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입 안 데고 한국 컵라면 먹게 해달라” 푸틴 정적의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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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감옥은 북극권 시베리아에 있는 제3교도소(IK-3)다.
면회가 어려운 건 물론 편지도 주고받기 힘들 정도로 외진 곳이다.
'북극의 늑대'라고 불리는 이 감옥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47)가 지난해 말 이감됐다.
푸틴이 올 3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나발니를 시베리아에 고립시킨 것이란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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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옥중 투쟁 중인 나발니는 최근 제3교도소의 반인권 실태를 법원에 고발하며 한국의 컵라면 ‘도시락’을 언급했다. “판사님도 아십니까. 교도소 매점의 최고 인기 품목은 단연 도시락입니다.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7∼10분을 기다려야 아주 맛있게 익는데 식사 시간이 제한돼 뜨거운 채로 빨리 먹느라 혀를 데었습니다. 행복해야 할 시간이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교도소 측이 수감자가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아침에 10분, 저녁에 15분으로 제한하고 있어 이를 없애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시베리아 감옥에 갇힌 야권 지도자가 ‘도시락 먹을 자유’를 호소할 정도로 러시아에서 도시락의 인기는 대단하다. 컵라면의 현지 발음은 ‘다쉬락’이다. 우리나라에서 미원이 조미료의 대명사였듯, 러시아에선 도시락이 곧 컵라면이다. 컵라면 시장에서 도시락의 점유율은 62%에 달해 10년간 1위를 지키고 있다. 몇 년 전 초코파이가 러시아의 ‘국민 간식’으로 주목받은 데 이어 도시락이 ‘국민 라면’으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는 해외 브랜드 중 샤넬, 아디다스, 펩시 등 유명 기업 220여 곳만 저명 상표로 등록해 줄 정도로 까다로운데 도시락은 그 틈을 비집고 저명 상표로도 인정받았다.
▷국토가 광활해 기차가 주요 교통수단인 러시아에선 휴대용 사각 용기에 수프를 담아 기차에 오르는 사람이 많다. 1994년 도시락이 러시아에 수출됐을 때 현지인들은 수프통과 비슷하게 생긴 직사각형 용기에 열광했다. 둥근 사발 모양 용기에 비해 가방에 넣기 편리하고 먹을 때 흔들림도 덜했다. 현지인 입맛에 맞게 국내에 없는 8가지 다양한 맛으로 출시한 전략도 주효했다. 2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로는 전시 비축용으로 도시락을 사재기하는 러시아인도 많아졌다.
▷러시아 대법원은 식사 시간 제한을 폐지해 달라는 나발니의 청구를 결국 기각했다. 나발니가 러시아인들에게 친근한 ‘도시락’을 언급한 것을 두고 감옥에서도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사법부로선 푸틴의 눈엣가시인 나발니의 손을 들어주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입 델 걱정 없이 도시락을 즐기기 어렵게 돼 유감이지만 북극 교도소마저 녹이는 K푸드의 위력이 확인된 건 반가운 일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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