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벽 허물기'와 학생의 성공
대학마다 '벽 허물기'가 한창이다. 벽은 외부와 내부를 분리하면서 바깥으로부터 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벽에 문(門)과 창(窓)이 없거나 그것이 너무 작을 때다. 바깥 세계와 소통이나 교류를 단절해 고립과 정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벽이 너무 높아도 문제다. 외부환경의 변화에 둔감해져 적응과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대학에서 벽은 학과나 전공간 경계를 말한다. 학과는 체계적인 교육과 학문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학 공동체 형성에도 이바지했다. 그런데 벽이 두껍고 높아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학문의 융합이나 통섭을 저해하고 학생의 다양한 지적탐색과 상호작용을 막아 융합형 인재양성에 걸림돌이 된다.
학과간 벽이 높고 '주어진' 수업만 들어야 하는 폐쇄적 교육체계와 '한우물 파기'만 강조하는 편협한 교육과정은 탈경계 시대, 융복합 인재가 필요한 시대, 졸업 후 직업을 서너 번 바꾸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넓은 배움의 세계에서 원하는 또는 필요한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는 교육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래서 벽 허물기가 중요하다.
벽 허물기는 몇 개 전공을 묶어 융합학과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됐다. 요즘은 여러 학과나 전공을 통합해 '광대역 학습체계'를 만들고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체제로 발전했다. 진로탐색과 학문적 엿보기를 거친 후 공부할 학과를 선택하는 무전공 또는 자율전공 체계도 확대될 전망이다.
그런데 벽 허물기는 학과체계만 혁신하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학과를 묶어 큰 학부를 만들거나 무학과 또는 무제한 전과를 허용하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학생이 각자 소질과 적성에 부합하거나 진로에 도움이 되는 학습경험을 선택해 지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벽 허물기가 '학생의 성공'(student success)으로 이어지려면 세심한 뒷받침이 필요하다. 먼저 벽 허물기는 방목이 아니다. 학과든 전공이든 체계적인 기초학습과 공동체 활동이 이뤄지는 배움의 장(場)으로서 소속할 학사편제는 여전히 필요하다. 학생이 어떤 학사편제에도 속하지 않고 표류하게 하는 것은 교육적 무책임이다. 실제 세계에서도 전공은 힘을 발휘한다. 졸업 후 직업을 구할 때도 대학에서 무엇을 주로 배웠느냐를 묻기 때문이다. 이때 졸업장에 쓰인 전공명은 대학에서 기른 역량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신호 역할을 한다.
교육과정 개편이 뒤따르지 않은 벽 허물기는 무의미하다. 학과를 통폐합해 큰 학과를 만들어도 반드시 들어야 할 '필수과목'이 많으면 선택권은 사실상 무력화한다. 벽 허물기로 선택의 폭을 넓히면서 오래된 교과목을 최신화하고 다른 과 수업도 교차수강할 수 있게 하는 개방형 융합 학습체계를 구축할 때 효력이 커진다.
대학에서 학생의 선택은 학과선택, 수강신청, 부전공 이수를 통해 실현된다. 유행을 좇아가는 학과선택, 점수 따기 쉬운 과목신청,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부전공 이수를 막으려면 충분한 정보와 상담이 필요하다. 학과 교육과정, 선배의 진로, 취업정보, 직업동향 등을 제공하는 맞춤형 지원체계를 갖출 때 의미 있는 선택이 이뤄진다. 학생의 진로성숙과 자기주도적 학습태도를 형성하는 것은 기본이다.
벽 허물기와 학사구조 유연화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입시제도를 손봐야 하고 교육과정도 바꿔야 한다. 학과제도에 익숙한 교수들을 설득하고 공간과 시설을 재조정해야 한다. 특정학과 쏠림현상과 인문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 벽 허물기는 이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세심한 교육적, 제도적 뒷받침이 있을 때 효과를 낳는다. 그 동력은 '학생의 성공'을 대학의 사명과 책무로 여기는 진지한 성찰에서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겉모습만 슬쩍 바꾸는 꼼수와 화려한 말로 끝날 것이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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