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새해엔 셈법 바꿔보기로 했다
물가가 자꾸 올라 걱정들이 많다. 안 오르는 건 월급밖에 없다고들 한다. 물가가 올라도 농산물은 여전히 헐값이라 살기 막막한 건 매한가지라는 얘기도 들린다.
어린 시절, 물가와 월급의 관계가 궁금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먹고살아야 돈을 벌러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물가가 오르면 밥 사먹을 월급도 올라야 한다. 그런데 월급이 오르면 생산비가 오른다. 기업은 오른 생산비를 충당하고 이윤도 챙기기 위해 다시 물건값을 올린다. 그러면 또 물가가 오른다. 꼬리를 문 문제를 생각하다가 머릿속만 복잡해진 어린 나는 그만 흥미를 잃고 질문을 관두었다.
요즘 강연이나 회의 때문에 종종 고속열차를 탄다. 그때마다 열차 내 모니터에서 기업유치를 위해 지자체들이 만든 홍보영상을 보게 된다. 자기 지역이 ‘기업 하기 좋은 곳’이라고 앞다퉈 주장한다. 기업 하기 좋은 곳이란 어떤 곳을 말하는가. 결국 생산비용이 덜 들어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 곳을 말할 것이다.
일찍이 한국 정부는 수출자유지역이라는,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지대를 만들어 외국 자본 등 기업을 유치한 경력이 있다. 그때도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 홍보했을 것이다. 당시 그것은 한국의 10대 소녀들이 헐값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제도화해 기업이 낮은 생산비용으로 높은 이윤을 챙겨갈 수 있도록 한 가부장체제 정책이었다. 여자들의 노동력은 어디서나 저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린 여자는 결혼해 가정주부가 될 거라서 저렴했고, 결혼한 여자는 본업이 가정주부라며 저렴했고, 어머니가 된 여자는 기술도 경력도 없는 아줌마라는 이유로 저렴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여성들은 자신의 노동력이 헐값으로 마구 다뤄지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았다. 여성이 공짜 노동을 줄여나가고 마땅히 받아야 할 동일임금을 요구하자 생산비가 올랐다. 물가도 따라 올랐다.
생산비가 충분히 저렴하지 않아질 때 기업은 ‘기업 하기 좋은 곳’을 찾아 유유히 떠난다. 그곳이 한국이 아니라 할지라도 생산비를 줄이고 이윤을 최대화할 수만 있다면 오케이다. 이윤에 과세를 덜하는 곳이면 더 좋다. 상속에 과세하지 않아 부가 고스란히 대물림될 수 있도록 자본세습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곳이면 금상첨화다.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하나같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약속을 해왔다. 노동자인 나는 이 약속을 어떻게 받아줄까? 요즘 나는, 노 생큐! 중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란 결국 내 노동이 최대한 헐값이 되는 나라일 테니. 나는 그런 소득 말고 생태 사회 소득을 더 원한다. 깨끗한 공기, 깨끗한 물, 건강에 부합하는 먹거리, 충분한 휴식과 잠, 돌봄이 있는 관계, 공동체에 귀속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안정된 주거, 아플 때 의지되는 공공의료, 접근 가능한 시민텃밭 등과 같은 소득 말이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국민의 사회 소득을 살뜰히 발굴하고 먼저 챙기는 정부를 갖고 싶다. 그런 사회라면 아이들도 푸른 꿈을 꾸며 무럭무럭 태어나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다. 푸른 용의 해, 그런 푸른 기상을 바란다.
박이은실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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