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새해 소원

성송이 시네소파 대표 2024. 1.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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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송이 시네소파 대표

나를 포함한 우리 팀원들은 배급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홍보하고 배급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 활동을 정확히 표현해 주는 관점은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독립예술영화를 다루고 있는데 일단은 독립예술영화를 상업적으로 배급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도 하거니와, 영화를 통해 세계의 이해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이상한 비전도 남몰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활동은 ‘영화를 소개한다’는 관점이 더 적절한데, 평소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배급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2023년의 마지막 영화는 ‘레스보스’를 운영하는 60대 레즈비언 ‘명우형’을 중심으로 한국 레즈비언 공간과 커뮤니티를 아카이빙한 최초의 작품 ‘홈그라운드’였다.

‘레스보스’는 한국 여성동성애자 인권운동 모임 ‘끼리끼리’의 멤버들이 1996년 연 공간이었다. 혐오와 몰이해가 난무하던 시절이었기에 ‘레스보스’는 개장 이후 곧장 레즈비언들의 안식처이자 아지트가 되어주었다. ‘홈그라운드’는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와 1970년대 퇴폐 소굴로 낙인이 찍혀 2년 만에 폐업을 해야 했던 명동의 ‘샤넬다방’, 2000년대 10대 레즈비언의 대안문화 놀이터 ‘신촌공원’을 다시금 조명하고 있다. 단순히 모이는 공간이 되기를 넘어서서 ‘나’를 찾고 ‘우리’를 찾을 수 있는 문화가 될 수 있게 한, 그 장소를 향유하던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는 영화 속 사람들이 가진 사랑 넘치는 에너지를 본받아 되도록 즐겁게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후배들이 좀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일반인 신분으로 2000년께에 언론을 통해 커밍아웃한 ‘명우형’은 한국 레즈비언 역사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1970년대엔 명동 ‘샤넬다방’의 단골손님이기도 했고 2000년대엔 ‘신촌공원’의 10대 레즈비언 서포터를 자처하기도 했으니 그를 빼놓고 레즈비언사를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명절이면 갈 곳 없는 퀴어들을 위해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마음을 열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그의 진심처럼, 때론 어려움에 눈물 훔쳐도 또 신나게 춤 한판 춰버리고 혐오의 세상에 소리 한 번 내지르는 그의 힘처럼 그렇게 관객들에게 이 긍정의 에너지를 전해줘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때까지 소외되고 왜곡되었던, 그래서 한 번도 제대로 알려진 적 없는 문화를 처음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보니, 홍보의 한 축으로는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축제가 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었다.

그렇게 홍보사의 아이디어로 ‘홈커밍데이’를 열어 ‘레스보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고 드랙퀸,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의 다양한 사람들을 게스트로 초대해 퀴어 대통합 GV를 진행하기도 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에너지를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배급하며 만난 관객들은 되레 그런 기운을 우리에게 나눠줬던 것 같다. 이미 저마다의 크기로 자기만의 홈그라운드를 가지고 ‘나’를 사랑하고 ‘우리’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좋은 관객을 많이 만나게 되었던 듯하다. 배급의 과정이 즐겁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영화를 소개해 줄 사람을 다시금 찾아보게 된다. 앞선 관객들에게 필요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나는 이 영화가 정확히 반대편인 어떤 혐오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에게 소용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홍보해도 절대 보지 않을 타깃이겠지만 보여줄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다 왠지 다른 사람이 아닌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산 엑스포가 정말로 가능성이 있다고 믿게 만들었던 이너서클 같은 것 말고,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도록 환대하고 이해하는 곳이 혹시 가까운 곳에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아직 그러한 시간과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고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서. 그래서 만약 그렇다면, 올해는 부디 그에게도 ‘홈그라운드’가 도착하기를 바라고 싶어졌다. 그것을 늦은 새해 소원으로 빌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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