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에 반하다]⑦ “생명의 보고, 수호자 되고 싶어요” 남미에서 온 여군 과학자의 꿈

송복규 기자 2024. 1.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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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타티아나 한국해양과학기술원 UST학생연구원 인터뷰
해군 사관학교 ‘수석 입학’… 바다 지키기 위해 한국행 결심
해양 퇴적물 오염물질 유입 경로·정화 기술 연구
“한국에서 더 공부하고 싶어 박사 학위까지 진학”

바다는 흔히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보물창고로 불린다. 해양에 서식하는 생물은 식물 1만7000종, 동물 15만2000종으로 육상생물보다 더 많다. 아직 신비한 영역인 심해에 서식해 발견되지 않은 종을 포함하면 해양생물의 종류는 더 다양할 것으로 추정된다.

해양 생태계에서도 중요하지만 많이 간과하는 부분이 퇴적물이다. 해양 퇴적물은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온실가스 통계 지침에 반영되는 해양 탄소흡수원 후보로도 꼽힌다. 바다 플랑크톤과 동식물들의 유체, 해저 화산 분출물로 구성된 해양 퇴적물에는 해양생물의 98%가 서식하고 있다.

해양 퇴적물은 지구 생태계에 필수적이지만, 심각한 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하천을 통해 유입되는 각종 오염물질과 바다로 방류하는 방사성 폐기물, 온난화에 따른 산성화로 본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웬디 타티아나(Wendy Tatiana) 한국해양과학기술원 UST학생연구원이 이달 9일 해양과기원 부산 본원에서 조선비즈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타티아나 연구원은 "전 세계의 해양 오염을 막을 수 있는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송복규 기자

웬디 타티아나(Wendy Tatiana)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은 전 세계 해양 오염을 막을 단서를 찾기 위해 지구 반대편인 한국에 왔다. 그는 현역 콜롬비아 해군 중위이라는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개발도상국 공무원의 과학기술 전문성 강화를 지원하는 런던 의정서에 따라 해양과기원에서 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이 1993년 가입한 런던 의정서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해양 오염을 막기 위해 88개국이 참여한 국제협약이다.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끼고 있는 콜롬비아는 아름다운 해변을 가졌지만, 무분별한 오염물질 방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21년 한국으로 건너온 타티아나 연구원은 3년간 진행한 한국에서의 연구에서 해답을 찾았을까. 조선비즈는 이달 9일 군인과 과학자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타티아나 연구원을 만나 해양 생태계 복원에 대한 가능성을 물었다.

–콜롬비아 해군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에 연구자로 온 계기가 궁금하다.

“콜롬비아 해군은 군사적 임무뿐 아니라 해양 탐사나 환경보존 업무도 같이 담당한다. 해군에서 해양물리학과 지리학을 배우면서 해양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면서 해양환경을 보호하려면 바다에 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해양환경을 보호하는 런던 의정서에 따라 한국에서 혁신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전문가가 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런던 의정서 협약국 중 왜 한국을 고른 이유는.

“한국은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다. 특히 내가 관심 있는 과학기술과 화학, 조선산업 분야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70년 전 전쟁이 일어났던 나라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은 모든 걸 발전시켰다. 콜롬비아와 문화적 차이가 크지만, 한국에 존경할 부분이 많다. 콜롬비아 대통령도 한국을 여러 면에서 따라야 할 나라로 꼽고 있다.”

웬디 타티아나(Wendy Tatiana) 한국해양과학기술원 UST학생연구원이 이달 9일 해양과기원 부산 본원에서 조선비즈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타티아나 연구원은 "전 세계의 해양 오염을 막을 수 있는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송복규 기자

타티아나 연구원은 오염된 해양 퇴적물을 정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카리브해에서 퇴적물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화학 공장과 시멘트공장, 제약단지 등에서 나온 폐수 유입으로 수은 농도가 1㎎당 1.5㎏을 넘었다. 카리브해를 이루고 있는 산호초와 해양 퇴적물을 충분히 오염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타티아나 연구원은 석회와 비산회 등을 추가해 유해 중금속의 이동성을 낮추는 물리·화학적 기술인 응고·안정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 방법은 비소와 납, 크롬 등 중금속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기존 입자분리 같은 물리적 방식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효율성을 보였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설명해달라.

“중금속들이 어떻게 해양 퇴적물로 가는지, 그리고 오염 수준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을 연구 중이다. 퇴적물에 포함된 중금속이 해양생물과 인간에게 해롭지 않기 위해 농도들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해양 퇴적물에서 오염을 줄일 수 있는 실제 기술과 프레임 워크를 제안하고 있다.”

–바다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내 고향은 콜롬비아의 수도인 보고타다. 콜롬비아 중심부에 있어 해변과는 멀리 떨어졌지만, 오히려 바다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불렀다. 결국,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해 물리 해양학을 공부했다. 해양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진 건 2017~2018년에 나선 남극 탐험이다. 남극에 널브러진 플라스틱 파편과 녹고 있는 빙하에 있는 바다표범을 보는 게 슬펐다. 해양 오염과 기후 변화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웬디 타티아나(Wendy Tatiana) 한국해양과학기술원 UST학생연구원과 지도교수인 김경련 해양과기원 해양환경연구센터 책임연구원./송복규 기자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타티아나 연구원은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3~4년 뒤에는 콜롬비아로 돌아가야 한다. 원래 석사학위만 받고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한국 과학을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 더 남아 있기로 했다. 해군 사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타티아나 연구원은 콜롬비아로 돌아가면 해군 사관학교에서 해양과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될 예정이다.

–원래 예정된 기간보다 한국에 더 머물러 있다. 한국 과학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

“연구실 구성원들이 학문적으로 열정이 넘친다는 점이다. 한국에 올 외국인 연구자에게 한국을 추천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인데, 감독관과 학생들의 관계도 좋다. 내가 속한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교육 시스템도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복합적인 점들을 고려했을 때 박사학위까지 받고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군인이자 연구자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런던 의정서에 따라 한국에 왔지만, 콜롬비아는 아직 협약국이 아니다. 콜롬비아로 돌아가면 해양과학 전문가로서 해양생물을 보호하고 해양 오염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고 싶다. 콜롬비아가 런던 의정서에도 가입했으면 좋겠다. 콜롬비아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의 해양 오염을 막을 수 있는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다.”

주요 연구성과

Sustainability, DOI: https://doi.org/10.3390/su14221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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