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원금 반토막` 악몽 현실로… 닷새만에 1067억 손실

김경렬 2024. 1. 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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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銀 판매상품 첫 손실 확정
상반기 만기만 10.2조 '초비상'
손실 최대 5조까지 확대될수도

홍콩H지수 연계주가증권(ELS)의 손실이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 만에 1000억원을 넘어섰다. 원금이 반토막 난 경우도 발생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안전한 자산 관리를 기대한 은행 고객들의 투자 피해 민원이 빗발치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의 수심은 깊어지고 있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에서 지난 8일 첫 손실이 확정됐다. 이후 닷새 만인 12일까지 원금 손실 누적 규모는 1067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만기 도래한 상품의 원금은 약 2105억원, 상환된 물량은 1038억원으로 전체 손실률은 50.7%로 나타났다. 만기 일자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일부 상품의 손실률은 최고 52.1%에 달했다. 최근 6개월 새 홍콩H지수 ELS의 원금 손실액은 5대 은행에서만 1149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하반기 확정된 원금손실액(82억원)에 올해 손실분을 합산한 값이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홍콩H지수에 따라 수익 구조가 결정되는 파생상품이다. 보통 출시 후 3년이 지나면 만기일이 도래하는데,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기상환 기회를 준다. 만기 전까지 기초지수가 회복되면 만기 상환 조건에 따라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지만, 만기 시 기초자산 가격과 상환 조건에 따라 원금손실이 발생한다. 녹인 구간이 설정된 경우 일정 주가(통상 가입 당시 가격의 50%) 이하로 떨어지면 기초 자산 하락 폭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특히 홍콩H지수 ELS는 은행에서 집중 판매됐다. 고령 투자자 비중도 높다. 안전한 노후자금 운용을 위해 1금융권을 찾았다가 낭패를 본 금융소비자가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구체적으로 해당 상품은 은행에서 15조9000억원(24만8000계좌)어치 팔렸고, 증권사에서 3조4000억원(15만5000계좌)어치 판매됐다. 은행에서 판매된 상품은 대부분 신탁 상품(ELT)으로 팔렸다. 매대에는 금융지주 내 계열인 증권사의 상품도 다수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판매사 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투자자는 홍콩H지수 ELS를 5조4000억원(8만6000계좌)어치를 매입했다. 은퇴 이후 노후자금을 원금 손실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에 투자했다는 얘기다. 은행권에서 60대 이상에게 해당 상품을 많이 판매한 곳은 국민은행(작년 11월 말 기준 3조5903억원)이다. 이어 농협은행(1조188억원), 신한은행(9995억원), 하나은행(8303억원), 우리은행(152억원) 순이다.

업계에서는 홍콩H지수 ELS 상품의 원금 회복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기초지수인 홍콩H지수는 상품이 대거 판매된 2021년 이후 반토막 났다. 홍콩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가운데 50개 종목을 추려서 산출하는 지수로, 변동성이 높다. 홍콩H지수는 지난 2021년 2월 1만2000을 넘었지만 해당년도 연말에 8000대로 내렸고, 지금은 5000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중국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홍콩H지수의 침체 국면은 상반기 내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2일 홍콩H지수 종가는 5481.94로 집계됐다.

H지수는 오르더라도 다음날 증가분을 반납하면서 전체적인 하향곡선을 그리며 내리고 있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상품 잔액은 15조4000억원이다. 분기별로는 1분기 3조9000억원(20.4%), 2분기 6조3000억원(32.3%) 등이다. 총선이 치러지는 올해 상반기에만 전체 물량의 52.7%(10조2000억원 규모)가 만기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상반기에도 현재 홍콩H지수 수준이 계속될 경우,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ELS의 원금 손실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말들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지난 8일부터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주요 금융사 12곳에 대해 순차적으로 현장·서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판매 잔액이 많은 국민은행은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신한·하나·농협·SC제일은행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투자증권은 서면으로 조사한다. 이달 중으로 모든 대상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들여다 본다는 목표다. 홍콩H지수 ELS 판매과정에서의 자본시장법 등 관련법규 위반여부와 함께, 판매 한도관리 등 전반적인 관리체계에 대해 심층 점검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쟁 민원에 대해서는 관련법령상의 판매원칙에 대한 실질적 준수 여부와 함께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을 균형 있게 고려해 처리할 방침"이라며 "관련 부서 간 유기적 협업과 금융위 협의 등을 통해 검사, 분쟁조정, 제도개선 검토 등에 이르는 일련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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