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혼내다 ‘학대범’ 된 교사… 극단선택 3년만에 ‘순직’ 인정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 학생들에게 벌을 줬다가 형사 처분과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극단적 선택을 한 중학교 교사가 법원에서 뒤늦게 순직(殉職)을 인정받았다. 해당 교사는 동료들이 기피하는 학교 폭력, 생활지도 관련 업무를 수년간 적극 담당해왔다고 한다. 법원은 “교육자로서의 자긍심이 부정되며 상실감과 좌절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는 고(故) 백두선 교사 유족이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백 교사의 순직을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 11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백 교사가 사망한 지 2년 10개월 만이다.
이 사건은 2019년 7월 백 교사가 근무하던 전남의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학교폭력에서 시작됐다. A군을 비롯한 6명의 학생은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다른 한 학생을 폭행해 발목을 골절시키고 성장판을 손상시켰다. 이를 알게 된 백 교사는 가해 학생들을 강당으로 불러 벌을 줬다. 백 교사는 이들에게 1시간 30분가량 체벌을 내리고, “치료비는 있으니 맞고 싶은 사람은 얘기해라, A군이 맞을래?”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A군은 백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같은 해 10월 “피의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있지만 반성과 피해 정도를 고려해 기소하지 않는 것이다.
백 교사는 형사 처벌은 피했지만, 이 사건으로 전남교육청으로부터 ‘견책’ 징계를 받았다. 이후 징계를 받았다는 이유로 성과상여금과 기말수당(분기마다 지급되는 수당)도 받지 못하고 비선호 근무지로 발령됐다. 학교폭력 사건을 지도하다 잇따른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후 백 교사가 학생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동료 교사들은 증언했다. 백 교사는 2021년 3월 극단적 선택으로 숨을 거뒀는데, 망인의 휴대전화에는 ‘학교가 무서워’라는 검색 기록이 남아 있었다.
백 교사의 유족은 공무상 사망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인사혁신처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사혁신처는 “업무 수행 내용들을 고려할 때, 백 교사를 사망에 이르게 할 만한 업무적 소인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유족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백 교사는 다른 교사들이 기피하는 생활지도 및 학교폭력 등 업무를 수년간 적극 수행해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면서 “솔선수범해 학생들을 지도해 온 망인이 아동학대범으로 비난을 받게 되자 극심한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백 교사가 훈육을 위해 한 행동이 그 목적이나 의도와 무관하게 아동학대 행위로 평가되면서 교육자로서의 자긍심이 부정됐다”며 “망인의 자살은 반복되는 인사상 불이익한 조치로 느꼈을 상실감이나 좌절감으로 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백 교사가 사망 전 업무상 스트레스로 고혈압 진단을 받고, 우울증 치료제 성분이 포함된 약을 복용한 점도 고려됐다.
전교조 전남지부는 법원 판결 이후 “인사혁신처가 항소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발생시키면 안 된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교사들의 죽음에 대해 정서적 인과관계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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