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에콰도르 SECA 비준 앞둬…애써 키운 장미·국화 갈아엎었다

서효상 기자 2024. 1.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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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화훼농가 강력 반발
10여년 걸쳐 관세 철폐 현실화
가격 경쟁력에 밀려 폐농 위기
피해 최소화 실질적 대책 필요
원산지표시 강화·보상안 촉구
정윤재 경남 김해대동화훼작목회장(맨 오른쪽)이 11일 한·에콰도르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체결 추진에 항의하며 트랙터로 화훼류가 심겨진 시설하우스 내부를 갈아엎고 있다.

“애써 키우면 뭐 해요, 계속 적자인데…. 힘든 정도가 아니라 폐농할 판입니다.”

11일 오전 10시. 경남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에 있는 한 화훼 재배 시설하우스에 화훼농가 80여명이 모였다. 부산경남화훼생산자연합회를 주축으로 한 참석자들은 머리에 ‘결사반대’라고 적힌 빨간 띠를 두른 채 그동안 키운 장미·국화·거베라 등을 흙바닥에 내던졌다. 이어 절화 줄기를 작두로 자르고, 밭두둑을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농가들은 “한·에콰도르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협상 타결로 폐농 위기에 처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SECA는 포괄적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일종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0월11일 에콰도르와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지난해 12월18일 공개된 한·에콰도르 SECA 협정문에 따르면 쌀·양파 등 국내 주요 품목은 관세 철폐가 유보됐다. 다만 화훼 품목은 관세가 점차적으로 사라진다. 장미는 12년, 카네이션은 15년에 걸쳐서다.

오관석 김해시화훼작목회장은 “유류비·전기료·인건비·자재비 등 모든 생산비가 올랐지만 꽃값만 그대로”라고 토로했다. 그는 “애써 꽃을 키워 시장에 내놔도 외국산 꽃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국내 화훼농가들은 사실상 수익을 낼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화훼농가가 겪는 어려움은 농가수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김해시 대동면에서 거베라농사를 짓는 송병호씨는 “20년 전 대동면에는 400∼500여 화훼농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부산·경남을 다 합쳐도 300여농가에 그친다”고 말했다.

한·에콰도르 SECA가 발효되면 크게 타격받을 것으로 보이는 품목은 장미다. 에콰도르는 세계적인 화훼 수출국이다. 2022년 수출액이 10억달러에 달한다. 특히 장미가 전체 수출품목 가운데 70%를 차지한다.

김해시 불암동에서 38년째 장미농사를 짓는 서동호씨는 “꽃 재배를 아예 포기하고 다른 작물로 전환할까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씨는 올겨울 장미를 재배하고자 시설하우스 3306㎡(1000평)를 가온했다. 전기요금만 한달에 600만∼700만원이 들었다. 서씨는 “수지를 맞추려면 장미 1묶음(10송이)당 도매가격이 1만원은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평균 7000∼8000원”이라면서 고개를 떨궜다.

서씨를 포함한 장미농가들은 한·에콰도르 SECA 체결로 장미도 카네이션 꼴이 될까 두렵다고 말한다. 2016년 발효한 한·콜롬비아 FTA 이후 국산 카네이션은 시장에서 사실상 씨가 말랐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FTA 체결 전인 2015년 128만7380본 수입됐던 콜롬비아산 카네이션 절화는 2022년엔 4259만1269본으로 33배가량 폭증했다.

서씨는 “대동면에서 카네이션을 재배하던 농가는 대부분 작목을 바꾸거나 폐농했다”고 전했다.

정수영 경기도장미연구회장은 “과거 한·콜롬비아 FTA를 체결할 당시에도 수입 꽃으로 인한 국내 화훼농가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정반대였다”고 호소했다. 이어 “한·에콰도르 SECA로 에콰도르산 장미가 대량 수입된다면 국내 장미농가가 고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우려를 표했다.

농민들은 정부에 화훼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요구했다. 화훼 원산지표시 강화를 뼈대로 한 화훼산업진흥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에콰도르 SECA 체결에 따른 화훼농가 피해 규모를 정확히 산정하고 피해보상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주문사항이다. 화훼류 수급·유통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 마련도 포함됐다.

앞서 부산경남화훼생산자연합회는 8일 김해시청에서 SECA 국회 비준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벌였다. 22일에는 국회, 26일에는 농림축산식품부를 차례로 찾아 반대 집회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한편 정부는 한·에콰도르 SECA 협정문과 관련한 국민의견 수렴 절차를 예정대로 6일 마무리한 상태다. 산업부 관계자는 “2월 중 협정문을 외교부에 제출하면 법제처가 이를 심사한 뒤 승인절차를 거쳐 국회에 비준 동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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