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AI와 만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스테이크… AI 셰프가 10분 만에 구워줬다

김종용 기자 2024. 1. 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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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기 비욘드허니컴 대표·최재훈 LB인베스트먼트 수석 심사역 인터뷰
스테이크, 삼겹살, 닭갈비, 곱창까지 최상급 셰프 수준으로 조리
마이야르, 육즙 손실, 탄 정도 등 실시간 분석… 균일한 맛 구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 빌딩.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식욕을 돋우는 먹음직한 냄새에 허기짐이 커질 무렵, 사무실 한편에 자리한 주방에서 ‘치이익~’ 고기 굽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소 채끝살 한 덩이가 뜨거운 그릴 위에 올려져 있었다.

한참 고기를 뒤집던 셰프는 빨간색 레이저를 발사했다. 그러자 모니터에는 실시간으로 마이야르(고기가 익을 때 갈색으로 변하면서 특별한 풍미가 생기는 화학 반응)와 연관되는 감칠맛(Umami), 탄 정도와 관련되는 쓴맛 정도(Bitterness), 육즙 정도(Juiciness) 등 5가지 수치가 나타났다. 셰프는 완벽에 가까운 숫자에 도달할 때까지 굽기를 계속했다. 잠시 후 스테이크가 잘 구워진 것을 확인한 셰프는 고기를 접시에 담았다.

비욘드허니컴의 AI 셰프가 조리한 스테이크. /비욘드허니컴 제공

도마 위에 정갈하게 담긴 스테이크는 눈으로 보기에도 완벽에 가까웠다. 표면 골고루 얇게 퍼진 갈색의 마이야르 반응이 보였다. 스테이크를 칼로 썰자 내부는 연한 핑크빛을 띠고 있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에는 육즙이 터져 나왔다. 이 셰프는 비욘드허니컴이 개발한 인공지능(AI) 로봇이다. 비욘드허니컴은 셰프의 음식을 학습하고 분석해 자동 조리 로봇이 균일한 맛과 식감으로 재현하는 AI 셰프 솔루션을 개발한 푸드테크(FoodTech) 기업이다.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비욘드허니컴 사무실에서 “요리는 과학”이라는 정현기 대표와 최재훈 LB인베스트먼트 수석심사역을 만났다. 비욘드허니컴은 지난 7월 LB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해 KDB산업은행, 데브시스터즈벤처스, 포스코기술투자 등에서 7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앞서 네이버의 기업형 액셀러레이터(AC) D2스타트업팩토리(D2SF)도 비욘드허니컴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초기 투자를 단행한 바 있다.

“삼성전자 본사 연구소인 삼성리서치에서 근무하며 푸드 사이언스를 연구를 하다 보니 요리는 곧 과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가 감에 의존한 요리를 먹는다는 게 아쉬웠다. AI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조리하면 저렴한 재료를 쓰더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일상식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정현기 대표)

AI 셰프의 작동 방법은 간단하다. 식재료를 그릴에 올린 뒤 조리 시작을 누른다. 셰프는 그릴을 뒤집으며 식재료를 굽고, 조리 중간중간 위에 달린 분광 센서가 픽셀 단위로 분석해 결과를 숫자로 보여준다. AI는 스스로 원하는 목표치 점수와 비교한 뒤 추가 조리 방법을 스스로 결정한다. 같은 식재료라도 굽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그 이면엔 비욘드허니컴 구성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정 대표는 “조리 AI를 개발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한 번의 요리를 완료해야 1개의 데이터가 나오기 때문”이라며 “부위, 두께, 양념 등 조건도 다양해 데이터 확보가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욘드허니컴은 사업 초기 채끝등심 스테이크, 안심 스테이크, 치킨, 닭가슴살, 연어 등 대표적인 식재료를 골라 AI 학습을 시작했다. 조리 테스트만 1만회를 거쳤다.

그래픽=손민균

비욘드허니컴은 ‘그릴’에 집중했다. 그릴을 사용한 구이 요리는 같은 식재료라도 조리 스킬에 따라 맛 편차가 심한 대표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비욘드허니컴의 AI 셰프는 현재 소고기, 돼지고기는 물론 치킨, 생선 등 구울 수 있는 것은 모두 조리가 가능하다. 정 대표는 “그릴을 선택한 이유는 불맛을 낼 수 있고, 프라이팬에 비해 세척이 쉽기 때문”이라며 “다만 그릴을 이용한 요리는 마이야르 반응을 내기가 어려운데 AI 셰프는 굽기 패턴을 통해 기름을 계속 모으면서 조리하기 때문에 프라이팬에 굽는 것과 흡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굽기 패턴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양 면의 굽기를 같은 시간으로 설정해도 구워지는 정도는 항상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앞면과 뒷면을 각각 30초간 굽는다고 가정할 때 ▲앞면 30초→뒷면 30초 ▲뒷면 5초→앞면 15초→앞면 15초→뒷면 15초→뒷면 10초 ▲뒷면 10초→앞면 15초→뒷면 20초→앞면 15초 등 각각의 방법에 따라 조리 결과는 완전히 상이함을 보인다.

정 대표는 “요리라는 것은 외부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는 화학 반응이기 때문에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온도를 적용해도 매번 맛이 다른 것이 특징”이라며 “비욘드허니컴은 조리 실험을 통해 유의미한 80여개의 그릴 패턴을 미리 정의했고, AI는 현재 상태에서 어떤 패턴으로 그릴링을 하면 더 원하는 목표에 가깝게 조리가 될지 예측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비욘드허니컴의 AI 셰프는 5성급 호텔 안다즈 서울 강남에서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다. 네이버와 네오위즈, 포스코, KT에서는 기업 급식 서비스를 제공 중이고, GS건설의 자이아파트 내에선 조·중식을 담당하고 있다. 맛은 물론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AI 셰프 로봇 4대 적용 시 5분 이내에 최대 32인분 그릴 조리가 가능하다. 네이버에선 단일 메뉴로 1위를 차지했고, 네오위즈에서는 기존 코너 대비 판매가 300% 성장했다.

시리즈 A 투자를 주도한 LB인베스트먼트는 비욘드허니컴의 선진적인 기술은 물론 ‘그릴’이라는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봤다. 최 수석 심사역은 “투자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의 자동 조리 시스템을 비교했지만, 그릴을 이용한 자동 조리는 비욘드허니컴이 유일했다”며 “대부분 햄버거 패티를 뒤집는다거나, 정량을 모아 샐러드를 만드는 등 정해진 틀에서 동작을 수행하는 정도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AI 셰프의 핵심은 분광 센서다. 그전까지 분광 센서는 외부 변수가 차단된 실험실 같은 곳에서만 사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비욘드허니컴의 센서는 뜨거운 온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 최 수석 심사역은 “결국 센서에 기반한 AI 학습 모델이 있어야 그릴 조리가 가능하다”며 “국내에서도, 글로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는 점을 설명하니 내부적으로도 반응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비욘드허니컴은 올해 국내에 100대의 AI 셰프를 투입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다. 국내에서의 결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다. 정 대표는 “주방이라는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쓸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관리가 편하고, 고장도 안 나게 충분한 검증을 거친 다음 글로벌로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수석 심사역은 “현재 미국의 스테이크 하우스에서는 고기를 굽는 직원을 구하지 못해서 폐업하기도 한다”며 “인력난에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조리 로봇에 대한 수요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셰프 수준으로 맛있게 구워주는 조리 로봇을 한국의 스타트업이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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