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공직자윤리법’…전문성 엄격히 판단할 ‘대체 불가 요건’ 필요[정쟁 말고 정책]
퇴직 공직자 취업심사 통과 비율 평균 80% 이상…제한은커녕 새 자리 만들어주는 현실
심각한 ‘변종 정경유착’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법 개정 등 통한 ‘관피아 척결’ 필수
대한민국에 ‘관피아’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정권교체와 더불어 정부 요직에 검사 출신이 중용되면서 ‘검찰공화국’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사이에 급기야 현직 검사가 총선 출마를 위한 공개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검찰의 영향력을 입법부로 확대하려는 대통령의 의중이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관피아에 관한 한 기획재정부에 포위된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하여 검찰의 호위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셈이다. 경실련이 세 차례 발표한 ‘관피아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퇴직공직자가 취업심사위원회에서 통과되는 비율이 평균 80%를 웃도는 현실은 ‘관피아 카르텔’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음백과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관피아’는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정부 부처에서 일하다 관계기관이나 민간기업, 협회 등에 재취업한 퇴직공무원을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관피아의 본질은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관료의 행정영역도 민간부문(자본권력)과 유착되는 ‘변종 정경유착’이다. 본래의 ‘정경유착’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관피아의 원조는 사법부에서 시작된 ‘전관예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되는 ‘전관’의 범위가 사법부와 행정부는 물론 공공기관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오늘의 ‘관피아’에 이르게 되었다.
행정부 관피아의 모태는 기획재정부(또는 재정경제부) 퇴직관료를 일컫는 ‘모피아(Mofia)’이다. 모피아가 본격적으로 세를 키우기 시작한 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서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한 것은 당시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였다. 이후 경제 관련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대형 금융회사, 유관단체의 경영진이 급속하게 모피아들로 채워졌고 처우도 크게 좋아져 이들에게는 재취업이 재산축적의 기회가 되었다. 이들이 재취업한 자리는 연속적으로 모피아들로 채워지면서 퇴직관료들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퇴직공직자의 재취업은 예외적인 현상에서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고 퇴직자의 권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에서는 퇴직공직자의 보이지 않는 로비를 매개로 산하기관이나 유관기관과 유착관계가 형성됨으로써 공익과 국익이 사유화되는 현상이 확산되었다. ‘공직자윤리법’과 ‘이해충돌방지법’이 있지만 이들을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관피아를 부추기는 법적 근거로 남용되고 있다.
관피아 확산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정치권의 무능에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국정운영 경험이 부족한 정치인들이 정계에 대거 진출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참신한 인물 영입’을 통해 지지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반복되면서 정치인들의 정책역량은 답보상태에 머물거나 오히려 후퇴했다. 게다가 행정부 퇴직 고위공직자의 전문성을 재활용하려는 입법부의 패배의식이 만연해지면서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의존을 넘어 종속되는 현실을 낳았다.
관피아가 초래하는 폐단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직자윤리법을 취지와 목적에 맞게 운용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개정하는 것이 절실하다. 공직자윤리법은 제1조에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및 행위제한 등을 규정함으로써 공익과 사익의 이해충돌을 방지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가져야 할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퇴직공직자의 취업은 “제한”되기는커녕 기관장 주도로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가면서까지 확대되고 있다. “공익과 사익의 이해충돌”은 현실에서는 퇴직공직자에 의해 “공익의 사유화 현상”으로 반전되고 있다. 그리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윤리”는 실종되고 철저히 “자기이익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익과 국익마저 대수롭지 않게 침해하는 불법행위가 코로나처럼 번지고 있다. 아울러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재취업 자격요건으로서 “전문성”을 엄격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대체 불가”의 요건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관피아의 확산은 한국 경제가 시장경제가 아니라 카르텔경제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카르텔경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민생’, 국민생활을 챙기고자 한다면 관피아 척결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김호균 명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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