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가자전쟁 100일… 이스라엘은 6개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4. 1. 15.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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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어제로 꼭 100일이 지났다. 가자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희망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전선이 넓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하마스와 격전을 벌이는 사이, 안으로 서안지구는 물론, 북쪽의 레바논과 시리아, 이라크에서, 그리고 남쪽 멀리 예멘의 반군들까지 이스라엘을 도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6개 전선에서 전방위로 싸우는 중이다.

전쟁은 바다를 타고 퍼져나가는 중이다. 사태 초기부터 레바논 헤즈볼라는 동지중해에서 미 항모 전단과 마주하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항행 선박 공격은 세계를 긴장시켰다. 미군과 영국군은 예멘 공습으로 응수했다. 급기야 이란도 직접 나섰다. 호르무즈를 지나는 미국 유조선을 나포했다.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에서 홍해를 거쳐 수에즈 바깥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중동을 꿰뚫는 바닷길 대부분이 위태롭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및 물류 대란과도 직결된다. 자칫 전면전으로 비화될 경우 그 여파는 상상할 수 없다.

확전 여부와는 별개로, 가자 사태로 인한 심각성이 하나 더 있다. 외교 실패다. 분쟁이 만연한 중동에서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공을 들여 추진해 온 미완의 외교 노력들, 즉 오슬로 협정, 이란 핵합의, 그리고 아브라함 협정 등 중동 평화 3대 합의가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이 합의들은 서로 적대적인 아랍, 이스라엘, 이란을 엮어 중동 내에서 섬세한 균형을 만들어내기 위한 3대 축이었다.

그래픽=박상훈

먼저 팔레스타인 독립을 전제로 한 오슬로 협정의 ‘두 국가 해법’은 바닥까지 내려갔다. 여전히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의 평화적 공존을 이야기하지만 내심 체념하는 분위기다. 가자지구 정착촌을 팔레스타인에 내주었더니 하마스의 거점이 되었다고 믿는 이스라엘 국민이 다수다. 이들이 더 크고 넓은 서안지구 정착촌들을 앞으로 비워줄 리 만무하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공존에 관한 희망과 기대는 사라졌다.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 온 이스라엘 내 온건파의 목소리도 사그라들었다. 네타냐후 내각의 극우 각료들은 차제에 팔레스타인을 아예 병합해버리고 주민 차별도 정당화하자는 투로 말하고 있다. 불길하다. 끝 간 데 없는 싸움 끝에 평화를 갈구하는 외침이 다시 터져 나오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까.

둘째, 이란 핵 협상도 파국을 맞았다. 하마스의 배후에는 이란이 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시리아의 유프라테스 운동, 이라크의 카타이브 헤즈볼라 등 역내 9개 무장 집단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과 공조로 정세를 좌우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이란은 우라늄 농축 등 핵 능력 고도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핵 협상은커녕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핵 합의 중재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유럽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미사일과 드론을 제공한 이란이 이미 유럽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그동안 핵무기 개발 직전 단계에서 국제사회와 협상해왔던 이란이 이번에는 선을 넘는 것은 아닌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셋째, ‘아브라함 협정’ 즉 아랍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확대도 중단되었다.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대응으로 상황이 악화되면서 아랍권은 일제히 반이스라엘 메시지를 발신하기 시작했다. 공격 직전까지 무르익었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 움직임은 일단 중단되었다. 당분간 아브라함 협정이 다시 확대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두 국가 해법이나 이란 핵 문제에 비해 그나마 재가동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조금 더 높기는 하다. 그러나 계속 아랍·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가 늘고, 이스라엘 네타냐후 내각의 극우화가 지속되면 확대는커녕 이스라엘과 이미 수교한 아랍 국가의 지도자들조차 더 버틸 수 없게 된다. 아랍 자국민의 반발이 거세지고 자칫 정권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아브라함 협정에 대한 회의론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외교 공간이 무너진 상황은 암울하다. 분리 독립이라는 목표를 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기약 없는 싸움을 더 격하게 시작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란의 핵 능력 고도화가 가시화되면 인근 국가들의 핵 개발 의지가 도미노처럼 확산될 것이다. 비확산 체제에 또 다른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사안이다.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극우화 경향과 반팔레스타인 노선이 지속될 경우, 결국 이전의 적대 관계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퇴행 수순이다. 어떻게든 교전은 멈출 수 있고, 바닷길 항행도 어떻게든 재개할 수 있다. 이번 사태도 언젠가는 수습 국면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협상과 타협을 통해 쌓아 오다가 무너진 외교의 성과물들을 복원하기란 무척 어렵다.

이렇듯 미국이 주도해 온 중동 평화 외교는 가자 사태를 계기로 곤경에 처했다. 외교 전문가를 자처해 온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통령에 당선될 때 위 세 가지 외교 과제를 임기 내에 실현하겠노라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던가? 지난 3년간 의욕을 가지고 동분서주했음에도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했다. 이·팔 평화 협상 중재는 지지부진했고, 이란 핵 협상은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며, 사우디 왕세자와 각을 세우는 바람에 아브라함 협정 확장도 성공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자 사태 대응에 난맥상이 여실히 노출되었다. 이스라엘과도 공조가 안 되는 형편이다. 반유대주의 논쟁을 비롯 미국 국내 여론의 극심한 분열도 일어났다. 외교의 달인 바이든조차 속수무책이라면 이제 미국이 중동에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비관론의 등장은 자연스럽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경험했듯 이란과의 전면전은 해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가자 사태와 중동 평화 외교의 붕괴는 미국의 고립주의를 더 가속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저물어가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시대를 민낯으로 보여주는 상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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