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필수의료 보상 늘리고, 미래의 바이오전쟁 대비하자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한 대형 병원에서 전문의사가 없어 수술을 빨리 받지 못해 간호사가 생명을 잃고, 구급차가 환자를 싣고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아 여러 지역을 오가다가 환자가 사망하고, 수억 원의 연봉을 주어도 지방병원에서 의사를 구하지 못한 사례들이 보도되면서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이 일어난 심층 원인을 정책결정자나 국민 모두 잘 모르고 있다. 자칫 의료계 파업 같은 사회적 긴장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의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의대 정원이 적기 때문일까?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인데, 1000명당 의사 증가율은 왜 상위인가? 의사가 부족한 이유는 신규 의사 배출이 적어서라기보다 해방 후 수십 년간 의대 수와 정원이 고정되면서, 1960년대 후반 이후 의과대학과 정원 확대 전까지 누적 의사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필수 의료 의사가 부족한 이유는 힘들게 진료 과목을 전공한 젊은 의사들이 자기 분야를 떠나 개원가에서 미용, 비만 등의 비보험 분야 진료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비급여 항목으로 수가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의료사고의 위험은 훨씬 낮다. 밤에 불려 나오지 않아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길 수 있다. 독자들이 젊은 의사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한 연구에 따르면 앞으로 20년 동안은 의사 수가 부족하나, 그 이후는 인구 감소 등으로 의사 과잉이 된다. 또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도 필수 분야 전문 인력이 되려면 10년 이상 걸린다. 따라서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고 해도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의약분업 시행 시 감축된 정원 정도를 확대하면서 전공의들이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업무 경감을 위한 보조 인력 지원, 디지털 AI 설루션 등의 단기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 의료를 선택하게끔 더 많이 보상받게 하고 의료사고의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의사 수급의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면 의학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이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와 관련된 일이다. 의료는 국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하는 것과 함께 산업으로서의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유엔은 바이오헬스 산업 규모가 2030년 세계적으로 30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제2의 반도체 신화’를 목표로 바이오헬스 분야를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외과의사이던 패트릭 순시옹은 수술로는 암 치료의 한계를 느껴 병원을 박차고 나가 암 치료제(아브락산)를 개발했는데 이 치료제가 그를 57억달러(7조5000억원) 자산을 갖는 세계 1위 부자 의사로 만들었다.
바이오 전쟁에서 승자가 되려면 과감한 R&D 투자와 핵심 인력 양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도 적지 않은 예산이 바이오 헬스 분야에 투입되고 있다.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개방적·협동적·혁신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난제들을 풀 수 있다. 과감한 투자와 규제 혁파를 해야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수 있다. 바이오신약, 세포·유전자 치료제, 빅데이터, AI 등을 이용해 난치병, 노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R&D의 중심에 의사과학자가 있다.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 인재들이 의사과학자가 되어 바이오헬스 산업에서 우리나라를 글로벌 중심 국가로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의 하버드대, MIT 공대가 채택하고 있는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 MSTP)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KAIST와 포항공대 등에서 연구 능력을 습득하게 하는 ‘Health Science & Technology(HST)’ 계획도 같은 맥락이다. 의전원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생이 신입생으로 입학한 경우도 있다. 이 학생은 졸업 후 의사과학자로 활동하게 된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육성 정책을 마련하고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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