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나의 마지막 집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in-Place)'는 노인들이 익숙한 환경에서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노년기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익숙한 환경이란 좁게는 살고 있는 집이 될 수 있고 넓게 보았을 때는 동네나 지역사회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넓은 의미로 이해될 때 에이징 인 플레이스는 노인들이 단순히 익숙한 물리적 장소에서 계속 지내는 것을 넘어 노년기가 되어도 오랜 기간 축적한 공간과 사회적 관계망 등을 포함한 삶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건강이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노인들의 83%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라면 내가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하고 싶다는 응답이 56%였고, 자녀나 다른 가족들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거나 함께 살겠다는 응답은 12%, 시설에 입소하겠다는 응답은 32%로 나타났다(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 이렇게 우리나라 노인들은 건강이 유지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거동이 불편해지고 일정 부분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도 요양시설에 입소하기보다 내 집에서 혹은 가족과 가까운 장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러나 신체적, 인지적 기능의 저하로 내가 살던 집에서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운 노인과 그 가족에게 선택지는 실제로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내 집과 요양시설 사이에 노인과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의 다양한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신체적, 인지적 기능의 저하가 심한 노인의 경우 전문적인 돌봄이 제공되는 시설에 입소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살던 환경이 적절히 보완되고 도움이 제공된다면 살던 집에서 더 오래 지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여의찮아 어쩔 수 없이 요양원을 선택하기도 한다.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서비스 내용과 제공 방식 등을 보았을 때 아직 요양원을 '나의 집'과 동일시 하기는 어렵고 요양원 입소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노인과 가족도 있다. 재가 서비스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이뤄지지만 서비스 시간과 다양성의 한계로 이를 받을 수 있는 노인들마저 시설에 입소하기도 한다.
한편, 실버타운 혹은 시니어타운 등으로 불리는 주거시설이 있다. '노인복지법'에 의해 노인주거복지시설로 분류되는 노인복지주택은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과 돌봄서비스가 노인의 요구에 맞게 이뤄지는 것이 가능한 말 그대로 주택이다. 그러나 노인복지주택은 숫자가 많지 않고 비용적인 측면에서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연령과 상관없이 집은 일상을 영위하는 가장 중요한 사적 공간이다. 노인들에게 집은 돌봄이 원활히 제공될 수 있는 공간으로서도 기능해야 한다. 즉, 주거환경은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복합적인 기능 저하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이 스스로를 돌보고 가족이나 타인이 노인에게 돌봄을 제공하는데 적절한 공간이어야 한다. 이것이 노인들이 원하는 익숙한 환경에서 노년기를 보내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의 열쇠다.
노년기 사회보장의 영역이 돌봄과 주거로 확대되고 있지만 통합적인 관점에서 주거를 돌봄 자원으로 보는 정책적 시각과 보편적 제도로 구현하는 것은 여전히 부족하다. 많은 국가들이 주거-돌봄 연계가 에이징 인 플레이스의 열쇠임을 인식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잘 알려진 미국의 지원 주택(assisted living)이나 서비스 통합 주택(service-integrated housing)을 예로 들 수 있다.
한편, 집의 조명을 바꾸고 미끄럼 방지 장판이나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비교적 간단한 수리나 노인의 상황을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환경을 조절하는 디지털 기술 등이 활용되는 경우 노인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높이고 시설 입소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는 익숙한 환경에서 독립성과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가능한 한 오래 삶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주거와 돌봄의 획기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돌봄이 고려되지 않는 획일적 주거공급에서 벗어나 노인들의 다양한 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돌봄 욕구를 가능한 집에서 해결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정윤경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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