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민주진영의 불안한 첫 승리… 라이칭더 “민주의 바통 이어받았다”

타이베이/이벌찬 특파원 2024. 1. 1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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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선거 민진당 승리, 40% 득표
대만의 총통 당선인 라이칭더(왼쪽)와 부총통 당선인 샤오메이친이 13일 타이베이에서 총통 선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AP연합뉴스

“민주의 바통을 이어 받으며 정권을 지키게 됐다”

13일 총통 선거에서 승리해 오는 5월부터 4년간 대만을 이끌게 된 민진당 라이칭더 당선인이 이날 밤 타이베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첫 소감이다. 그는 “2024년 세계 선거의 해에 대만이 민주 진영 첫 승리를 창출했다”면서 “이번 대선은 민주와 권위주의(威權) 사이에서 대만이 민주의 편에 섰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고 했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며 무력 통일까지 공언해온 중국에 맞서 ‘독립 일꾼’을 자임해온 그가 당선 소감을 통해 ‘대만이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다.

라이칭더는 그러나 거세질 중국의 압박을 의식한 듯 “양안(중국과 대만)은 대화·교류해야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면서 “우리는 반드시 교류로 봉쇄를, 대화로 대항을 대체해야 한다”고 했다.

라이칭더의 승리는 대만 정치사에 여러 기록을 세웠다. 우선 첫 여야 정권 교체가 이뤄졌던 2000년 이후 첸수이볜(민진당)·마잉주(국민당)·차이잉원(민진당)으로 이어져온 양당의 8년 주기 정권 교체 공식이 깨지게 됐다. “대만인의 운명은 대만인이 결정한다”는 대만독립론을 기치로 내걸고 1986년 창당한 민진당은 연속 최장 집권 기간을 최소 12년으로 늘리게 됐다. 라이칭더는 1996년 총통 직선제 도입 뒤 첫 부총통 출신 총통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이 때문에 취임하는 5월까지 진행될 신구 정권 이양 과정도 순조로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표심은 라이칭더 시대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투표율 71.9%를 기록한 이번 선거에서 그는 40.1%의 득표율로 2·3위인 국민당 허우유이(33.5%)와 민중당 커원저(26.6%)를 따돌렸다. 5% 이내의 초박빙 접전이라는 관측보다는 선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득표율은 허우유이와 커원저의 야권 후보 단일화가 막판 결렬되지 않고 성사됐더라면 패배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특히 라이칭더는 차이잉원 현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던 4년 전 선거 때의 득표율(57.1%)과 투표율(74.9%)에 모두 못 미쳤다. 함께 치른 입법원(국회의원·총 113석) 선거에서는 민진당이 현 의석보다 10석이나 줄어든 51석밖에 확보하지 못하면서 과반은커녕 원내 1당마저 국민당(52석 확보)에 내주게 됐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라이칭더는 당선 기자회견에서 야권을 향해 협치 메시지도 보냈다. 그는 “국가 주요 사안을 야당과 함께 논의하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며 함께 협력해 발전을 이끌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정에 의거해 민주주의 대연맹을 구성하고, 당파를 가리지 않고 우수 인재를 등용하겠다”고도 말했다. 표심으로 뚜렷하게 드러난 분열을 봉합하고, 야권을 향해 대승적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차이잉원의 8년 집권에 이어 최소 4년의 라이칭더 시대를 열면서 ‘중국과 대만은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차이잉원 노선’은 힘을 받게 됐다. 다만 향후 통일을 원하는 중국의 대(對)대만 군사·경제 압박이 강화되며 대만해협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당장 중국은 오는 3월 연례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부터 라이칭더가 취임하는 5월까지 경제·외교·군사 수단을 총동원해 대만 압박에 나설 수 있다. 중국은 ‘구제 불능의 대만 독립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라이칭더에 대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보여왔다.

이번 선거에서 젊은 층 표심을 대거 흡수하며 예상 밖 선전을 한 제2야당 민중당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부동산 가격 폭등 등 현 정부 경제 정책에 불만이 큰 청년과 중도층이 제1야당 국민당이 아닌 민중당에 대거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커원저는 정치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득표율 16~17%보다 높은 20% 중반의 득표율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는 낙선 확정 뒤 “대만에 단지 남색(국민당 상징색)과 초록(민진당 상징색)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4년 뒤 선거에서도 투표로 밀어주실 것이라 믿는다”며 대권 재도전을 시사했다. 허우유이는 “정권 교체를 이뤄내지 못해 죄송하다. 내가 부족한 탓”이라며 대만의 단결을 호소했다.

그래픽=박상훈

세계 주요 외신들은 대만 총통 선거 상황을 실시간 속보로 전하면서 민진당의 승리로 양안 정세가 더욱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지속적으로 적대시해온 라이칭더의 승리로 중국의 대만에 대한 압박은 강화되고, 미국과의 긴장은 심화될 수 있다”고 했다. 영국 BBC는 “라이칭더의 승리는 중국의 압박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대부분 사람들은 ‘민진당을 뽑으면 전쟁이 난다’는 주장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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