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시대유감
아이돌그룹 에스파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時代遺憾)’을 재해석하여 발표한다는 소식이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노래를 신세대 걸그룹이 리메이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은 4집 앨범 <컴백홈>을 발매하기 위해 공연윤리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했다. 이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던 ‘시대유감’은 반사회적 노랫말을 이유로 반려됐다. 당시 심의위원들은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 오늘이야” 등의 가사를 문제 삼았다. 내용이 자극적인 데다 현실을 매우 부정적으로 그렸다면서 심의불가 판정을 내렸다.
데뷔 이후 10대들의 문화 대통령이자 대변자로 노래를 통해 세상과 싸웠던 서태지는 가사를 빼고 연주곡만 수록했다. ‘교실 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컴백홈’ 등과 함께 서태지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는 노래에 공권력이 칼질을 하자 팬들이 분노했다. 당시 PC통신상에서는 공연윤리위를 성토하는 팬들의 글이 올라왔고, 김대중 총재의 지시를 받은 국민회의 간부들이 진상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다음해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은 전격 해체를 선언했고, 6월에는 정태춘 등 가요계의 꾸준한 투쟁으로 음반 사전심의제가 폐지됐다. ‘시대유감’도 가사를 붙여서 온전히 다시 발매됐다. 이 앨범에 서태지는 속지에 실린 메시지를 통해 자신을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을 갖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려다 인간의 그물에 걸려 시장통의 쓰레기통에 처박힌 물고기’로 비유하기도 했다.
청년 서태지는 이제 아이를 키우는 중년이 됐고, 이 시대의 청년들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발표했다. 수십년 전 청년들이 공감했던 노랫말에 이 시대의 청년들도 여전히 공감한다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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