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신상품 보호제도 손질…유사품 범람 막을까

최성준 2024. 1. 15.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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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 유명무실한 정량평가→정성평가로 전환
기준 깐깐하지만 무분별한 유사품 출시는 줄어들 것

한국거래소가 6개월간 독점적으로 상장지수펀드(ETF)를 상장할 수 있는 신상품 보호제도개선에 나섰다. 새 상품과 유사한 상품을 뒤늦게 출시해 점유율을 빼앗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신상품 개발 의욕을 꺾을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다.

다만 독점상장이라는 특권을 주는 만큼 보호받을 수 있는 신상품으로 선정하는 평가 기준은 보수적으로 책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준을 낮게 세워 신상품이 다수 나오면 역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사 ETF 범람에 신상품 보호제도 손질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ETF 신상품 보호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상장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할 예정이다.

신상품 보호제도는 금융회사의 창의적인 ETF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신상품으로 선정한 상품과 유사한 상품의 상장을 6개월간 제한하는 제도다.

현재 신상품 보호제도는 기존 상장한 ETF와 신규 ETF의 구성종목 중복비율이 주식·채권을 포함한 경우 80% 미만, 포함하지 않은 경우 50% 미만일 때 신상품으로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ETF 운용 과정에서 구성종목 중복비율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문제점 등으로 실질적으로 제도를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거래소는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 기준을 도입해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독창성, 창의성, 기여도 3가지 항목의 평가 기준을 마련해 평균 점수가 4점 이상(5점 만점)인 경우 신상품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평가는 결정 과정의 객관성·공정성 확보를 위해 거래소 내부 인사로 구성한 '신상품 심의회'가 진행한다.

ETF 신상품 보호 절차안

운용사간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신상품 보호제도를 개선해 혁신상품 개발의 동력을 잃지 않게 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국내 ETF 종목수가 812개에 달하는 등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평범한 상품으로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한 운용사들은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면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새 ETF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거두면 이와 비슷한 투자전략을 가진 유사 ETF가 뒤늦게 상장해 기존 상품을 위협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4월 25일 신한자산운용은 기존 2차전지 ETF와 다르게 배터리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을 제외한 에코프로, POSCO홀딩스 등 소재·장비·부품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SOL 2차전지소부장Fn'을 상장했다.

당시 에코프로를 중심으로 2차전지 소재주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았던 상황에서 해당 ETF는 상반기 개인순매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약 2달 뒤인 7월 4일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KODEX 2차전지핵심소재10 Fn', 'TIGER 2차전지소재Fn' 등 2차전지 소재기업에 투자하는 ETF를 연이어 상장하면서 성장세가 둔화했다.

해당 ETF 사례 외에도 한국무위험지표금리(KOFR), 미국무위험지표금리(SOFR), 미국 장기채권, 일본 반도체,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유사한 ETF가 비슷한 시기에 상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거래소는 유사 ETF가 상장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업계 의견을 청취해 신상품 보호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깐깐한 기준 세운 거래소…신상품 금방 나올까

거래소가 앞으로 탄생할 독창적인 ETF가 시장에서 안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다듬기로 했지만 제도의 적용을 받는 ETF가 나타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신상품으로 보호받는 ETF에 주는 6개월 독점상장 혜택이 큰 만큼 거래소가 심사를 깐깐하게 볼 예정이기 때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신상품의 요건을 광범위하게 해석하면 상품 개발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어 타이트하게 평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거래소는 개발단계에서 어려움을 해소하고 만든 상품 혹은 글로벌 시장까지 비교해 독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품을 높게 평가할 계획이다.

이에 맞춘 세부적인 평가 기준을 정확하게 공개하진 않았으나, 계획에 따르면 기존 테마 ETF를 세분화한 투자전략으로 재구성한 상품은 독창성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가 2차전지 소부장, AI 반도체 ETF처럼 기존 테마형 ETF가 존재하는데 투자 종목의 변화를 주는 상품을 신상품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상장한 종목 중에서는 삼성자산운용이 출시한 SOFR ETF의 경우 신상품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SOFR ETF는 기존 ETF와 다르게 미국 달러로 설정과 환매가 가능한 상품이라는 독창성과 투자자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기여도를 인정받을 수 있어서다.

이처럼 거래소의 보수적인 평가 기준으로 인해 실제 신상품으로 인정받기 어렵더라도 무분별한 유사상품 출시 흐름은 줄어들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실제 신상품으로 선정돼 보호받는 사례가 많지는 않겠으나 제도를 개선하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며 "먼저 상장한 상품과 유사한 상품을 따라 출시할 때 부담을 느껴 유사품 출시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준 (cs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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