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바이든 때리다 “김정은 너무 똑똑”... 두서 없는 연설에도 환호
트럼프 선거 전 마지막 유세
그의 발언 질서도 형식도 없지만
지지자들 “가슴을 툭하고 쳐”
오는 11월 미국 대선 첫 경선인 아이오와주(州) 코커스(당원 대회)를 하루 앞둔 14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전 마지막 유세가 열렸다. 아이오와 도심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인디애놀라 심슨칼리지 강당에서 열린 유세장은 지지자 800여명이 꼭 차 콘서트장 같았다. 당내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는 트럼프는 당원들을 투표장으로 이끄는 임무를 맡은 자원봉사자들을 뜻하는 ‘코커스 캡틴’ 문구가 적힌 모자와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1시간 40분간 이어진 연설 내내 트럼프는 여유로웠고,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힘들어 죽겠더라도(sick as a dog) 투표해야 한다”고 하자 지지자들은 ‘트럼프에게 한 표를’이라고 외쳤다. 트럼프가 “(추운 날씨에) 투표하고 나서 사망하더라도, 그 가치가 있다”며 짗궂은 농담을 던져도 신이 난 지지자들은 박수치며 환호했다. 전날 아이오와 유력 일간지 디모인레지스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48%로 다른 후보들을 30%p 가까이 따돌렸고, 이날 ABC방송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전국 지지도는 72%까지 올라갔다.
◇영하 30도 혹한에도 발 동동 구르며 줄서
이날 행사 시작 3시간 전인 오전 9시부터 유세장을 찾은 지지자들은 영하 30도에 가까운 날씨에도 행사장에 들어가기 위해 100m 넘는 줄을 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지지자들이 ‘발가락이 너무 시렵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트럼프 캠프 관계자가 “견디기가 힘들면 저기 버스에 잠시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다시 나오시라.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났다”고 하자 뒷 사람에게 잠시 자리를 맡아달라고 한 뒤 피신하는 지지자들도 많았다.
30분간 추위를 견딘 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비밀경호국(SS) 및 국토안보부 소속 교통안전청(TSA) 요원들이 몸 수색을 했다. 장내 곳곳에선 귀에 무전 이어폰을 낀 경호원들이 주위를 살폈다. 트럼프는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이들의 경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와 큰 격차로 2·3위를 달리고 있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별도 정부 경호를 받지 않고 있다. 헤일리·디샌티스 유세장엔 몸 수색 절차가 없고, 그래서 유세 도중 ‘우발 상황’에 더욱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앞서 지난 2016년 대선 땐 트럼프와 흑인 외과의사 출신 벤 카슨이 모두 경선 단계에서 SS 경호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이들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워지자 국토안보부가 두 후보 모두에게 경호를 제공하는 방안을 승인했었다. 현지 공화당 관계자는 “이번엔 다르다. 트럼프가 승리할 게 뻔한 데 왜 쓸데없는 예산을 투입하겠느냐”고 했다.
◇'대세’ 느껴지는 1위 후보, 형식·질서 없는 연설에도 환호
2016년 대선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를 당선 시킨 주축인 ‘성난(angry) 백인들’은 당시만 해도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샤이 트럼프’가 대다수였다. 성난 백인들은 백인·남성·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 유권자들을 뜻한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이들은 현재 공화당 내 주류가 돼 당당한 모습이었다. 이날 유세장서도 트럼프가 자신의 지지자 그룹인 ‘매가’(MAGA)를 여러 번 외치면서 “이들이 공화당의 절반 가까이 된다”고 하자 지지자들은 USA를 외쳤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영문 앞글자를 딴 ‘매가’는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캠페인 구호였고, 이젠 광적인 트럼프 지지자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평소처럼 이날 트럼프 연설은 형식도 질서도 없었다. 그럼에도 지지자들은 그의 말마다 열광했다. 트럼프는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급격하게 오른 물가를 언급하다 갑자기 베이컨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오와 베이컨의 비결이 뭐죠? 오늘 먹었더니 너무 맛있더라고요. 지방이 거의 없이 쫄깃하게 맛있었습니다. 뉴욕 베이컨은 지방이 너무 많아서 먹기가 힘들거든요.” 그러면서 “그가 역시 아이오와가 최고”라고 하자 한 지지자가 “너무 재미있다”며 신나서 박수를 쳤다. 인디애놀라 주민 로저 웨스트(50)씨는 “그의 말은 워싱턴DC 의 정치인들이 쓰는 부자연스러운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의 말은 가슴을 툭하고 친다”고 했다.
그는 당내 후발 주자인 헤일리와 디샌티스 비판을 하다가 이내 북한 김정은 이야기도 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은 매우 똑똑하고 터프하다”며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는 그와 매우 잘 지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했다”고 했다. 이어 “그렇지 (잘 지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전쟁을 했을 것”이라며 “그들(북한)은 누구 못지 않은 대량의 핵무기를 비축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전날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트럼프는 최근 아이오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급상승해 디샌티스를 제치고 2위로 오른 헤일리에 대해선 “나는 그녀를 아주 잘 안다”며 “그녀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연설 도중 행사장 곳곳에 서 있던 환경 시민단체 회원들이 ‘트럼프는 환경 범죄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기후 범죄자”라고 외치자 트럼프는 “너무 어리다. 엄마한테나 가라”고 응수했다. 이들이 쫓겨난 뒤엔 “재선에 성공하면 석유 시추도 대폭 늘릴 것”이라며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라고 했다. 드릴 베이비 드릴이라는 표현은 석유 시추를 가속화하자는 의미의 구호다. 대표적 기후변화 회의론자인 트럼프는 재임 당시 대통령 직권으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고 화석 연료 사용을 대폭 늘렸다.
◇후보들 “추위에 맞서 싸워달라…투표하자”
트럼프는 이날 유세에서 수차례 “날씨를 이겨내고 나가서 미국을 구하자”고 했다. 짐 퍼티노(61)씨는 “2016년 대선부터 쭉 트럼프를 찍었지만 코커스를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에는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꼭 경선 단계부터 투표장에 가겠다”고 했다.
헤일리는 이날 눈더미 앞에서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면서 “날씨가 추운 건 알지만 여러분이 밖에 나와주셔야 한다”며 “힘차게 마무리하자”고 발언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3위로 내려앉은 디샌티스는 “친구와 가족을 데리고 투표장으로 와달라”며 “여러분의 목소리와 투표가 내일처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선거 당일인 15일 이날 아이오와주 기온은 영하 30도 안팎으로 내려갈 전망이다. 강풍이 불 경우 체감 온도는 영하 40~50도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이오와주 도심 디모인에 지난 1주일간 내린 눈은 56.6㎝로, 1941년 이후 최대 적설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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