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중립’ 무시하면서 “희망 드리겠다”…‘정치검사’에 뚜껑 열린 총장

이승윤 기자(seungyoon@mk.co.kr) 2024. 1. 1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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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공화국 눈총 따가운데
‘정치활동’ 징계 의결 중
김상민 부장검사 보란듯 사표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 도마 위
이원석 총장 즉시 감찰 지시
총선·이재명 수사 앞두고
불필요한 논란 차단 나서
김상민(사법연수원 35기) 현 대전고검 검사가 지난 9일 경남 창원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창원 의창 총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지난 주말 서초동에선 사표가 수리되기도 전에 총선출마 준비 활동을 한 검사를 겨냥한 이원석 검찰종장의 ‘진노’가 화제가 됐다. 검사 개인의 처신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조직을 떠나는 ‘식구’를 상대로 검찰이 이처럼 강경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이 총장 개인 성격에 가뜩이나 ‘검사 정권’ 소리를 듣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 차단을 위한 선제적 조치의 필요성이 더해진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상민 검사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김상민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이 추석 명절때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며 “현직 검사가 정치적 활동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메시지에는 ”저는 뼛속까지 창원 사람입니다. 창원은 이제 지방이 아니라 또 하나의 큰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에 큰 희망과 목표를 드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내용과 함께 본인의 이름과 소속 검찰청이 적혀있었다.

검사윤리강령 제3조 ”검사는 정치 운동에 관여하지 아니하며, 직무 수행을 할 때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규정에 의거 대검찰청은 서울중앙지검에 해당 부장검사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당시만 해도 통상적인 명절 인사일 수 있다는 해석이 있었다. 김 검사도 해당 문자가 정치적 목적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 감찰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검사장 경고’를 의결하고 해당건을 종결하려 했지만 같은날 김 검사가 법무부에 사직서를 내고 고향 창원에서의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소셜미디어에는 1월6일에 창원대학교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홍보글도 게시했다.

대검찰청은 12월29일 김상민 검사와 총선과 관련해 정치권 인사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박대범 마산지청장을 각각 대전고검과 광주고검으로 인사조치했다. 총선을 앞둔 시기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거나 의심받게 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상민 검사는 지난6일 창원대학교에서 예정대로 출판기념회를 열고 9일 국민의힘 당적으로 경남 창원 의창에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돌아갈 수 있는 배를 태웠다. 돌아갈 곳이 없다”며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원석 총장의 진노는 이 시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직서를 내자마자 출판기념회를 연 것은 검사 로 일하면서 출마용 책을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감찰 기간에 자숙하는 기색없이 여보란듯 정치행보를 보인 것이 이 총장의 심기를 거슬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총장이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책 쓰던 시절부터 감찰하라” 등 언급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검찰청은 지난12일 대검 감찰위원회의 심의·의결 결과에 따라 김 검사와 박 검사를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으로 법무부에 중징계 청구했다. 중징계는 정직, 면직, 해임 등이지만 검찰 차원의 징계여서 영향은 제한적이다. ‘황운하 판례’로 김 검사는 출마에 아무 지장이 없다.

황운하 의원은 대전경찰청장 시절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으로 고발된 상태에서 2020년 총선에 출마했다. 사직서가 처리되지 않았는데도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대법원은 2021년 4월 “공직 사퇴 기한 내에 사직서를 냈다면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더라도 출마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사직서만 내면 사표 수리와 무관하게 출마할 수 있다는 이른바 ‘황운하 판례’다.

당초 국가공무원법은 기소되거나 징계절차를 밟고 있는 공무원이 꼬리자르기 식으로 사표를 내고 퇴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위와 관련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때, 징계위원회에 파면ㆍ해임ㆍ강등 또는 정직에 해당하는 징계 의결이 요구 중인 때 등에는 퇴직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황운하 판례는 이같은 공무원법의 취지를 무력화시킨 판례로 꼽힌다.

김 검사의 경우 징계절차가 진행중인 검사 신분이지만, 사직서 제출 이후의 정치행보를 문제삼을 수 없는 것은 이 판례 때문이다. 같은 판례에 근거해 검사의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신성식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 총선 출마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해 대국민 신뢰를 확보해야 하는 자리로 검사 개인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검사 윤리 규범을 저버리는 행태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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