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선균, 편안함에 이르렀나
죽은 배우는 작품 속에서 영원히 산다. 사람들은 이선균을 '박동훈'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래야만 현실에서 그의 부재를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애도의 방식으로 인해 그는 영영 '나의 아저씨'에 갇혀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배우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실존은 잊히는 것이 어쩌면 서로에게 다행인지 모른다. 그런데 아프다. 그를 박동훈에 영원히 가두기 전 우리는 이선균이라는 개인의 괴로움을 헤아렸어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
이선균은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말라고,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파이팅해라.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져"라고 말한 박동훈처럼 견디지 못했다. "모른 척해줄게. 너에 대해서 무슨 얘길 들어도 모른 척해줄게. 그러니까 너도 약속해주라. 모른 척해주겠다고"라던 동훈의 당부가 고인의 간절한 진심이었을 것 같아 서글프다.
드라마에서 동훈의 아내 윤희는 외도를 했고 동훈 형제들은 그 사실을 알고 심각해진다. 막내 기훈이 형수를 죽여버리겠다고 날뛰는 가운데 맏형 상훈이 윤희에게 전화를 건다. "제수씨, 죄송합니다. 혼자 고생하시고…. 진짜 죄송합니다"라며 오열하는 상훈과 그 토로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윤희를 보며 나도 울었다. 외도는 지탄받아 마땅한 잘못이지만 외도라는 현상보다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던 상황적 요인을 헤아려준 상훈의 속 깊음이 뭉클했다. 상훈은 변변히 자리잡지 못한 자신 때문에 집안이 기울었다고 생각한다. 그 여파로 동훈이 집에 신경 써야 하고 모든 우선순위가 원가족인 동훈으로부터 외로움을 느꼈을 윤희를 생각하니 미안한 것이다. 정말 죄송한 사람 앞에서 죄송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죄송하다고 사죄한다. 어른이다.
'나의 아저씨'는 어른이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이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 드라마가 좋았던 건 선하되 순진하지 않아서다.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내세우는 대신 복잡다단하게 얽힌 감정과 사연과 관계의 타래들을 다양한 입장에서 보여줬다. 사람 일에 어디 손바닥 뒤집듯 단순한 양면만 존재하던가. 슬픔이라는 감정 하나에도 쓸쓸함, 비참함, 애통함, 침울함, 울적함 등 여러 결이 있다. 무수한 결과 겹과 층과 길과 갈래로 이뤄진 세상에서 겉으로 드러난 것은 부분일 뿐이다. 진실은 드러나지 않은 내부에 있다.
마약혐의와 사생활 논란에서 세상은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으로 그를 저주하고 조롱하며 비웃고 정죄했다. 몰락을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언론보도와 댓글들의 언어는 천박하고 처참했다. 포토라인에 선 배우 이선균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의 인간 이선균의 복잡한 입장과 사연을 헤아리는 이는 없었다.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니 파이팅하라는 말들은 너무 늦게 도착했고 이선균은 성급했다. 삶이 바빠 마음을 표현하기 힘든, 말 한마디도 신중하고 수줍은 이들의 사랑과 추모의 말이 나중에 쏟아졌다. 그게 진짜 사람들 마음인데 비루한 악플 따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한 몸이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게 오히려 살고 싶던 몸부림으로 느껴져 안타깝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똑똑하고 정의로운 줄 안다. 자기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겐 엄격하다. 그러나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한다. 나도 누군가에겐 죄인이고 쓰레기다. 내 삶은 수많은 실수와 실패, 죄로 얼룩졌지만 그럼에도 아직 살아서 조금이나마 가치 있는 삶을 살려 애쓰는 건 모른 척해주고 용서해주고 만회할 기회를 준 사람들 덕분이다. 동훈은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 지안을 이해하고 감싼다. 그런데 정작 이선균에겐 박동훈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 윤희에게 상훈이 말한다. "저는요 제 동생이 이 얘기를 아무한테도 안 했다는 게, 자기 혼자만 마음 아파했다는 게 너무 슬픕니다"라고. 혼자만 아파했을 그가 이 소란하고 무서운 세상을 떠나 부디 편안함에 이르렀길 바란다.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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