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이번에도 ‘반중국’ 선택했다…미-중 관계 긴장 계속될 듯
대만 총통 선거가 ‘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중국 정부가 “위험하다”고 지목한 라이가 새 총통으로 당선되면서, 중국·대만의 양안 관계는 물론 미-중 관계의 긴장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대만 중앙선거위원회 누리집을 보면,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558만표(40.05%)를 얻어 당선됐다. 중국국민당(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는 467만표(33.49%)에 그쳐 패했다. 대만은 2000년부터 민진당과 국민당이 8년씩 교대로 집권하는 흐름이 이어졌는데, 이번에 깨졌다. 민진당은 차이잉원 정부 8년에 이어 4년 더 집권하게 됐다. 라이칭더 당선자는 오는 5월20일 대만 총통에 취임한다.
이날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당이 52석, 민진당 51석, 대만민중당(민중당)이 8석을 차지했다. 국민당이 민진당을 밀어내고 1위를 했지만 과반(57석)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2019년 창당한 민중당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민중당은 총통 선거에서도 젊은 층에 대한 인기를 바탕으로 커원저 후보가 26.46%(3위)를 득표해, 확실한 제3당으로 자리 잡았다.
민진당의 승리로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전쟁 위기감에 앞서 대만 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은 대만을 ‘민주’로, 중국을 ‘독재’로 설정하고, 자신들이 선거에서 이겨야 민주 동맹국들과 함께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라이 당선자는 전날 밤 승리 연설에서 “대만은 민주주의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 ‘중화민국’ 대만은 세계의 민주주의 동맹국들과 나란히 갈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도 중국의 강압적 태도가 역풍을 불렀다고 짚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강압적 행태는 실질적 독립을 지키고 중국의 거대한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대만의 열망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제1 야당 국민당은 ‘평화냐 전쟁이냐’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자신들이 집권한 뒤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대만해협의 평화를 지키자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대만 국민은 중국과의 대화를 통한 대만해협 긴장 완화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동맹 강화를 통한 안보 강화를 선택했다.
독립 성향의 민진당 정부를 4년 더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중국이 어떤 대응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중국의 대만사무판공실은 지난 10일 밤 낸 논평에서 “그(라이칭더)가 만들려는 이른바 ‘새로운 국면’은 대만해협을 격렬한 풍랑과 거친 파도의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라고 비난할 만큼 라이 당선자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결국 지난 8년간 대만과의 대화를 단절했던 중국은 전략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2년 국가주석 3연임 확정 직후 “무력 사용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대만 통일 의지를 점점 노골화하고 있지만,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탄압을 목격한 대만은 중국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민진당 선거 승리가 확정된 지 2시간여 만에 “대만의 두 선거(대선·총선) 결과는 민진당이 주류 여론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내놨다. 중국이 대만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방향을 틀기보다는 현실을 부정한 채 대만을 공격하고 압박하는 기존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 당선자 역시 승리 연설에서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과 동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만큼, 중국은 대만에 대한 압박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대만과 더불어 미국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대만에 관여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는 데 또 실패한 중국이 대만해협의 위기 강도를 높여 미국을 통한 간접적인 관여에 나설 수 있다. 라이 당선자가 취임 일성을 내놓는 5월20일까지 대만에 대한 경제·군사적 압박 강도를 높여갈 수 있고, 이 경우 미-중 관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민진당의 집권 연장을 확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양안 평화 유지와 이견에 대한 평화로운 해법 모색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민진당 후보의 당선에 대한 첫 일성으로 ‘현상 유지’를 내놓은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두 개의 전쟁에 관여하고 있는 미국은 대만해협의 안정, 민주 동맹국과 함께 중국을 포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지속을 바라고 있다. 중국에 대해 ‘관리되는 견제’를 바라는 상황에서 미국은 강경 독립론자로 알려진 라이 당선자가 자칫 독립 선언 등을 통해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고, 라이 당선자는 이를 불식하고자 노력해왔다. 라이 당선자는 지난해 7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 “양안의 현상을 수호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밝혔다.
타이베이/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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