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3] 오 따뜻함이여

문태준 시인 2024. 1.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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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오 따뜻함이여

군밤 한 봉지를 사서 가방에 넣어

버스를 타고 무릎 위에 놨는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갓 구운 군밤의 온기 ⸺ 순간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태양과 집과 화로와

정다움과 품과 그리고

나그네 길과……

오, 모든 따뜻함이여

행복의 원천이여.

-정현종(1939~)

대설주의보가 내리고 큰눈이 오고 수은주가 영하로 뚝 떨어질 때 세상은 눈덩이와 얼음 속에 갇힌 듯해도 우리는 온기를 아주 잃지는 않는다. 시인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군밤 한 봉지에서 기쁨과 흐뭇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이런 감정을 맛보았던 순간들을 떠올려 적는다. 동트는 빛이며 살림의 가옥이며 놋쇠 화로며 선심(善心)이며 심지어 정처 없음까지도.

내게도 따뜻함을 안겨준 것이 많다. 꽃다발, 호의와 친절, 애어(愛語), 웃음, 마중, 반짝임과 리듬, 춤, 행운, 느긋함, 불꽃, 평화, 달콤한 과일, 막 푼 밥, 두꺼운 외투와 장갑, 맑음, 새날의 아침, 회복 등이 온기를 가꾼다. 행복을 싹틔운다. 풀꽃은 뿌리 내릴 한 줌 흙이면 만족한다고 했던가. 적은 것으로도 넉넉한 줄 알면 곳곳에서 어느 때에나 따뜻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무엇보다 감격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감격해 본 지 참 오래됐다. 누군가를 감격하게 한 지 참 오래됐다. 감격에 겨워, 감격에 벅차 눈언저리가 뜨거워지는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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