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反中파 3연속 집권… “양안 긴장 증폭, 美대선이 분수령”

타이베이/이벌찬 특파원 2024. 1.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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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에 민진당 라이칭더 당선
차이잉원(가운데) 대만 총통의 바통을 라이칭더(왼쪽) 총통 당선인이 이어받았다. 사진은 지난 11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선거 유세 현장에서 두 사람이 손잡고 있는 모습./AFP연합뉴스

대만 집권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13일 총통(대통령 격)에 당선됐다. 대만 독립 성향인 라이칭더는 오는 5월 20일에 총통에 취임하며 차이잉원 총통의 반중(反中)·친미(親美) 노선을 계승하게 된다. 세계 곳곳에서 선거가 이어지는 2024년에 처음 실시된 대만의 총선은 라이칭더와 친중(親中) 성향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가 맞붙으며 자유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이 격돌하는 미·중 대리전으로 주목받았다. 중국에 흡수된 홍콩의 중국화(化)를 목격한 대만 유권자들은 통상 8년마다 정권을 교체해온 관행을 깨고 이날 라이칭더를 선택했다.

이날 결과는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가 영향력을 키우는 가운데 자유 진영이 ‘아군’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자유 진영이 맘 편히 자축(自祝)할 수만은 없다. 민진당의 장기 집권에 불만이 큰 중국이 현 차이잉원 총통보다 (중국으로부터) 독립 의지가 더 강한 ‘라이칭더의 대만’에 대해 군사·경제 압박을 강화하여 대만해협에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물류에 중요한 중동의 홍해와 호르무즈해협에서 잇달아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가운데 주요 에너지 통로인 대만해협에서도 위기가 발생하면 한국 경제에 부담이 커지게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두 개의 전쟁에 이미 지쳐가는 국제사회에 양안(중국·대만), 나아가 미·중 갈등이 격화될 불안의 ‘불씨’가 커지지 않을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본지가 만난 대만 현지의 군사·정치 전문가들은 중국이 머지않아 대만 압박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궈위런 대만 국책연구원 부원장은 “대만해협의 긴장은 빠르게 높아질 것”이라며 “5월 총통 취임식까지 대만해협 정세가 요동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대만해협 정세의 향방이 최근 소통 채널 강화에 나선 미·중 관계에 달렸다는 전망도 있다.

본지가 인터뷰한 대만 정치 군사 전문가들. 왼쪽부터 장우웨(長五岳) 대만 단장대학 양얀관계연구센터 소장, 궈위런(郭育仁) 대만 국책연구원 부원장, 쑹청언(宋承恩) 원경기금회 부집행장, 쑤즈윈(蘇紫雲) 대만 국방안보연구원 국방전략자원연구소장./타이베이=이벌찬 특파원, 쑤즈윈 제공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만 압박 시간표’에서 단기적으론 오는 3월·5월·10월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라이칭더 정권에 대한 대응 수위가 결정되고, 이때부터 5월 20일 라이칭더 총통 취임 직전까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과 위협이 고조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다음 전환점은 미국 대선(11월 5일)을 앞둔 10월쯤 열릴 전망인 중국공산당 4중전회(전체회의)가 꼽힌다. 미국의 대선 상황과 라이칭더에 대한 초기 평가를 종합해 앞으로의 대만 압박 수위를 결정할 전망이다. 향후 양안관계 및 이로 인한 한국과 국제 사회의 영향을 현지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어 정리했다.

◇①中, 전쟁보단 경제 압박부터 나설 듯

블룸버그에 따르면 대만해협에 전쟁이 벌어질 경우 국제 사회는 10조달러(약 1경3150억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 다만 현지 전문가들은 많은 나라들의 우려대로 중국·대만이 가까운 시일 안에 직접 군사적으로 충돌하고 전쟁이 날 가능성은 작다고 보았다. 중국이 내부 여론과 서방 자유 진영의 대만 지지를 의식하며 ‘라이칭더 길들이기’에 나서겠지만, 자국의 피해 또한 예상되는 군사 공격 카드는 마지막으로 미룬다는 것이다. 장우웨 대만 단장 대학 양안관계연구센터 소장은 “중국은 우선 대만 압박을 위해 전쟁보다는 문공(文攻·말로 공격), 무하(武嚇·무력으로 협박), 경제 제재, 중국 내 입법(대만 독립 저지 법안 개정) 등 네 가지 수단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대만 총통 선거에서 지난 13일 승리한 집권 민진당 라이칭더(앞줄 왼쪽) 당선인이 타이베이 민진당 본부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앞줄 오른쪽은 샤오메이친 부총통 당선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두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차이잉원 총통의 반중(反中)·친미(親美) 노선을 계승하고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한 라이칭더의 당선으로 양안(중국·대만)과 미·중 갈등이 고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PA 연합뉴스

◇②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은 불안요소

친미 총통의 취임을 계기로 향후 양안 관계가 미·중 관계의 더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런 맥락으로 본다면, 미·중이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소통 회복에 나선 것은 일종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 군사 소통 재개에 합의했다. 궈위런 부원장은 “중국은 올해 3월까지 비워둘 것으로 전망했던 국방부장(장관)을 지난해 말에 부랴부랴 임명할 정도로 미국과의 군사 소통 회복에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예상되는 불안 요소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중국과 대립하고 분쟁했던 집권 1기(2017~2021년) 때보다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추구하며 중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생긴다. 궈위런 부원장은 “중국에 양보하지 않는 트럼프는 블러핑(허풍)보다 강경한 행동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③강해지는 中의 대만통일 의지는 부담

대만 통일 의지가 커지는 중국의 최근 기조 또한 부담이다. 대만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발언 중엔 최근 ‘하나의 중국’ 외에 ‘통일 추진’이 추가됐다. 그만큼 시진핑의 대만 통일 의지가 강력함을 드러낸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은 14일 “‘대만 독립’은 끊어진 길이고, 더 나아가 죽음의 길”이라며 “중국은 결국 완전한 통일을 실현할 것”이라고 했다.

장우웨 소장은 “대만이 ‘양국론’을 선언하거나 통일 찬반 투표에 들어가는 등 본격적인 독립 움직임을 보인다면 중국은 기다리지 않고 대만에 대해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런 문제가 없다면 중국 지도부는 느긋하게 (건국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기다리며 미국에 맞서 국력을 키우는 일에 더 집중할 전망”이라고 했다.

◇④대만해협 긴장 고조, 한국 경제 직격탄

전쟁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대만해협의 긴장감이 고조될 경우 한국의 물류·에너지 등 관련 산업은 타격을 입을 위험이 있다. 쑤즈윈 대만 국방안보연구원 국방전략자원연구소장은 “한국 에너지의 62%, 일본은 90%가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이곳의 안보는 주요국들의 이익과 직결돼 있다”고 했다.

자유 진영에 우호적인 민진당의 재집권은 한국과 대만 사이에 반도체 등 첨단 산업 협력의 길을 넓힌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라이칭더는 선거 하루 전인 지난 12일, 한국과의 관계를 묻는 본지 질문에 “한국과 신(新)공급망 형성을 위한 안보 대화를 열고, 인도 태평양 보호를 위해 협력하려고 한다”고 했다. 앞으로 대만이 반도체 공급망 등에서 한국과의 공조 강화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타이베이를 방문한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라이칭더의 발언에 대해 “이례적”이라고 평가하면서 “미국은 인도 태평양 전략과 공급망 장악을 위해 대만이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길 바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성현 조지 HW 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은 “대만은 미국에서 명실상부한 미·중 경쟁의 상징으로 떠올랐다”면서 “대만은 미국의 지원 속에 주요 민주 국가들과 협력하며 국방·경제력을 끌어올리고자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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