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해 못할 ‘MBC 판결’, 대통령 ‘언론 적대’ 정당화 우려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2022년 미국 방문 당시 불거진 ‘비속어 발언 보도’와 관련해 서울서부지법이 지난 12일 MBC에 대해 정정보도를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했는지 여부가 기술적 분석을 통해서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MBC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판단은 극히 부적절하다. 재판부가 요구한 정정보도문에는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고,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돼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바이든은’인지 ‘날리면’인지에 대해서는 감정인이 ‘판독 불가’라고 하는 등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제했다. 최대 쟁점에 대해서 진실이 가려지지 않았는데 재판부는 무슨 근거로 허위보도라고 단정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정답이 없는데 오답이라고 판정한 것과 다를 게 없다. 백번 양보해 대통령실의 주장을 실어주는 ‘반론보도’라면 모를까 MBC에 정정보도를 주문한 것은 당치 않다.
1년 넘게 진행된 이 재판 과정에서 소송을 제기한 외교부는 윤 대통령의 실제 발언이 무엇인지 특정하지도 않았고, 대통령실 해명처럼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고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문제의 발언은 MBC뿐 아니라 대부분 언론이 ‘바이든은’으로 보도한 바 있다. 재판부가 이런 정황들을 종합 검토해 내린 판결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재판부의 판결은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적대적 언론관’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가 크다. ‘비속어 발언 보도’ 파문 이후 대통령실은 전용기에 MBC 기자의 탑승을 불허했고,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조차 중단해버렸다. 성과 없는 순방외교에 자신의 욕설과 막말까지 부각되자, 엉뚱하게 언론의 왜곡보도 탓으로 책임을 돌린 것이다. 본인의 발언에 문제가 있었다면 신속한 사과로 수습하는 것이 순리인데도 오기를 부리면서 언론과의 관계 악화를 자초한 것이다.
‘바이든-날리면’으로 시작된 윤 정부의 적대적 언론관이 언론사에 대한 형사고발, 검찰의 언론인 대상 강제수사 등으로 일상화하고 있는 것은 극히 유감스럽다. 이번 판결이 윤석열 정부의 대언론 태도를 더 경직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대통령실은 “우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볼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문제 발언의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히고 비속어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신뢰회복의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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