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한국판 그래미’ 논의 시작을
이정국 | 문화팀장
2023년도 대중음악 관련 시상식이 얼추 마무리됐다. 지난해 10월 더팩트뮤직어워즈를 시작으로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MAMA), 멜론뮤직어워드, 골든디스크, 써클차트뮤직어워즈 등 두달 넘게 시상식이 이어졌다.
음원에선 걸그룹이 대세였다. 뉴진스, 아이브, 에스파, 르세라핌, (여자)아이들 같은 걸그룹이 음원 쪽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올해의 노래 부문은 뉴진스의 ‘디토’가 휩쓸었다.
음반 쪽은 강력한 팬덤을 중심으로 수백만장의 음반을 판 보이그룹 세븐틴, 엔시티(NCT) 드림, 스트레이키즈가 나눠 가졌다. 솔로 활동을 시작한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 정국도 글로벌 인기 관련한 상을 받았다. 장년층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는 임영웅도 한자리 차지했다. 신인상은 보이그룹 라이즈와 제로베이스원 양강 구도였다.
시상식은 끝났지만 여전히 ‘연말 시상식은 참가상’이란 냉소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상의 종류를 지나치게 세분화해 배분하는 모양새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한 시상식은, 퍼포먼스 분야만 ‘페이버릿 댄스’, ‘베스트 댄스’, ‘페이버릿 글로벌 퍼포머’ 등으로 나눠서 시상했다. 또 다른 시상식에선 ‘올해의 가수상’ 집계 기준을 달리해 2개로 나눴다. 상 이름만 보면 누가 진정한 올해의 가수인지 알기가 어렵다.
남발이라는 비판까지 받는 세분화된 상 배경에는 섭외가 있다는 게 엔터업계의 공공연한 소문이다. 상을 주지 않으면 누가 시상식에 나오겠냐는 것이다. 반대로 연예기획사 쪽은 연말에 계속 이어지는 시상식이 여러모로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언론사가 주최하는 행사라서 눈치를 안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은 부정적인 기사 하나로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최근 한 신인 보이그룹 멤버는 에스엔에스(SNS)에서 한 발언이 보도돼 논란이 되면서 그룹에서 퇴출당하기도 했다.
대부분 스포츠·연예 관련 미디어가 주최하는 시상식이 수익사업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은 나온 지 오래다. 최근 한 스포츠신문이 상을 만들어 타이 방콕에서 시상식을 열기로 했다가 행사 직전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케이팝 인기가 높은 일본, 동남아시아 나라에서 행사를 여는 것도 티켓 판매 수익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이다. 공영방송 한국방송(KBS)이 연말 가요프로를 일본에서 열 정도다.
주최 쪽은 수익 추구를 위해, 수상자는 마지못해 ‘출석’하는 시상식이 권위를 가질 리가 없다. 차라리 연말에 미국이나 일본 방송에 출연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이유기도 하다. 실제 지난달 31일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연말 최고 인기 프로그램 ‘홍백가합전’에는 뉴진스, 세븐틴, 스트레이키즈 등 케이팝 가수들이 대거 출연했다.
아티스트가 앞다퉈 참가하고 싶은 시상식을 만들 순 없을까. 전미 리코딩예술과학아카데미(NARAS)가 주최하는 그래미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아티스트가 출품하면 1만명 이상 심사위원(NARAS 회원)의 투표로 후보와 수상자를 선정한다. 상을 받기 위해선 출품부터 하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후보에 이름만 올려도 평생의 프로필로 남는다. 올해의 앨범·노래 등 본상인 제너럴 필드와, 세부 장르로 나뉜 시상 분야도 직관적이다. 한국에선 한국대중음악상이 그래미와 성격이 비슷하지만, 규모와 대중적인 관심도가 적은 실정이다.
케이팝 글로벌 성공에 자존심을 다친 일본은 잰걸음 중이다. 도쿠라 슌이치 문화청 장관이 지난해 9월 “제이(J)팝을 알리기 위해 아시아판 그래미상 창설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뒤 일본 정부는 올해 예술가의 국외 진출을 돕는 문화예술 창작지원 기금 60억엔(540억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대중음악 정책 담당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권위 있는 시상식, 그 자체가 최근 불거지는 케이팝 위기론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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