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로 '문자의 미래' 살펴본다"…송도 명소 '문자박물관' 가볼까

송도(인천)=유동주 기자 2024. 1. 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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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입구에 선 양진희 학예사(오른쪽)와 이지혜 디자이너/사진=국립세계문자박물관


지난해 여름 인천 송도에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독일의 '다빈치'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주요 판화 작품을 볼 수 있는 '문자와 삽화-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를 만나다'가 3월 말까지 전시된다.

정밀한 묘사로 미술 분야에서 유럽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 중 하나인 뒤러의 작품을 국내에서 27년만에 만나는 기회다. 독일 오토쉐퍼박물관 소장품인 뒤러의 3대 목판화인 '성모 마리아의 생애', '대수난', '요한계시록(묵시록)'과 4대 동판화 '아담과 하와', '기마병(기사와 죽음, 악마)',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 '멜랑콜리아Ⅰ'가 모두 전시되고 있다.

셰계문자박물관은 특별전 외에도 상설전시로 인류 문명에서의 문자의 탄생과 발전에 관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각 문명에서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문자가 필수적으로 발명돼 발전을 이끌어왔다는 인류의 위대함도 다시 한번 깨우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번 특별전을 기획한 양진희 학예사와 전시 디자인 등을 총괄한 이지혜 과장을 만나 숨은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양진희 학예사.


- 전시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 있나.
▶양진희(이하 양): 첫 번째 전시 '긴글주의'에 이어 문자와 그림의 관계에 집중해, 먼 미래에는 이미지가 좀 더 소통의 중심이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담아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기획했다.

- '문자와 삽화'라는 전시 제목에서 '문자'와 '삽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양: 아시다시피, '삽화'는 글의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문자의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그림으로 문자와 그림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자'와'삽화'는 기록과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을 의미하며, 문자를 위해 존재하던 그림인 삽화가 하나의 예술이 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아담과 하와', 동판화, 오토쉐퍼박물관 소장.


- 알브레히트 뒤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양: 삽화를 예술로 승화한 대표적인 미술가가 뒤러다. 그의 작품을 통해 그림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뒤러 판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오토쉐퍼박물관의 도움을 받아 대표 작품들을 모두 대여할 수 있었다.

- 이번 전시 디자인의 컨셉은 무엇인가.
▶이지혜(이하 이) : 15세기 르네상스시대의 건축요소의 특징과 색상들을 전시장 로비 등에서 현대적으로 표현해 담아내고자 했다. 작품이 세밀한 묘사가 많은 것들이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했고 조명 등으로 연출을 해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기 편하도록 했다.

이지혜 디자이너.

-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 연출은 어떤 것이 있나.
▶이: 집중했던 부분이 3가지다. 첫째는 동선과 구조연출이다. 입구와 출구를 달리하는 순환동선으로 도입부의 동양 유물과 중첩되지 않도록 스토리를 분리했다. 전시기획 스토리가 이어지도록 해 동선을 유도하여 관람의 집중을 높이고자 했다. 특히 르네상스시대를 상징하는 건축 구조의 특징들을 공간에 여러 곳에 표현했다. 둘째는 뒤러 작품의 위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도록 채도가 낮은 색들로 분위기를 무게감 있게 연출했다. 구간별·스토리별 공간의 색상도 달리 해 관람객이 새로운 스토리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색채로 부여해주기도 했다. QR코드로 스마트폰에 익숙한 관람객들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 전시 도입부에 '미래의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문구의 의미는 무엇인가. ▶양: 오늘날 대다수는 이제 읽는 것보다 보는 것에 익숙해진 경우가 많다. 아이들 같은 경우는 특히 더 그림과 영상 등 이미지를 활용한 매체에 더 쉽게 다가가고 있다. 먼 미래와 앞으로 더 중요하게 될 이미지의 중요성에 대해 표현하고자 20세기 초 활동했던 헝가리 출신 사진가이자 화가인 라즐로 모흘리의 문구를 프롤로그로 활용했다.

- 1부 전시 중 김홍도의 삽화 작품은 어떤 의미인가.
▶양: 뒤러와 비견할만한 한국 화가로 김홍도를 들었다. 용주사판 '부모은중경'과 그가 활동했던 시기 왕실 소속 화원들이 그린 '화성성역의궤', '오륜행실도언해'를 함께 소개했다. 김홍도는 수준 높은 그림을 남겼을 뿐 아니라, 당시 간행된 책의 삽화를 그렸다. '부모은중경' 삽화는 그의 사실적인 화풍과 함께 예술성이 부여된 것이다. 정교한 필치로 그려졌고, 인물 표정과 옷의 주름선 등에서 섬세하게 묘사됐다. 건축물을 사선으로 표현해 깊이 있는 구도를 가진 점도 특징이다.

'뒤러의 방'에서 전시된 집기를 살펴보고 있는 양진희 학예사(오른쪽)와 이지혜 디자이너/사진=국립세계문자박물관

- '뒤러의 방'이 독특하다. 어떤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건가. 짙은 녹색과 버건디 색감도 유럽 귀족의 방을 연상케 한 건가.
▶이: 전시 흐름에서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가는 시점을 뒤러의 작업실을 통해 연출하고자 했다. 뒤러가 열정적인 작품을 완성시켜 나갔을 위대한 공간이라고 생각이 들었기에 중요하다고 느꼈고, 관람객도 조금이나마 느끼게해드리고 싶었다. 베르사유 궁전 같은 중세시대 실내건축에서의 녹색과 레드 벨벳의 색감 그리고 엔티크한 장식의 디자인 가구들을 떠올리게 돼서 그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해주고자 했다.

- 3대 목판화와 3대 동판화가 전시되고 있는데, 3대 동판화 부분만 개별공간을 조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양: 전시에서 가장 중심 작품이기 때문이다. 뒤러는 목판화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동판화 기법을 통해 역동적이고, 세밀한 묘사로 이야기의 서사를 전달했다. 3대 동판화에 '아담과 하와'까지 4대 동판화로도 칭한다. '멜랑콜리아Ⅰ'는 특히 뒤러가 여러 아이콘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 공간안에서 가장 강조를 해야하는 부분이었다. 영상과 사운드를 표현해 주면서 전시 이해를 높이려고 했고 르네상스시대 실내 건축양식의 요소인 아치형 연출까지 표현해 작품들을 강조하고 3대 동판화의 중요도를 극대화 하고 싶었다.

- 전시 에필로그에 크리스 로(Chris Ro) 작가의 작품도 독특하다. 이번 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양: 판화 기법 중 실크스크린에서 착안한 방식을 활용하는그래픽 아티스트다. 판화를 다룬 이번 전시와 맞닿아 있다고 봤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소설이라는 문자를 활용한 작업도 같이 하고 있다. 전시를 위해 제작한 작품 '부재의 존재'를 에필로그에 두고 '문자를 위한 그림', 또는 '그림을 위한 문자'라는 1부와 2부 주제를 정리하고 있다.

▶이: 과거의 작품들을 보면서 클랙식함을 느낀 뒤 미래의 문자와 이미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장치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출구로 나가기 전에 한번 더 의미를 두고 싶었다.

- 뒤러에 대한 소개와 미술사 혹은 서양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를 강조한다면.
▶양: 뒤러는 르네상스 시기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다. 르네상스 시기 지식인으로서 활동했고 삽화를 판화라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다.

- 전시된 뒤러 작품 중 강조할 부분이 있다면.
▶양: 3대 목판화가 모두 초판본이고 동판화 중 '멜랑콜리아Ⅰ'는 '침울하지만 깊이 생각하는 창의적 사람'으로 해석될 수 있고 우울한 기질을 보였던 뒤러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판화들은 목판화에 비해 훨씬 세밀한 표현을 볼 수 있다.

'멜랑콜리아Ⅰ', 동판화, 오토쉐퍼박물관 소장.

-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는지.
▶이: 입구 포토 이미지월에도 있고 포스터에도 쓰인 '멜랑콜리아Ⅰ'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이번 전시 주제와도 가장 잘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양: 역시 '멜랑콜리아Ⅰ'가 당연히 메인이 될 거 같다. 학자들마다 그림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어 재밌다. QR설명문도 그만큼 가장 길게 자세하게 담았다. 뒤러가 자기의 모습을 담은 것과 컴퍼스와 다면체, 사다리 등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려했던 숨겨진 의도 등이 있다.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 동판화, 오토쉐퍼박물관 소장.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특별전 '문자와 삽화'/사진= 유동주 기자

- 관람객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작품은.
▶양: 앞서 소개한 '멜랑콜리아Ⅰ'와 '아담과 하와'를 들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2점을 함께 전시하고 있는데, 연도 숫자 '5'를 잘못 표기해 수정한 흔적도 재밌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몇 군데의 포토존이 있다. 입구의 '멜랑콜리아Ⅰ'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뒤러의 방'에서 직접 뒤러 역할이 되어보시는 것도 좋다. 이미지 방명록을 통해 미래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 보시는 것을 좋을 것 같다.

- 전시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
▶양: 지난해 9월 독일에서 뒤러 작품을 처음 직접 눈으로 봤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뒤러가 태어나고 활동했던 뉘른베르크를 방문했을때 생가였던 '뒤러 하우스'에서 판화가이자 예술가, 출판가로 성공한 뒤러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15세기 출판업이 성행했던 도시 중 하나인 '뉘른베르크'와 '알브레히트 뒤러' 그리고 '문자' 이 세 가지를 이번 특별전에 잘 녹여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새벽까지 준비를 하며 같이 밤을 새기도 했다.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위로하며 준비를 잘 마쳤던 게 기억에 남는다. 관람객이 이 전시와 작품들을 제대로 즐겼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요한 계시록(묵시록)' 15점의 목판화 연작 중 '네 기사'. 목판화, 오토쉐퍼박물관 소장.


- 전시를 찾은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양: 문자와 그림의 관계에 주목해 문자를 보조하는 수단이던 그림인 삽화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 그림으로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여기서 문자는 이제 그림을 보조하는 역할이 되었다. 먼 미래에 의사소통과 기록의 수단으로써 더욱 중요해질 이미지의 중요성에 대해 느껴보시길 바란다. 친구들, 가족끼리 전시를 보며 함께 미래의 문자와 이미지의 역할에 대해 토론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작품을 통해 문자의 예술적 측면도 바라봐 주셔도 좋겠다.

- 전시 관람의 팁이 있다면.
▶양: 판화를 메인으로 한 전시이기 때문에 판화 기법에서 착안한 다양한 체험 콘텐츠를 마련했다. 삽화 속 도상을 활용해 만든 도장을 찍어 나만의 그림일기를 완성해 보는 코너도 있고, 동판화 제작 과정을 살펴보는 코너, 스크래치 체험 등이 있다. 작품의 자세한 설명도 QR코드에 담았다.


송도(인천)=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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