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처벌 피하려 술 더 마셨는데 무죄?

車사고 낸 후 경찰 도착전에
술마신 증거 없애려 또 음주
1심 유죄 받았지만 3심 무죄
처벌규정 없어 모방범죄 빈번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을 때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술을 더 마시고 "사고를 내고 나서 심리적 공황 때문에 술을 마셨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음주운전 사실을 숨기기 위한 '후행음주'인데 실제 이 방법으로 최종심에서 무죄를 받는 사례가 나왔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 A씨에 대해 유죄 판단한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지난달 말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19년 전북 정읍시 거리에서 술에 취한 채 화물차량을 운전해 맞은편에 있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승용차를 들이받고 약 18분 뒤 사고 현장을 이탈해 소주 1병에 복숭아 음료 1캔을 섞어 마셨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에게는 "사고로 심란해서 술을 마셨다"고 주장했다. 이때 측정한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는 0.169%로 처벌 기준인 0.03%를 한참 넘겼다. 후행음주를 눈치챈 경찰은 후행음주 전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기 위해 A씨에게 사고 당시처럼 소주 1병에 복숭아 음료를 타 마시도록 했는데, 그 수치가 0.115%로 나왔다. 당초 측정치인 0.169%에서 이 수치를 빼면 0.054%로 처벌 기준(0.03%)을 넘기게 되며, 후행음주 전에 이미 취해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1심에서는 유죄가 나왔다.

그러나 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2심 재판부는 '체내흡수율 0.9'를 적용한 위드마크 공식을 사용했는데, 이 계산으로는 A씨의 후행음주로 인한 혈중알코올농도 증가분이 0.141%로 추정됐고, 후행음주 전 농도는 0.028%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대법원도 피고인에게 가장 유리한 2심의 계산이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줄 우려가 없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2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조차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형사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의도적인 추가 음주를 하는 행위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며 "죄증을 인멸하기 위한 의도적인 추가 음주행위를 통해 정당한 형사처벌을 회피하게 되는 결과를 그대로 용인하는 것은 (중략)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며 현재의 입법적 한계를 인정했다.

수사기관 등에 따르면 실제로 온라인 등지에는 '음주운전하고 적발 전에 술을 더 마시면 걸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경험담이 게재되고 있어 이를 모방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박동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