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저항
경영책임자 안위를 걱정한다면
처벌 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안전에 필요한 투자에 힘써야 한다
이 법의 정당성·실효성 논쟁은
그만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02년부터 제정 운동이 있었고, 의원입법 발의만 해도 2016년 이래 모두 아홉 차례나 있었다가 2021년에 들어서야 제정되었다. 이런 과정을 겪고도 이 법은 제정 후 여러 가지로 저항을 받아 왔다.
첫째는 이 법 시행 후 중대재해가 줄지 않아 사고 예방 효과가 없으니 법을 전면개정하거나 폐지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통계수치는 법 적용 사업장에서의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거나 특정 업종만의 통계수치라서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2022년 1월 이 법이 시행된 후 2023년 3분기까지의 사망자 수는 조금씩이나마 줄어들었다.
둘째는 이 법 중 일부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평등 원칙에 어긋나서 위헌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법 위반죄로 기소된 두성산업 대표는 위헌법률심판을 헌재에 제청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한 바 있다. 신청 대상이 된 조항 중 하나인 법 제4조 제1항 제1호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하여 다음 각 호에 따른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라고 되어 있다. 그냥 읽어서는 이게 왜 위헌 시비를 낳고 있는지 얼핏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조항은 이 법의 핵심이며 그 제정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연구와 노력이 집약되어 있고 복잡한 검토와 논쟁을 거쳐 타협 끝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해석이 쉽진 않다.
산업계가 이 조항에 공포를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법문 중 수범자로 규정된 ‘경영책임자’라는 용어에 있을 것이다. 이는 사고의 원인을 구조적 문제로 파악하여 조직, 인력, 예산의 면에서 안전과 보건의 확보 조치를 이행할 의무를 경영책임자에게 지운 것인데, 결과적으로 사망사고의 경우에는 종전과 달리 실권을 행사하는 ‘회장님’들이 표면상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지 않거나 대표 직책을 갖지 않더라도 수사를 받거나 기소되어 처벌될 가능성이 생겼다. 기업의 안전관리 담당자나 법무팀에 이보다 더 신경이 쓰일 일은 없을 게다. 법 제정 후 대형로펌들마다 전문팀을 꾸려 놓은 것은 이 조항 때문에 변호사 업계에 새 시장이 열렸다는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아무튼 위헌제청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헌재의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이 법 위반죄로 기소된 사건들의 진행은 일단 중지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난해 11월에 창원지법은 이 신청을 기각했다.
그 밖에도 법조계에서는 이 법의 미비점을 지적하거나 법이 규정한 책임 범위를 줄이려는 여러 해석론이 나와 있다. 그래서 법원이 구성요건을 좁게 해석하여 무죄를 선고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으나, 적어도 현재까지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11개 사건 모두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근래 들어서는 이 법을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대하여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로부터 시행한다는 부칙 제1조의 규정을 개정하여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하자는 정부와 여당 측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 개정안은 지난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한국노총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사업에 참여한 중소기업이 그 예산으로 들인 돈이 평균 3100여만원이고 사업기간이 3개월이라는 언론보도(한겨레 2023년 12월9일자)대로라면, 이 법이 ‘기업활동포기법’이라는 경영계의 주장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법 시행 후 2023년 3분기까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사망사고 누적 건수는 전체 사업장 사망사고 건수의 절반을 넘기고 있다. 유예 연장 시도는 무산되었으나, 정작 필요한 일은 정부가 중소기업의 안전시스템 구축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실질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기업이 경영책임자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사고 발생 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처벌을 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우선 안전에 필요한 투자에 힘써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구조도 이런 안전조치를 다하라는 데 중점이 놓여 있다. 이 법은 산업재해 사건을 새로운 법적 상상력으로 해결하려는 운동의 결실이다. 이제 이 법의 정당성이나 실효성에 관한 논쟁은 그만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일하다가 죽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이 법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부끄럽고 죄스럽지 않은가.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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