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대만 선거 ‘커원저 돌풍’의 의미

이우중 2024. 1. 1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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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美 라이칭더 총통 당선 속
제3당 커원저, 젊은 층 공략
예상 보다 높은 득표율 차지
양당 구도 깰 가능성 보여줘

“걱정해 주시는 건 고마운데요….”

총통 선거를 앞두고 대만 신베이시에서 만난 한 인사에게 중국의 침공에 대한 위협을 어떻게 느끼는지 묻자 이 같은 말과 함께 “한국도 북한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뒤에 생략된 말은 ‘너희 걱정이나 해라’는 것이리라.

다른 대만인도 “우리는 사이에 바다(대만해협)라도 두고 있는데, 한국은 그마저도 없다”며 “적어도 전쟁 위험에서는 대만이 한국보다 안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몇 가지 반박할 말을 생각해 보다가 그만뒀다. 중국 당국이 이번 선거에서 라이칭더(賴淸德) 총통 당선인을 ‘위험한 독립분자’로 규정하고 “대만의 독립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북한은 어떤가. ‘미친 개무리’니 ‘삶은 소대가리’니 하는 막말을 퍼부으며 틈만 나면 전쟁 위협을 일삼는 모습을 보면 상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싶었다. 1990년대 중반 제3차 대만해협 위기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간 긴장이 극대화한 적 있지만 21세기에 들어서까지 연평도 등 서해에서 실제로 교전했던 남북에 비하면 점잖은 편이기도 했다.

이번 대만 총통 선거에서 중국의 바람과 반대로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정권을 연장함에 따라 양안 관계는 다소 험악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당장 전쟁 위기로 치달을까. 전쟁까지 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라이 당선인이 취임하면서 대뜸 ‘대만 독립’을 내세우는 정도일 텐데,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선거가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일컬어지는 만큼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미국이 독립을 용인할 리가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만 선거 직후 라이 후보의 당선을 축하한다면서도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독립 성향으로 알려졌지만 라이 당선인 역시 선거 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겠다”며 차이잉원(蔡英文) 현 대만 총통의 대중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대만인들, 특히 젊은 층의 주요 관심사는 먹고사는 문제인 것으로 보였다. 대만 대졸자 초임 평균 월급은 3만 대만달러대(약 135만∼140만원)로 알려졌고, 지난해 대만 최저임금은 2만6400대만달러(약 113만원)였다. 대만은 2022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2811달러로 한국(3만2237달러)을 넘어섰지만, 실제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은 얼마 되지 않아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클 수 있다.

이처럼 높은 집값과 실업률, 저임금 등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기성 정당 민진당·국민당 대신 ‘제3지대’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 후보를 지지했다. 13일 선거가 끝난 뒤 대만 중앙선거위원회에서 개표 현황을 지켜보며 한 방송사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함께 켜놓았는데, 방송 도중 진행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30만명 이상의 응답자 중 커 후보에 투표했다는 비율이 70%를 넘었다. 클릭 한 번으로 완성되는 익명조사라 통계의 신뢰성은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유튜브 라이브의 주요 시청 연령을 생각해 보면 젊은층의 커 후보 지지세를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커 후보는 이런 청년 민심을 잘 파고들었다. 그는 타 후보들과 비슷한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능숙하게 다루며 젊은이들의 공감을 샀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120만명을 넘어 나머지 두 후보보다 훨씬 많았고, 다른 후보들은 계정이 없는 틱톡도 활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커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애초 예상됐던 10% 후반대∼20% 사이를 크게 웃돈 26.4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커원저가 당선되지 않아도 좋다. 그를 응원하고 싶다”는 젊은 유권자의 표심이 부재자투표가 없는 대만에서 투표 당일 고향으로 돌아가 ‘사표’에 도장을 찍는 불편까지 감수하게 만든 셈이다.

커 후보의 청년 지지층은 대만 새 정치의 새싹이 되겠다는 의미로, 초록색 새싹 모양 머리장식을 꽂고 삼삼오오 모여 유세에 참여했다. 민중당이 양당 체제를 넘어 거목으로 자라날 가능성은 이 새싹의 성공적인 착근 여부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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