다.

시이에스 참여 자체가 낭비는 아닐 것이다. 낭비적 행동이 문제다. 글로벌 진출을 위해 전시회에 왔다면서도, 지속적인 해외 네트워크 확보와 글로벌 진출 전략 없이 해외 세일즈와 마케팅, 투자유치 활동 등 핵심을 외부에 의존하는 곳도 적지 않다. 미국까지 와서 국내 언론 보도에만 신경쓰고 의존하는 기업이나 기관이 상당수다. 무대 설치에는 많은 돈을 쓰면서 실질적인 해외 네트워크 확보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글로벌 무대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으로 해외 언론과 비즈니스 리더들에 노출할 수 있는 치밀한 실행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 시이에스 202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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