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도 전쟁이 계속되는 세 가지 이유

이승원 국제 칼럼니스트 2024. 1. 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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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다. 2022년 시작해 끝나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두 해를 넘길 기세다. 평화로운 세계는 요원한 일일까.

2023년 10월 1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숨진 희생자의 장례식이 열렸다.
오슬로평화연구소의 '웁살라 분쟁 데이터 프로그램’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7년까지 감소했던 전 세계 분쟁 건수가 2010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내전 및 국가 간 전쟁과 이로 인한 사망자 수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유엔은 2023년 1월 전 세계 폭력 분쟁 수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한 번 중단된 전쟁은 1년 이내에 다시 발발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으며, 평균적으로 연간 5회 정도 전쟁이 발생한다.

세계는 전쟁 중

2023년 10월 30일, 저명한 국제관계 평론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올라온 글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A World at War", 즉 '세계는 전쟁 중’이라는 의미다. 글에 따르면 전 세계 분쟁의 빈도수, 강도, 기간 등은 냉전 종식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2년에만 55건의 분쟁이 발생했고 평균 지속 기간은 약 8~11년으로, 10년 전 33건의 분쟁이 발생하고 평균 7년간 지속됐다는 점과 비교할 때 빈도수, 기간 면에서 증가했다. 2022년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0억 명이 분쟁 피해 지역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3년 초까지 전 세계 강제 이주자 수는 1억800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 전쟁은 흔하다. 언론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우리 스스로 관심이 없거나 그저 모르고 지나갈 뿐이다. 전 세계를 흔들었던 양차 대전을 대부분 대표적인 전쟁으로 기억하겠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유럽 전쟁’이고 그 이후에도 여러 종류의 전쟁 혹은 분쟁이 다양한 곳에서 계속됐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공산주의 체제 및 이념 경쟁이 최고조에 달하던 냉전 시대를 지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 문제로 불거진 걸프전(1991·유엔 안보리 대응), 알카에다의 미국 본토 공격(2001. 9. 11.), 미국의 일방적 이라크 침공(2003) 등이 이어졌다. 그리고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이 연달아 발생했다. 지금 나열한 사건들은 지극히 대표적인 몇몇 사건만 요약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예멘 등 중동 지역도 조용할 틈이 없고, 저 멀리 아프리카 일부 지역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최근 발생했거나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전쟁만 나열해보자. 2011년 시리아 전쟁이 시작된 이래 50만 명 이상의 시리아인이 사망하고 1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23년 9월 말에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있는 코카서스에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새로운 분쟁 가능성이 열렸다. 아제르바이잔이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점령하면서 지난 30년간 이 지역을 사실상 지배해온 아르메니아 민족 15만 명이 떠나야 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유혈 분쟁을 벌였다. 여기는 세계에서 분쟁이 가장 오래 계속되는 지역 중 하나다.

한편 아프리카에서는 수단의 내전이 격화되고, 에티오피아에서 분쟁이 다시 발발했다. 2023년 7월 니제르에서 발생한 군부 장악은 2020년 이후 사헬과 서아프리카에서 여섯 번째로 일어난 쿠데타로 기록된다. 각종 전쟁과 정치적 분쟁, 경제 붕괴 등의 이유로 난민들도 급증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2023년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지중해를 통해 유럽행을 시도하다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만 9월 24일 기준 2500명을 넘었다. 2023년 1월부터 9월 24일까지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키프로스 등 남유럽 해안에 도착한 이주민과 난민은 총 18만6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힘 빠진 미국, 힘없는 유엔

2023년 2월 23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팽팽한 대결 속에서도 핵전쟁이라는 극단의 사태를 막기 위한 자제로 '차가운 평화, 불안 속 안정’이 이어졌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은 그야말로 슈퍼파워, 일극 체제의 가장 상위에 존재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들 부시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 공격, 이라크 침공 등이 차례로 발생한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 일종의 세계 경찰 역할을 해왔지만, 유엔 안보리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때다. 여기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정치적·경제적으로 공고하던 미국의 위상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 부상한 곳이 중국이다. 이 시점부터 'G2’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초강대국으로 기능하던 미국이 이전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국제 문제에서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국이 어떤 노선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당시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면서 기존 국제적 규율, 체제 등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나토를 해체하라고 협박했으며, 파리기후협약도 무시했고, 2015년 이란과 맺었던 핵 협정도 파기했다. 중국과는 노골적인 대치를 이어갔다. 이후 바이든이 대통령이 됐지만 '중국 견제’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보호주의를, 중국이 국제협력과 개방을 외치는 기묘한 상황이 됐다.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이 힘을 빼는 곳이라면 반드시 다른 제2, 제3의 강대국들이 발을 들여놓게 된다. 미국과 서방 중심의 기존 질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일리가 있지만, 분쟁은 그러한 미국의 공백에서 시작된다.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뺀 이후 사우디와 이란 등의 움직임이 시작됐고, 하마스의 도발도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과거 국가 간 전쟁이 일대일 양상을 띠었다면 21세기 들어서는 국가 대 테러분자·반정부군 분쟁이 이어지고 그 성격 또한 국제화하고 있다. 예멘에서 벌어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이 대표적이고, 미국도 직간접적으로 관여돼 있다. 양상이 복잡해질수록 한번 시작된 분쟁은 끝을 보기도 힘들다. 왜 전쟁이 계속되는지 말해주는 또 다른 대목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엔이다. 걸프전까지만 해도 중재자 역을 수행했던 유엔은 이제 그 역할에서 멀어지고 있다. 특히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가 더더욱 어려워지면서 국제적 개입 및 대응이 힘들어지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부터 러시아가 당사자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월등히 높아지면서 상임위 차원의 합의란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앞서 소개한 평론지에 "미국과 유럽 강대국은 갈등 ’해결‘이 아닌 갈등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글로벌 위기와 함께 국내 정치적 계산에 몰두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직접 군사 개입으로 정치적·물리적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난민, 이민자, 원조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양상이 변해가고 있다는 의미다. 갈등 해결이 아닌 지원과 사후관리에 초점을 두는 것 역시 국제분쟁이 늘어난 이유로 볼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

나덴드라 모리 인도 총리. 인도는 글로벌 사우스를 대표하는 국가다.
바야흐로 국제사회는 각자도생의 시대다. 그 징후는 유엔에서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일례로 2023년 2월 열린 유엔본부 긴급 특별총회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141개국 찬성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반대와 기권을 행사한 국가도 7곳, 32곳이나 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 등 서방은 반러 진영의 형성을 기대했다. 그러나 전쟁 시작 후 1년이 지났지만 중립 입장을 취한 국가 수는 여전하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세상은 둘로 갈라지는 대신에 산산조각이 났다"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광대한 중도파는 러시아의 침략을 유럽과 미국에 국한된 문제로 보고, 제3자의 입장에 머물러 있다"고 논평했다.

제3지대에서 관망하는 국가들을 글로벌 사우스라고 부른다. 북반구에 위치한 미국, 유럽 선진국을 이르는 글로벌 노스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인도, 브라질, 튀르키예 등 점차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신흥국가들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비동맹’이 외교 노선인 국가들은 물론 자국의 이해에 따라 때로는 미국, 때로는 러시아나 중국과 손을 잡기 시작했다. 주식 투자할 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듯 외교도 마찬가지다.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예정된 전쟁’(2018)이라는 책에서, 현재 우려되는 미국-중국 전쟁 가능성을 설명하며 '투키디데스의 함정’ 개념을 제시했다. 역사적으로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전쟁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서구 역사 500년의 기록 중 16번 가운데 12건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미 '전쟁 중인 세계’가 더 최악으로 가는 상황을 우리는 보게 될까. 각자도생의 국제사회에서 이를 막을 수 있을까.

#전쟁 #미국 #유엔 #여성동아

사진 AP뉴시스 

이승원 국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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