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현장] 사막 극한 환경서 'EV 테스트'…현대차그룹 '모하비 주행시험장' 가보니

김태환 2024. 1. 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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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면적 2배 부지…우주에서도 식별 가능한 크기
북미 현지 특성 맞는 다양한 주행 조건 구성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을 직접 방문해 북미 출시 예정 차량의 각종 테스트를 직접 경험해봤다. 모하비시험장 조감도. /로스앤젤레스=김태환 기자

[더팩트 | 로스앤젤레스=김태환 기자] 가혹한 환경과 메마른 기후로 유명한 미국 모하비 사막은 최첨단 장비의 시험 장소로 유명하다. 미국 공군 테스트 파일럿 스쿨과 NASA 암스트롱 비행연구센터 등 시험비행 연구소들이 밀집해 있으며, 외계인을 연구한다는 소문이 돌았던 '에어리어 51'도 모하비에 있다. 모하비 사막에서는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였던 'SR-71 블랙버드', 우주에서 각종 실험을 했던 '우주왕복선'이 착륙하는 공군기지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북미 테스트의 성지인 모하비 사막에 대규모 주행시험장을 구축했다. 일교차가 심하고 메마른 환경 속에서 북미 현지에 맞는 도로 환경, 다양한 오프로드 주행시설 등을 설치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조건의 테스트 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전동화 체제 전환에 발맞춰 다양한 EV 차량을 테스트하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주행시험도 병행하며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더팩트>는 11일(현지 시간)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을 직접 방문해 극한의 테스트를 직접 경험해봤다.

11일(현지 시간)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 전경. 너무 넓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김태환 기자.

'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4(CES 2024)' 취재가 끝난 뒤 버스로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창밖을 계속 틈틈이 확인해도 길게 뻗은 직선의 도로와 이 지역 자생 식물 '조슈아 나무'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뭐든 크고 넓고 많은 미국의 스케일이 다시 한번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약 5시간을 달리다가 고속도로에서 샛길로 빠졌고, 거대한 주행시험장의 전경이 위용을 드러냈다.

모하비 주행시험장은 지난 2005년 완공됐으며 면적은 무려 1770만㎡(약 535만 평)에 육박한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2배, 전남 영암의 F1서킷 면적의 95배 수준이다. 현대차에서는 인공위성이나 우주정거장 등에서도 주행시험장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연간 300여 대의 시험 차량을 테스트하며, 차량들은 평균 12만5000마일(약 20만km)을 주행하며 테스트를 겪는다.

특히 모하비 주행시험장은 사막에 위치한 특성상 자연스레 '극한의 테스트'를 할 수 있게 된다. 주행시험장 평균 기온은 39℃이며, 7~8월에는 무려 54℃까지 올라간다. 여기에 일교차가 매우 심하고 겨울에는 눈과 비, 돌풍도 빈번히 일어나 극단적이면서도 다양한 기후환경을 겪어볼 수 있다. 모하비시험장 북쪽에는 '데스 벨리(Death Valley)'가 위치해 있는데, 세계적인 완성차 업체들이 혹서 자연환경을 테스트하기 위해 모인다. 현대차와 기아는 모하비시험장을 베이스캠프 삼아 대규모 혹서 내구 시험을 시험장 내부와 더불어 데스 벨리에서도 함께 할 수 있어 더 효율적인 시험이 가능하다.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에 위치한 '장등판시험로'의 모습. 2~12%까지 총 6개의 오르막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김태환 기자

가장 먼저 둘러본 시설은 하염없이 길게 이어지는 '장등판시험로'였다. 총길이가 5.3km로 만일 걸어간다면 1시간 30분 가까이 걸릴 구간에 완만한 경사로가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구간은 총 6개 조건인데 2%, 3%, 4%, 6%, 8%, 12% 경사도로 구성돼 있었다. 북악 스카이웨이 오르막길이 가장 높은 경사도가 8%임을 감안한다면 어지간한 와인딩 코스의 경사도는 모두 구현한 셈이다.

경사도를 시험하는 다양한 설비가 있지만, 이처럼 길고 오랫동안 이어지는 경사로는 처음 경험했다. 실제 현대차그룹 내에서도 모하비 주행시험장에서만 장등판시험로가 있다고 설명했다. 파워트레인의 효율을 테스트하고, 특히 자율주행(오토크루즈)과 관련한 실험을 많이 한다고 현대차 측은 귀띔해 줬다. 오르막 상황별로 엔진이나 전기모터의 힘을 어느 수준까지 가동할지, 기어가 있는 차량이면 변속을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실험하고, 최적의 조건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에 위치한 '고속주회로'를 직접 주행하는 모습. 코너 부분 경사도가 높지 않고, 일반 고속도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김태환 기자

이후 시속 200km로 달릴 수 있는 '고속주회로'를 찾았다. 이미 한국 태안에 위치한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에서 고속주회로 주행을 경험했기에, '별반 다를 바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으나 큰 착각이었다. 모하비 주행시험장 고속주회로는 총길이 10.3km, 직선 구간만 2km에 육박했다. 이는 남양 연구소 시험로의 두 배 길이다. 무엇보다도 국내 고속주회로는 길이가 짧다 보니 곡선 구간에서는 차량이 외부로 튕겨 나가지 못하도록 기울임을 크게 주는데, 모하비 주행시험장은 길이가 워낙 길어 일반 고속도로와 같이 낮은 각도로 기울기를 주었다. 좀 더 실제 주행에 가까운 환경에서 테스트할 수 있었다.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에 위치한 '소음시험로'의 모습. 미국 각지에 나타날 수 있는 노면 환경을 6개 차선 17종류로 구분해 구현했다. /김태환 기자

이와 더불어 특이했던 시설은 '소음시험로'가 있었다. 4km 구간에 6개 차선, 17종류의 노면을 구성했다. 하나의 차선은 깨끗한 도로포장이 있는 반면, 그 옆 차선은 쩍쩍 갈라진 노면이었고, 또 다른 차선은 간헐적으로 '포트홀'이 있었다. 북미 지역은 태양이 강한 기후 특성에 아스팔트가 오래 견딜 수 있도록 '슬러리실(slurry seal)'을 도포하는데, 이 때문에 표면이 거칠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 가혹한 환경으로 풍화되고 깨지는 아스팔트가 많다.

이런 다양한 주행 상태를 직접 구현하고, 반복 평가를 통해 다앙한 도로 환경과 상황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경쟁차 대비 차량의 충격 흡수력을 높이고, 실내에 도달하는 진동을 최대한 억제해 탑승자의 불편을 줄이는 여러 시험을 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모하비 주행시험장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전기차가 '핸들링시험로'를 주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이후에는 기자들이 실제 EV 차량을 시승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아 EV6 GT를 타고 '핸들링시험로'를 주행했다. 해당 코스는 급격한 핸들링과 엔진, 변속기, 전기모터 등 파워트레인의 성능을 집중 시험하는 곳이다. 총길이 4.4km 구간 동안 수십 번 이어지는 코너를 계속 주행해야 했다. 특히 고속주회로 같은 기울기가 없이 평평한 곡선이라 조금만 속도를 높이면 차량이 급격히 쏠렸다. 고속 직선 구간에서 코너로 들어가고, 약 8% 경사 언덕도 구현돼 있어 정신없이 운전대를 돌려야 했다. 50마일(약 80km/h)로 U자형 헤어핀을 돌았는데, EV6 GT는 한쪽으로 사정없이 기울면서도 그립을 잃지 않고 무사히 코너를 탈출해 나갔다.

이후 SUV 차량으로 변경해 오프로드 시험장을 체험했다. 탑승 차량은 기아 '쏘렌토' 북미 버전이었다. 탑승하자마자 계기판에 주황색 엔진경고등이 떠 있었는데, 인솔 기술자분이 "테스트 차량이 극한의 시험을 겪어서 그렇다. 큰 문제 없을 테니 그냥 타시라"고 했다. 시승 행사나 차량 공개 행사 때 매번 최상의 상태로 관리된 차만 받다가 실제 테스트용 차량을 탑승할 기회가 드물었는데, 그래서 더 신뢰가 갔다. 실제로 차가 퍼지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고, 엔진음이나 차량 구동 등에서 문제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모하비 주행시험장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SUV가 '오프로드 시험로'를 주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오프로드 시험로는 총 7개의 코스로, TCS(구동력 제어 시스템) 시험로를 제외한 6개 코스를 돌았다. TCS 시험로는 경사로에 비스듬히 U자형으로 기울어진 구조로 설계됐다. 흙길을 내려가다가, 대각선으로 차를 돌린 뒤 다시 올라가는 코스인데, 자칫 잘못하면 차량이 옆으로 구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차량의 타이어 접지와 더불어 비틀림 강성을 테스트할 수 있는 코스였다. 나머지 오프로드 환경 테스트는 구덩이, 언덕, 비틀린 경사 오르기 등의 코스가 이어졌다. 한국에선 아주 가끔 오프로드를 체험하지만,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일상 속에서 오프로드 환경 주행이 많아 해당 테스트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모하비 주행시험장은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신차가 거쳐 가는 관문이다. 특히 시험장을 활용해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설계, 시험에 이르기까지 현지에서 하는 모든 R&D 체계를 만들었다. 발 빠른 시험과 반영을 통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현대차 앨라배마공장과 기아 조지아공장에서 신차를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통해 한 박자 빠른 시장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실제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로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현대차·기아는 2020년대 들어 10% 수준으로 미국 신차 판매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주행시험장이 건설되기 전인 2004년 현대차는 연간 40만 대 수준에서, 지난해 기준 87만 대로 두 배 가까이 판매가 확대됐다. 같은 기간 기아는 27만 대에서 78만2000여 대로 늘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모하비 주행시험장에서 이승엽 현대차그룹 미국기술연구소 부소장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특히 전기차 테스트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승엽 미국기술연구소 부소장은 "전기차 개발에서는 기존의 내연기관차보다 중량이 약 300kg 내지 400kg 초과되기 때문에 저희가 승차감 내지는 조종 안전성 등 기존에 개발했던 성능을 위주로 하고, 또 전기차에서 유니크한 충방전과 주행거리 시험 그리고 열관리 시험을 여기서 많이 하고 있다"면서 "그것들이 기존의 내연기관에서 했던 것 대비 신기술을 검증하는 그런 시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주행시험장에서의 시험 결과로 미국 현지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에 대한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아이오닉 5, EV6, GV60, EV9 등의 전기차 모델은 세계 올해의 차, 북미 올해의 차, 유럽 올해의 차 등 세계 각국의 주요 상을 휩쓸고 있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모하비시험장은 현대차와 기아의 전 세계 시험장 중 가장 혹독하고 다양한 테스트를 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도 고객의 니즈와 시장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모빌리티 개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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