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나의 레즈비언 친구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았다.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도 없고, 부모의 계좌번호나 누구누구의 딸이라고도 적혀 있지 않은 특별한 청첩장이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캠핑하는 것을 꿈꾸는 하나와 이경, 레즈비언 커플이 퀴어부부로 살아보겠다는 다짐이 담긴 초대 문구는 일종의 결의문과 같았다. 차별에 저항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결혼식을 하는 느낌이랄까. 축하와 결의의 현장이 되기 충분했다.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사진 속에 둘이 들고 있는 것은 ‘프라이드’라는 문구가 담긴 팻말이었다. 그리고 결혼식이 아닌 잔칫날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결혼식이 아닌 성소수자에게 흔하지 않은 잔칫날 집회에 초대받은 것이다.
성소수자에겐 결혼식보다 장례식 문화가 더 익숙한 것 같다고 자조 섞인 말을 종종 했었는데, 그동안 삶을 돌아보면 정말 맞는 것 같다. 슬픔에 더 익숙했고, 장례식장에 찾아가는 것이 더 당연하게 여겨졌다. 부모와 가족이 얽히고설킨 결혼 문화에 대한 거북함도 있었겠지만, 평소에 누구 이사님이나 누구 운영위원장님 아들딸의 결혼식엔 축의금을 들고 참여한 적도 많아 사실 결혼식에 가는 것은 얼굴도장을 찍는 것 외에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닌 느낌이기도 했다.
하나와 이경은 부모님, 언니와 남동생, 친·인척들, 그리고 친구들 한 명 한 명 정성스럽게 만나며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초대하였다. 이것 또한 그들에겐 쉽게 넘을 수 없었던 벽을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과정이자 용기였을 것이다. 용기에 대한 화답으로서 얼굴도장을 찍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잔칫날 축하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래 버텨볼 생각이다.
지난주 ‘띵동’에 일본의 ‘니지이로홋카이도’라는 성소수자 단체에서 활동 중인 구니미 료스케 이사장과 그의 파트너가 방문했다. 공립학교 교사이기도 한 그는 홋카이도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모임을 개최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에겐 특별한 이력이 하나 더 있다. 20년째 동거 중인 파트너와의 동성결혼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2019년 처음 제기해 2021년 3월17일 승소라는 역사적 판결을 끌어낸 당사자이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그는 ‘성소수자 미래세대에 결혼 선택권을 주기 위해’ 지금 싸운다며, 법원에 “나는 다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냥 결혼하게 해 주세요”라며 소송에 임하는 간절한 마음을 전달했다고 한다.
하나와 이경의 결혼 또한 동성 커플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자 둘이 함께 살아 온, 또 앞으로 함께 살아갈 역사를 증명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구니미 료스케 이사장은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법원에 파트너 가족과 온천여행을 한 사진을 제출했다고 한다. 무언가 증명해내야 하는 것 또한 차별일 수 있겠으나, 나는 퀴어부부 잔칫날, 기꺼이 증인의 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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