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사람 냄새가 나는 삶

강도묵 대전·세종·충남경영자총협회장 2024. 1.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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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묵 대전·세종·충남경영자총협회장

감염병 후유증인지, 아직은 거리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다. 날이 풀린 날에도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 속에 숨어서 거리를 오고 간다. 물론 소한의 추위가 지나간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외투를 벗기에는 이르다.

약속된 공간에 들어서며, 오늘은 장소를 잘못 골랐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고개를 든다. 여느 때와 다르게 조용해야 할 실내가 잡음으로 어수선하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고, 더러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왔는지 소음 속에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섞여 있다. 저쪽 편 벽에 어린아이의 돌잔치가 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어쩔 수 없이 조그마한 공간을 택해 들어간다. 혼자였다면 그냥 나왔을 법한 분위기였지만, 연세가 계신 분을 내가 뵙자고 했으니 그럴 수도 없다.

이젠 젊은이들에게 구석으로 밀릴 나이가 되었음을 감지하며 참아낸다. 작은 손 마이크까지 준비된 행사인 듯하다. 몇몇 사람의 인사말이 지나가고, 갑자기 실내가 조용해지며 머리가 허연 분이 마이크를 잡는다.

노인의 말씀은 길지 않았다. 인사말에 이어 어린아이에게 바라는 덕담 한마디를 하고는 마무리됐다.

"내겐 딱 하나 있는 금쪽같은 손자지만, 나는 이 아이가 권력을 쥔 정치가나 부유한 경제인이나 유명한 연예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람 냄새가 나는, 정말 사람 냄새가 나는 삶을 살아 주었으면 하고 소망해 봅니다."

문득 '사람 냄새'가 귀에 꽂히면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사회적 거리를 둔 삶을 지속해 온 우리. 마스크는 일상이 되었고,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기보다는 차단의 방법을 모색해 오지 않았던가. 우리 민족은 정으로 뭉쳐진 민족임에도 그 좋은 감정교류에 튼튼한 둑을 쌓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감염병이 지나갔는데도 우리는 사람 냄새를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메말랐으면 하나뿐인 손자에게 '사람 냄새가 나는 삶'을 주문했을까 싶다. 문화가 발달하고 삶의 질이 윤택해지고, 이번처럼 감염병의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는 맑아지고 깨끗해졌다고 내세워도, 진정한 사람의 삶은 그게 아니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세상은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참 동안 멍청히 앉아 있는데, 뵙기로 한 어른이 오셔서 나를 현실로 끌어낸다.

분명 삶의 질은 좋아졌다고 하는데, 우리 곁에 매달려 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고통의 터널은 마무리되고 빛이 찾아들 것이라는 희망의 소리는 요원하다. 아니, 앞으로 한두 해는 더욱 어둡고 컴컴한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측도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특히 경제 전망이 어두우니 살아낼 삶이 무섭기까지 하다. 현실의 어려움은 서로의 불신을 초래한다. 내 동료와 내 이웃과 내 가족까지도 서로 믿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서로 신뢰하며 살아도 이생이 그리 만만하지 않은데, 불신이 여기저기 둥지를 틀고 버티고 있다.

민족의 명절 구정(설날)이 다가온다. 이 불신을 없애는 데에 구정 명절이 제격이지 않을까. 이번 구정을 기해 내 주변부터 살펴 보듬는 기회로 삼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주변부터 신뢰의 싹을 키우는 노력이 시작된다면 우리 사회는 마침내 밝아질 것이다. 동료와 이웃은 물론 경제적 어려움으로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사회에는 긴 감염병으로 가업의 문을 닫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도 있고, 겨우 버티고는 있으나 어렵게 생업을 꾸리고 있는 사람도 많다. 풍요로워야 할 구정 명절에는 어두운 기운 다 털어내고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오순도순 지냈으면 좋겠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어린 자식 사랑하는 이 뜻 깊은 자리에 웃음꽃이 만발하였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그리하여 온 가정에는 믿음과 사랑이 가득하고, 직장에는 신뢰가 충만하며, 온 나라에는 '사람 냄새'가 흘러 넘치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강도묵 대전·세종·충남경영자총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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