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이 찍힌다고? 신발에 쇠 덮개 어때?···‘일하다 아픈 여자들’[책에서 건진 문단]
‘책에서 건진 문단’(책건문)은 경향신문 책 면 ‘책과 삶’ 머리기사의 확장판 이름입니다. 지면 서평은 ‘지면 제약’ 때문에 한두 문장만 인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건문’은 문단 단위로 내용을 소개합니다. 지면 서평도 더 쉽게 자세하게 풀었습니다. 지은이 뜻을 더 정확하게 전하려는 취지의 보도물입니다. 경향신문 칸업 콘텐츠입니다. 책 문단을 통째로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해 주세요!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401051800001
‘선탄(選炭)’은 갱내에서 생산한 석탄에 든 잡석 같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뜻하는 말입니다. 1960~1970년대 이 일은 주로 여성 노동자가 맡았습니다. 이들을 아낙 ‘부(婦)’를 붙여 선탄부(選炭婦)라 불렀죠. 선탄부 중엔 탄광에서 죽거나 다친 남편들의 아내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나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글쓴이들을 대표해 쓴 <일하다 아픈 여자들>(빨간소금) ‘책을 펴내며’를 선탄부(選炭婦)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마스크도 없이 잡석 가려내던 선탄부들
“나는 산업 전사 광부였다.” 강원도 정선에 있는 사북석탄역사체험관 건물 벽에는 광부의 얼굴 그림과 함께 이 문구가 쓰여 있다. 그림 속 광부의 얼굴에서 자랑스러움이 비친다. 사북의 석탄 산업이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건 1966년 1월 15일에 사북까지 기찻길이 연결되면서부터다. 한국의 광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0~1970년대에 광부들은 어두운 갱도를 타고 지하로 깊이 내려가 광물을 캔 뒤 수레에 실어 날라야 했다. 그만큼 힘들고 위험했다. 현장에서 죽거나 진폐증 등으로 숨진 광부가 많다. 이들의 죽음은 ‘산업 전사’라 불리며 우리나라 공업화 육성을 위한 상징으로 칭송받았다.
한편 여성들은 사고로 남편이나 아들을 잃은 아내나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선탄부’로 불리며 남성 광부들이 전달한 막장의 흙더미에서 석탄과 잡석을 가려내는 작업을 한 여성들도 있었다. 교대 근무로 노동강도가 세고 남성보다 임금이 낮은, 탄광촌에서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드문 일자리였다. 위험천만한 탄광촌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 존재했으나 ‘산업 전사’라는 얼굴은 오로지 남성의 차지였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떠도는 지금 산업 전사의 얼굴은 누구로 대표되는가?
온라인에서 선탄부를 이미지 검색하면 여러 장이 뜹니다. 마스크도 없이 작은 간이의자에 쪼그려 앉아 잡목이나 돌들을 고르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을 보면, 선탄부 노동은 지금의 여러 여성 노동과 닮았습니다.
50대 윤재옥씨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에서 13년째 생산직으로 일합니다. 설비 앞에서 부품 조립과 외관 검사를 했습니다. 팔을 ‘앞으로 나란히’ 하듯 한 번 앞으로 펴면 근무 시간 내내 거의 팔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작업대도 키에 비해 높았습니다. 이 업체 노동자의 65%가 여성인데도 작업대 크기는 남성 노동자에 맞춰졌습니다. 재옥씨와 동료들은 어깨 통증을 달고 삽니다. 재옥씨는 오른쪽 어깨 ‘힘줄염 및 힘줄 윤활감염’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표준 남성’ 기준 개인 보호구가 안전을 위협한다
남성 노동자가 다수인 업종에선 개인 보호구도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죠. 건설 현장에서 형틀 목수로 일하는 심경희씨는 거푸집 작업을 하다 불량 못이 튀어 눈을 다쳤습니다. 시공사에서 자재비를 아끼려고 산 못은 부러지기 일쑤였습니다. 일터는 고글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안전모, 각반(발목 보호대), 안전화 같은 개인 보호구도 제일 싼 걸 지급했습니다. 남성 기준이라 경희씨 몸에 맞지도 않았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것을 넘어, 맞지 않는 보호구로 인해 위험이 가중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여성 노동자가 자기 몸에 비해 큰 남성용 작업복을 입었을 때 옷자락이 기계에 말려 들어가 팔을 다칠 뻔하거나 남성용 작업화를 신은 여성 노동자가 계단이나 사다리를 걷다가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남성용 마스크와 고글을 쓴 여성 노동자는 보호구와 얼굴 틈으로 유해 물질이 들어올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여성 노동자가 작은 남성용 크기의 보호구를 착용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평균적으로 여성의 발은 남성의 발보다 길이가 짧고 볼이 좁아서 여성 노동자가 작은 크기의 남성용 신발을 신으면 길이는 맞을지 몰라도 발볼이 넓어서 이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또한 여성은 남성보다 보통 머리와 얼굴 둘레가 작아서 남성용 안전모를 썼을 때 머리, 눈 및 얼굴의 착용감과 편안함, 호흡기 보호에 영향을 받는다. 즉, ‘작은 남성’으로서의 여성 신체가 아닌 다양한 측면에서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보호구가 필요하다.
발등이 찍힌다고? 신발 쇠 덮개 어때?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겐 금속 퓸, 분진, 유해가스를 막는 마스크가 필수입니다. 거제 조선소에 일하는 최해선씨는 회사에서 지급한 마스크가 얼굴에 맞지 않아 사비로 따로 사서 씁니다. 회사는 퓸 가스를 걸러 주는 용접사용 마스크 지급 요청도 거절했습니다.
골프장 캐디 노동자들은 스프링클러 때문에 다리를 접질려 다치기 일쑤죠. 역광에도 공을 봐야 해서 백내장, 녹내장 같은 눈질환에 시달립니다. 고글을 쓰기도 쉽지 않습니다. 손님과 아이컨택하라고 고글을 못 쓰게 하기 때문입니다. 캐디 한영주씨의 동료는 15kg가량의 골프 백을 옮기다 발등이 찍혀 발가락이 부러졌습니다. 회사가 내놓은 대안은 신발에 쇠 덮개를 착용하면 어떻겠느냐였습니다. 골프를 치는 내내 분주하게 뛰어다녀야 하는 캐디 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대안이었습니다.
글쓴이들은 “여성의 일은 쉽고 안전하다는 편견과 무관심이 여성 일터를 안전보건 기준의 공백 지대로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노동안전보건 정책들과 기준들은 모두 남성 노동자가 집에 있는 여성에게 가사와 돌봄을 의존하던 시기에 고안된 것들이다. 안전보건 규정은 서비스직 여성들이 안고 있는 위험 요인을 외면한 채 공장 안의 표준화된 몸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남성 노동자에 맞춰진 안전과 보건 기준으로 보면 여성의 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령 산안법에서 ‘근골격계 부담 작업’은 “하루에 25회 이상 10kg 이상의 물체를 무릎 아래에서 들거나 어깨 위에서 들거나 팔을 뻗은 상태에서 드는 작업”이다 인터뷰한 학교급식 노동자, 승무원, 카페기사, 청소 노동자 모두 중량물을 들고 나르며 작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10kg 이하의 물체를 여러 차례 들고 나르는 작업을 반복해서는 산재로 인정 받기 어렵다. 또한 업무연관성을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제도에서 유·사산과 같이 의학적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 사안은 산재 불승인으로 이어지기 쉽다.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 질환에서 육아와 가사 노동으로 인한 고밀도·장시간 노동을 고려하지 않는 것 역시 여성들의 질병 산재 인정을 힘들게 한다.
서서 일하는 건 덜 위험하다는 편견
이나래는 여성의 노동은 지금도 쉽게 무시되거나 과소 평가되고 왜곡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종일 서서 일하고 걸어 다니는 건 덜 위험하다는 편견은 여성의 일과 위험을 연결하지 못하게 만든다.” “여성이 낮은 임금을 받고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되는 건 여성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여기저기 곳곳이 아프게 만듭니다. 건설 현장 노동자들에겐 화장실 문제도 있습니다. 경희씨는 화장실에 한 번 가려면 족히 30분은 걸립니다. 제때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 여성 노동자들은 방광염, 신우신염, 생식기 질환 등을 앓습니다.
제대로 쉴 수도 없습니다. 프랜차이즈 제빵 매장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를 만드는 김희영씨는 유산 위험이 큰 임신 초기에도 전과 똑같이 10시간씩 서서 일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사업주가 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의 시간 외 노동을 금지하고 여성 노동자의 요구가 있을 시에는 쉬운 종류의 노동으로 전환해야 할 의무를 지워졌지만, 매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희영씨는 두 번의 유산을 겪고도 법적으로 보장된 유산 휴가를 사용하지 못해 연차로 쉬었습니다. 다른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유산 휴가 못 쓰고 연차로 쉬면서도 미안한 마음
방송 작가 중 밤샘 작업을 하다가 유산되는 작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손목관절 문제에다 불규칙한 식사에 따른 한 위장 장애,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과 월경불순 등을 겪습니다. 학교 급식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위험은 “급식 노동자를 죽일 수 있는 조리퓸(cooking fumes)”입니다. 조리퓸은 국제암연구소에서 2010년에 인정한 폐암의 위험 요인입니다. 2021년에야 배기 장치가 고장 난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숨진 노동자가 처음으로 산재로 승인받았습니다.
청소할 때 쓰는 약품도 안전하지 않죠. 기름때를 지우려 약품을 원액 그대로 물에 넣어 사용합니다. 노동자나 청소 노동자에 다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대학교 청소 근로자의 염소계 표백제 사용에 따른 위해성 평가 및 영향 요인 분석’ 연구를 보면, 국제암연구소에서 지정한 발암성 물질인 폼알데하이드, 에틸벤젠, 클로로폼에 대해 각각 56.79%, 27.16%, 82.72%의 청소 노동자가 발암 가능성 기준이 초과했습니다. 이들 노동자는 청소 용제가 비치된 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청소 용제에 지속해서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401031716001
방사선 덩어리 오로라에 노출된 비행 승무원들
항공기 운항 승무원이나 객실 승무원들은 ‘우주 방사선’에 노출됩니다.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 서유진씨에게 북극 오로라는 ‘방사선 덩어리’입니다. 대한항공은 2010년부터 운항 거리를 줄이려고 북극 항로를 이용했습니다. 26년 차 객실 승무원인 유진씨의 총 1만7000시간 이상 비행 중 고위도 북극항공로 비행이 전체의 50%나 됩니다. 대한항공은 2018년 8월에서야 사내 전산망을 통해 월별 피폭선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유진씨는 2022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유방암 발병 원인이 야간 비행 근무뿐 아니라 누적된 우주방사선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동료들에게 그 위험성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그는 산재 신청을 준비 중입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5231338001
책은 “낯설게 여겨지는 몸들” 즉 ”생산적이지 못한 몸, 성별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이상한 몸으로 정의‘당하는’ 존재들인 장애인과 성소수자의 노동과 산재 문제도 이야기합니다.
이재선씨는 30대 퀴어(Queer) 또는 논바이너리(Non-binary)로 정체화한 성소수자 노동자입니다. 노동조합 상근활동가로 일합니다. 이전 정체성 때문에 차별을 겪곤 했습니다. 이 차별은 산재인가? 글쓴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는 것이 급선무인 조건에서 차별받은 경험을 신체적·정신적 ·사회적 건강과 연결하기란 쉽지 않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 문제를 사회는 자꾸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개별화·협소화한다. 혐오는 권력과 위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와 일터의 구조적 문제인데도 국가와 자본은 정체성에 국한해 서로의 갈등으로 부추기고 연대 정신을 훼손한다”고 지적합니다.
40대 후반의 뇌병변 ‘장애 여성’ 양유선씨는 출판사에서 교정·교열 업무를 담당한 지 10년 된 베테랑 출판 노동자입니다. 재택근무를 하는데, 자기 몸에 필요한 장비를 갖춘 컴퓨터가 아니라 일반 컴퓨터를 사용합니다. 인쇄 종이도 사비로 삽니다.
삶을 나누는 장애인 이동권
디스크와 손가락 관절 등 통증이 심합니다. 병원 가는 게 어렵습니다. 우선 편견 때문입니다. 일반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유선씨의 언어장애를 두고 지능이 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의학적으로 장애를 이해하는 의료진을 만나 적절한 치료를 받으려면 먼 대형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이동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유선씨는 살이 더 안 찌려고 애를 씁니다.
살찌면 무릎에 무리가 더 가니까 경계하는 편인데, 장애인의 경우 걷는다는 게 굉장히 큰 거거든요. 걷고 버스 타고 그런 거. 삶을 나누는 거거든요. 한국 사회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체중 조절도 더 신경 쓰고 있어요.
글쓴이들이 만난 여성 노동자들은 “무엇이 보상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몸인가”를 두고 고민했다고 합니다.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대상의 조건은 바로 업무와의 연관성입니다. 기존 질환이 일 때문에 악화해도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도 유선씨는 출판 노동을 하면서 더 심해진 통증을 일 때문이라고 얘기하길 주저합니다.
아픈 몸이라는 자책과 쓸모없는 노동력이라는 낙인
일터에서는 공장이나 건설 현장의 육체노동이나 물리적 사고만 산재가 되는 줄 알거나, 유방암과 같은 여성들의 질병이 산재가 되는 줄 모르거나, 정신 질환은 산재를 신청해도 승인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산업재해의 ‘산업’은 남성의 일이라고 여겨지고 여성이 속한 일터는 산업으로, 온전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여성들이 담당하는 서비스 산업의 노동이 온전히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고통은 이름을 가진 질병으로,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러 여성 노동자들은 그저 ‘자책’합니다. 글쓴이들은 “여성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아픈 몸이라는 자책과 쓸모없는 노동력이라는 사회의 낙인으로 주로 구성되었음을 확인했다”고 말합니다. 자책과 낙인 때문에 산업재해 신청도 주저합니다. 산재 신청을 가로막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우선 심사 기간이 길고, 승인받기도 힘듭니다. 진단조차 쉽지 않습니다. 해선씨는 2년 전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당한 뒤 병원에 다니면서 “거제도의 병원들은 거의 다 회사 편”이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조선소 이름과 똑같은 병원에서는 산재를 신청하려거든 자기 병원에 오지 말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끊임없이 병행하는 대학생 지수씨는 전기 자전거로 음식 배달하는 일을 1년 반 정도 했습니다. 추돌 사고가 나면 “여자애들이 꼭 배달하다가 저런 사고 쳐서 그걸로 회사에서 돈 타 먹는다” 같은 말을 듣곤 했습니다.
남성 다수 업종에 일하는 경희, 해선, 재옥씨는 산재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과 상관없고 일터가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글쓴이들은 이 점을 지적합니다.
전반적으로 안전하지 못한 일터는 그곳에서 일하는 모두에게 위험한 게 맞다. 그러나 남성 지배적 업종에 종사하며 남성 관리자의 통제를 받는 여성 노동자의 ‘거부할 수 없음’은 노동시장 내 여성 노동자의 불평등한 위치를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거부할 수 없었던 나’에 대한 자책은 성폭력 피해자의 서사에서 자주 나타난다. (직장내)) 성폭력은 개인 간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 여성 노동자의 산재 또한 세 사람의 말과 달리 그들이 여성으로서 자리한 사회구조적인 위치를 사고하지 않고선 설명할 수 없다.
책은 “젊고 건강하고 장애가 없는 이상적인 몸, 성별 위계에서 우위에 있는 이들을 표준으로 삼아 구성된 사회” 문제를 지적합니다. 이런 사회는 “몸 상태를 개인이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습니다. “이는 누구나 이상적이지 않은 몸 상태가 되었을 때 공동체나 사회로부터 비난받아도 마땅하며 책임 역시 개인이 져야 한다는 인식과 더불어 사회 시스템을 강화한다.”
자본의 문제와 사용자가 바꿔야 할 위험
자본의 문제도 있습니다. 한 명의 급식 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식사량이 많을수록 조리퓸에 장시간 노출됩니다. “작업 현장의 이러한 위험들에는 노동자의 건강보다 비용을 줄이려는 자본의 논리가 숨어 있다.” 유진씨 회사는 예전 승객 200명에 보통 9명의 객실 승무원이 탑승했는데, 2018년에 8명, 2021년에 5명으로 승무원 수를 계속 줄였습니다.
사실 우주 방사선의 위험성을 항공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임신 노동자는 비행할 수 없도록 직무에서 배제해 왔다. 하지만 항공사는 명백한 위험만 관리할 뿐 방사선이 노동자 건강에 주는 피해를 줄여나가려는 방법은 고안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본은 노동자의 몸에 노동 환경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적합한 노동자를 찾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청소도 마찬가지다. 중·고령 여성만이 아니라 젊은 여성도 청소할 수 있고 남성도 할 수 있다. 부당한 노동조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비상식적 행위들로 인한 모멸감을 참을 수 있는 노동자만이 청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청소 노동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 노동자를 맞추는 것에서 노동자에 맞춰 노동환경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취약한 구조에 놓인 노동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여성 노동자가 겪는 산업재해를 적극적으로 가시화해야 하는 이유다. 노동자에게 나쁜 노동환경은 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라 사용자가 바꿔야 할 위험이다.
책은 노동환경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기존의 ‘위험한 업무, 몸으로 하는 업무에 노동자의 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에 노동환경을 맞추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여성에게만 발생하는 질병들에 대해 건강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남성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일인 양 취급받습니다. 글쓴이들은 “‘쓸 만하지 않은 몸’이 배제된 그 위험한 자리는 결국 표준으로 분류된 남성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위험에 노출되어 다친 노동자의 몸은 다시 쓸 만하지 않은 몸 중 하나로 분류되고 소외된다”고 말합니다.
노동자 몸에 노동 환경 맞춰야
여성 노동자 대 남성 노동자의 대립을 부추기는 책이 아닙니다. 남성 노동자들의 위험 문제도 다룹니다. 여성 노동자의 위험과도 다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여성 노동자들에게 자책감을 느끼게 하고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못 느끼게 하는 노동환경이 남성 노동자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노동환경일 리 없다. 그러한 일터는 남성 노동자들에게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조금 아픈 건 참고” 일하며 때로는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하게 한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양팔에 각 18kg, 총 36kg 상당의 자재를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들어 옮겨야 하고, 배달속도에 따라 건별로 책정되는 수당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운전할 수밖에 없다. 2001~2021년 산재 사망자의 95% 이상이 남성 노동자인 점도 이들이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높은 노동강도로 일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러한 일터는 일하면서 아픈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니 위험한 상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만든다. 거기에 대해 불평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여성처럼’ 연약한 존재가 되는 것이자, 작업장에서 적합하지 않은 신체가 되는 것이므로 일터에서 퇴출당할 위험이 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건강함을 보여야 하고 아픈 사람이 되면 안 된다.
글쓴이들은 “여성 노동자가 ‘남성 1인의 몫’을 다하지 못한다는 자책을 멈추고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은 여성뿐만 아니라 체구가 작거나 나이가 많은 남성, 장애인 등 다양한 신체 조건을 가진 ‘표준 남성’에 속하지 않는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책은 이나래와 조건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류한소(사회학 연구자), 송윤정·이영희(공인노무사), 정지윤(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이 썼습니다. 이들은 19명을 만났습니다. 관련 법과 제도 문제, 자체 통계, 해외 사례도 분석해 실었습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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